[문화] ‘아침마당’ 김재원 아나운서, “30년 방송 인생과 잘 이별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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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 KBS 아나운서는 31일 KBS를 퇴사하고 제2의 인생을 위해 나선다. 우상조 기자

김재원 아나운서(58)는 1995년 KBS 21기 공채로 입사한 뒤, 30년 가까운 시간을 공영방송의 얼굴로 살아왔다. ‘아침마당’을 비롯해 ‘6시 내고향’ 등 굵직한 프로그램들을 맡으며 지난 30년간 시청자 곁을 지켰다.

그랬던 그가 31일 회사를 떠난다. 정년을 1년 남긴 시점이지만, “조금 더 일찍 나와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해보고 싶다”며 자발적인 퇴직을 결정했다. 월드비전과 푸른나무재단 홍보대사로서의 활동을 확장한다거나, 아나운서의 경력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도전하는 제2의 인생을 꿈꾸면서다. 올해 초 자전적 에세이 『엄마의 얼굴』을 출간한 이후로는 외부 강연도 나가고 있다.

대표작 ‘아침마당’과의 인연은 깊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MC를 맡아 생방송 진행의 정석을 보여줬다. 이후 ‘6시 내고향’으로 자리를 옮겨 5년간 방송했다가, 2018년부터 다시 ‘아침마당’의 부름을 받고 현재까지 자리를 지켰다. 1997년 리포터로 ‘아침마당’에 출연했던 8년 세월까지 더하면, 방송 인생 대부분을 ‘아침마당’과 함께한 셈이다.

퇴직을 일주일 앞둔 23일 서울 여의도 KBS 사옥에서 만난 김 아나운서는 “‘아침마당’ MC로서 임했던 날들을 세어보니 3200일 가량이 된다. 출연자 한 분 한 분이 인생의 선생님이었고, 그로 인해 나 또한 성장했던 시간들”이라고 돌아봤다.

30년 몸담은 직장을 떠나는 기분은.
“실감이 잘 안 난다. ‘아침마당’을 진행하면서 ‘움직이지 않는 자전거를 타는 삶’이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다. 매일 새벽 4시 45분에 일어나 5시 20분에 집을 나섰다. 마포대교와 여의도공원을 지나 4km 거리를 걸어서 출근했다. 나는 열심히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반복되는 일상으로 인해 제자리에 머문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그렇지만 생각을 바꿔보면 같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축복이다. 매일이 같아 보이지만 그 속에서 만나는 인연들도 다르고, 느끼는 감정들도 다르다. 그렇게 KBS와 함께 성장해왔던 시간들이었다.”
KBS 간판 프로그램 ‘아침마당’, ‘6시 내고향’을 오래 진행했는데.
“생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것은 시청자의 루틴과 함께하는 일이라 책임감이 크다. 물론 나에게도 고정적인 루틴인 것이지만, 나보다도 이 방송을 기다릴 시청자들을 생각하며 임해왔다.”
‘6시 내고향’에서 겪은 의자 방송사고는 어떤 기억으로 남았나.(2015년 생방송 중 그가 앉은 의자가 고장 나 그의 몸이 점점 아래로 내려가는 장면이 그대로 방영됐다)
“벌써 10년 전인데도 많은 분들이 기억해주신다. 잘 실수를 안 하는 편이라, 그 장면은 내 방송 인생에서 큰 재미를 줬던 일이 됐다. 허벅지를 꼬집어가며 웃음을 참으면서 진행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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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 아나운서는 "생방송 진행을 잘 하기 위해선 시청자 마음을 잘 이해하고 그에 맞춰 질문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생방송 진행의 비결이 있다면.
“진행자가 편집자 역할을 해야 한다. ‘아침마당’을 진행할 땐 천의무봉(天衣無縫)의 마음으로 편집 자국 하나 없이 63분을 매끄럽게 이어가고자 했다. 그 그림을 함께 만들고 완성해 준 방청객, 파트너 진행자, 제작진의 도움도 크다. 주변 도움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넘어간 실수도 있을 것이다. 또 항상 시청자 입장에서 질문해야 한다. 생방송 진행자의 중요한 자질 중 하나는 질문을 잘 하는 것이다.”
아나운서실에서 ‘로봇설’이 돈다고 하던데.
“꼼꼼한 성격을 높게 봐주신 것 같다. 기억력이 좋다고도 하는데, 그냥 마음에 담긴 이야기들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 같다. 내가 볼 때 나는 게으른 완벽주의자다. 완벽해지고 싶고, 치밀해지고 싶은 마음을 전부 행동으로 옮기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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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 아나운서가 꼽은 방송 최대의 실수 장면 중 하나. 김 아나운서가 앉은 의자가 내려가면서 웃음을 줬다. 사진 KBS

마지막 ‘아침마당’ 방송은 어떻게 준비하는지.
“몇 달 사귄 연인도 작별 인사를 하는데, 3000일 넘게 만난 시청자와의 이별 또한 아름다워야 한다는 생각이다. 생방송에서 조금씩 이별 메시지를 전하면서, 30년 방송 인생 마무리를 잘 하고 싶다.”
가족과의 이별에 관한 개인적인 감정을 담은 책 『엄마의 얼굴』도 썼다.
“13세에 엄마를, 33세에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50세가 넘도록 살았지만 그럼에도 한켠에 묵은 감정이 있었다. 부모를 그리워하면 안 되는 나이라고 스스로 생각한 것도 있었다. 그런데 책을 쓰면서 내가 엄마와 작별인사를 제대로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움이야 말로, 엄마를 내 마음에 잘 모실 수 있는 방법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어린 시절 이야기들을 털어놨다. 이후 신기하게도 엄마가 만들어줬던 양배추 김치 레시피와 그 맛까지 갑자기 기억났다. 아버지와의 추억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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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 아나운서는 출연하고 싶은 타 방송국 프로그램을 묻자 "여행을 좋아해 EBS '세계테마기행'에 출연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우상조 기자

아들에겐 어떤 아버지인가.
“아버지는 무뚝뚝했지만 새벽밥을 차려주며 행동으로 사랑을 보여주신 분이었다. 나는 좀 더 아들과 친밀하고 사랑을 표현하는 관계이길 바랐다. 29세 아들이 내게 ‘아빠’라고 부르는 것 보면 나름 친밀한 부자관계라 생각한다.”
제2의 인생은 어떨까.
“여행을 좋아해서 31일 밤 아내와 함께 포르투갈로 떠날 예정이다. 케냐로 봉사 활동을 갈 수도 있고, 스피치 코칭이나 강연도 하면서 나의 경험들을 나누며 살고 싶다. EBS ‘세계테마기행’과 같은 여행 프로그램에 출연해 오지 탐험도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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