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돈될 작품까지 맞힌다…AI가 '부귀' 영화 안겨줄까요

본문

영화판에서 존재감 커지는 AI기술

경제+

‘Written by KARPA(각본: 카르파)’ 이달 초 열린 부천 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 ‘그를 찾아서’의 엔딩 크레딧에 사람이 아닌 존재가 이름을 올렸다. 인공지능(AI) 카르파다. 독일의 대표적인 영화감독 베르너 헤어조크의 모든 시나리오와 인터뷰를 학습한 카르파는 구성부터 인물·대사·세계관까지 85분 분량인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다. AI의 진격이 영화판에서도 본격화하고 있다. 50명이 석 달 걸려 만들 10분 단편영화를 8명이 8일 만에 제작할 수 있게 만드는 생산성이 그 원동력. 요즘 AI는 영화 속 한 장면이 아닌 제작 전반에 관여한다. 아이템 개발부터 시나리오 작성·촬영·후반작업·배급·마케팅까지. 이렇게 AI가 ‘열일’해 만든 AI 영화는 각종 영화제에서 경쟁하고 극장에서 관객들을 만난다. 영화 산업에 스며든 AI 기술의 현 주소와 AI로 영화 만드는 제작과정까지 샅샅이 전한다.

17538202880293.jpg

그래픽=주이안

사는 것이 괴로워 매일 스스로 죽음의 문턱을 찾는 동물들. 그들을 상대하던 늑대는 어느 날 어린 양이 찾아온 것을 발견하고, 그를 다시 세상으로 되돌려보낸다. 지난 5월 열린 CGV AI 영화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현해리 감독의 AI 영화 ‘더 롱 비지터(The Wrong Visitor)’의 줄거리다. 현 감독은 ‘더 롱 비지터’의 시나리오를 틈틈이 구상해 왔다. 머릿 속에만 있던 영화 구상은 AI 영화제에 출품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지 8일 만에 결과물로 탄생했다. 그는 “10분짜리 단편영화를 제작하려면 촬영에만 최소 한 달이 걸리는데, AI를 활용해 단 8일로 제작 기간을 줄였다”고 말했다.

한 장면을 위해 영화 전문가들이 단계별 수개월에서 수년을 매달려야 하는 영화 제작의 관행이자 현실을 AI가 깼다. 초창기엔 딥페이크(합성), 디에이징(젊게 만들기) 등 AI 기술이 하나라도 적용되면 홍보 차원에서 AI 영화로 부르기도 했다. 텍스트뿐 아니라 이미지·동영상·오디오 등 다양한 모달리티(형식)를 다루는 생성AI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이제는 프로덕션(촬영·제작) 단계뿐만 아니라, 프리(pre:기획·준비) 또는 포스트(post: 편집·후반) 프로덕션에서도 AI를 사용한다. 하나의 과정이 아닌 제작 전 과정에서 AI를 활용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왜 AI를 쓸까. 영화는 인간의 예술혼이 담긴 장르 아니었던가? 이에 대해 현 감독은 “일반적으로 10분짜리 단편영화를 만들려면 최대 5000만원가량 비용이 드는데, AI를 통해 이를 10분의 1 수준으로 줄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현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드는 데 AI 구독에 200만원을 썼고, 나머지는 인건비로 사용했다. 평소라면 10분 단편 제작에 배우·스태프 등 최대 50명이 투입되지만, ‘더 롱 비지터’에는 총 8명이 투입됐다. 제작 단계에선 현 감독과 AI 필름메이커 2명 등 총 3명이 참여했다. AI 필름메이커는 현 감독이 만들어놓은 장면 구상안(콘티)·스토리보드(촬영설계도)·이미지(참고 시각자료) 등을 바탕으로 AI 작업을 통해 실제 영상화 결과물을 뽑아내는 데 집중했다. 현 감독은 “영화관에 걸어야 하는 작품을 만드는 터라 사운드 마스터링 등 후반 작업을 위한 스태프 5명이 더 참여했지만, 사실 영화 제작 자체는 3명으로도 충분했다”고 설명했다.

비용이 아무리 적게 들어도 질이 따라주지 못한다면, 프로의 세계에선 살아남기 힘들다. 지난해 2월 오픈AI의 ‘소라’가 공개된 이후, 동영상AI 모델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실력도 일취월장했다. 구글(비오), 메타(무비젠) 등 빅테크뿐 아니라 루마랩스(드림머신), 피카랩스(피카) 등 스타트업들도 줄줄이 서사에 활용 가능한 동영상 모델들을 내놨다. 초창기 영상 AI는 프롬프트(명령어)로 요청한 영상만 생성했다면, 요즘은 알아서 요청한 영상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배경을 생성하고 다양한 카메라 각도를 제공하는 등의 시네마틱(영화적) 효과까지 제공한다. 중국 기업 콰이쇼우는 영상 AI ‘클링’을 통해 내년 2월까지 연간 1억 달러(약 1400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하는데, 블룸버그는 이에 대해 “중국 AI 모델 중 처음으로 해외에서 수익을 창출한 사례”라고 보도했다.

17538202882657.jpg

박경민 기자

◆AI, 영화 흥행예측에 IP활용까지=제작을 위한 AI가 전부는 아니다. 조영신 미디어연구소 bLanC 대표는 “영화 산업은 개봉 전까지 흥행 여부를 알 수 없는 경험재적 특성을 지니고 있어 본질적으로 ‘고위험 고수익(high-risk, high-return)’ 구조”라면서 “AI는 이러한 전통적인 영화 산업의 특성과 흐름을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 산업의 불확실성을 낮춰주는 데 AI를 활용하는 대형 제작사들도 늘고 있다. 워너브러더스는 2020년 1월 AI 분석 기업 ‘시네리틱’과 계약을 맺었다. 시네리틱이 개발한 AI 플랫폼은 영화 수익을 85% 이상의 정확도로 예측한다. 또 배우의 시장 가치 평가나 최적의 개봉 시기 등 흥행 관련된 분석을 통해 영화의 기획부터 배급까지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AI를 활용한다.

영화·드라마·예능 등 다양한 IP(지식재산권)를 보유한 콘텐트 기업은 AI로 콘텐트 활용 전략을 짜기도 한다. 올해 초 AI 콘텐트 비즈니스팀을 꾸린 CJ ENM이 대표적이다. 회사는 최적의 지식재산(IP) 발굴을 위한 콘텐트 특화 모델 ‘AI 스크립트’를 자체 개발했다. 전 세계 콘텐트 유행(트렌드)과 소비자 데이터 등을 분석해 잠재력 있는 원천 IP를 발굴하고 적합한 장르나 미디어를 제안해 주는 기술이다.

수많은 AI 모델이 뽑아내는 결과물 속에서 소위 ‘우리 스타일’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이에 제작사들은 AI 도구를 쓰는 방식을 워크플로(작업 순서)에 녹이는 ‘파이프라인’(작업 흐름)을 구축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감독 출신으로 제작사 ‘스튜디오 애니멀’을 운영하는 조경훈 대표는 “2년 전부터 사내 연구개발 조직을 꾸렸다”며 “시중에 나와 있는 온갖 종류의 AI 솔루션들을 분석해 필요한 모델들을 골라내고, 맞춤형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파이프라인을 설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CJ ENM은 AI 제작 솔루션 ‘시네마틱AI’를 자체 개발해 애니메이션 ‘캣 비기(Cat Biggie)’를 제작했다. 북미 시장을 겨냥한 30부작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인간이 디자인한 캐릭터를 AI에 학습시켜 영상화 작업을 했다. 정창익 AI스튜디오 팀장은 “같은 툴을 써도 어떻게 조합하냐에 따라 결과가 다르다. 시중 범용 AI 모델의 특장점을 반영하고, 오픈소스로 공개된 모델도 가져와 우리 작업 방식에 맞게 하나의 작업 흐름으로 로컬AI를 개발해 제작에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영화계가 넘어야 할 산=AI가 영화 제작에 활발히 활용되더라도 과제는 남아 있다. AI 창작 자체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인 시선은 업계가 풀어야 할 부분이다. 지난해 6월 영국에서는 챗GPT가 각본을 쓴 영화 ‘마지막 시나리오 작가(The Last Screenwriter)’가 대중의 반발로 상영 취소됐다. 해당 영화는 ‘AI가 전적으로 집필한 최초의 장편영화’라는 수식어와 함께 홍보됐는데. 상영하려던 영국 런던 독립영화관 ‘프린스 찰스 시네마’ 측은 SNS(소셜미디어) 계정에 “영화 상영을 홍보한 지난 24시간 동안, 많은 관객이 인간 작가 대신 AI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강한 우려를 나타냈고, 업계 내에서 더 광범위한 문제를 낳을 수 있어 상영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창작자들의 고민은 작품의 권리와 직결돼 있다. 인쇄문화 시대에 형성된 기존 저작권법 틀로는 AI 시대 대응이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임상혁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핵심 문제는 AI가 인간 창작자와 동등한 저작권의 주체가 될 수 있냐는 것”이라며 “AI 학습에 활용하는 데이터와 관련된 인풋(input)과, AI가 자율적으로 콘텐트를 산출하는 아웃풋(output)의 관점에서 각각 권리문제를 따로 풀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혁신의 최전선에서 비즈니스의 미래를 봅니다. 첨단 산업의 '미래검증 보고서' 더중플에서 더 빨리 확인하세요.

17538202884943.jpg

獨 거장 통째 학습 AI 각본가, 영화 예상수익도 85% 맞힌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53118

“삑” 아이폰 찍고 버스 탄다…애플페이, 2년이나 걸린 이유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53674

IT 천재는 이렇게 기록한다…잡생각 다 엮어주는 ‘메모앱’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52255

스테이블코인, 나대면 찍힌다? ‘3000만 대군’ 네이버페이 진격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51948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54,649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