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더 센 상법’ 법사위 소위 통과…재계 “기업, 규제 피하려 성장 꺼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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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제3차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 김용민 소위원장이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상정하고 있다. 뉴스1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를 담은 상법 개정안이 2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했다. 이달 초 주주 충실 의무 등을 담은 상법 개정에 이어 ‘더 센’ 2차 개정안까지 빠르게 추진되자 재계는 패닉에 빠졌다. ‘묻지마 소송’ 속출을 우려하는 가운데 경영권 위협이 커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법사위 소위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단독으로 상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자산 2조원 이상 대형 상장사에 대해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고, 감사위원 분리 선출을 1명에서 2명 이상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았다.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상법 개정과 관련해 소위 7차례, 공청회 2차례를 거쳐 충분히 논의했고 더는 늦출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다음 달 1일 법사위 전체회의를 거쳐 4일 본회의에서 개정안을 처리한다는 계획이다.
집중투표제란 2인 이상의 이사 선임 시, 주식 1주마다 선임할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소액주주가 원하는 후보에게 표를 몰아줄 수 있어 유리하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역시 소액주주 등이 선호하는 인물이 감사위원회에 진입해 대주주 감시 기능이 강화될 수 있다.
재계는 선진국 중에서 집중투표제를 채택한 국가가 많지 않다며 반발한다. 미국과 일본은 각각 1940·1950년대에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했다가 이후 자율로 전환해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는 기업 경쟁력을 저하할 수 있다며 반대한다.

경제 8단체 부회장들이 지난 24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회관에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경제계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한 뒤 대화하고 있다. 사진 대한상공회의소
재계는 이번 2차 상법 개정이 외부세력의 경영권 공격 급증, 기밀 유출 가능성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로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가 지난해 말 기준 자산 2조원 이상 206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시뮬레이션 해본 결과, 더 센 상법이 시행되면 최대주주가 이사회 과반을 확보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는 결과가 나왔다. 평균 이사 수인 7명을 기준으로 최대주주가 확보할 수 있는 이사는 평균 2~3명에 그쳤다.
상장사들이 규제 적용을 꺼려 기업 성장 생태계가 왜곡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자산 1조원 이상~2조원 미만인 상장사들은 성장을 기피하고, 자산 2조원이 넘는 상장사들은 인적분할 등으로 기업 쪼개기에 나설 유인이 커진다는 지적이다. 최 교수는 “기업들이 규제를 피하기 위해 제대로 된 성장을 못 하면 국가 경쟁력이 떨어지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며 “열심히 기업을 키울수록 경영권 위협이 커진다고 하면 누가 한국에서 기업하고 싶겠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업들은 우리 경제가 대내외 복합 위기에 처한 가운데 ‘기업 옥죄기’가 계속되면 심각한 경영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경제 8단체는 지난 24일 대국민 호소문을 통해 “(상법 추가 개정으로) 과도한 배당확대, 핵심자산 매각 등 해외 투기자본의 무리한 요구나 경영권 위협이 이뤄질 경우, 경영 활동을 위축시켜 주력산업 구조조정과 새로운 성장동력 확충을 어렵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재계가 요구하는 배임죄 완화·경영권 방어 수단 도입 등에 대해서는 추후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익명을 원한 재계 관계자는 “최근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독립성이 강화된 상황에서 2차 개정으로 경영권 위협까지 걱정하게 됐다”라며 “기업들의 경영 효율성이 떨어지고, 투자 등 공격적인 의사결정이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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