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 남편 폭력도 난민 신청 사유될까…대법, 2심 뒤집고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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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남편의 폭력을 이유로 난민 신청을 한 튀니지 국적 여성에 대해 난민인정 심사 회부를 거부한 법무부의 처분은 위법이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가정 폭력은 사인(私人) 간 문제여서 심사 대상이 안 된다고 본 항소심 결론을 뒤집은 것으로, 난민 심사 요건에 대한 폭넓은 기준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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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경. 연합뉴스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튀니지 여성 A(26)씨가 법무부 인천공항출입국·외국인청장을 상대로 낸 난민인정심사불회부결정취소 소송에서 법무부 처분이 적법하다는 항소심 결론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고 31일 밝혔다. 대법원은 항소심이 “‘난민인정 신청이 명백히 이유 없는 경우’에 대한 법리를 오해했다”고 했다.

A씨는 튀니지에서 거주하던 중 2023년 8월 27일 의료 사증(비자)으로 튀르키예에 입국해 머물다가 같은 해 11월 20일 인천국제공항에 왔다. 입국목적 불분명을 이유로 입국재심실로 안내되자, A씨는 “튀니지에서 전 남편으로부터 지속해서 심각한 폭행을 당해 이혼했고, 후에도 계속 당했는데도 경찰로부터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했다”며 난민 신청을 하게 됐다.

법무부는 A씨가 난민법 시행령 5조 1항상 ‘박해의 가능성이 없는 안전한 국가 출신이거나 안전한 국가로부터 온 경우’(4호) 또는 ‘그 밖에 오로지 경제적인 이유로 난민인정을 받으려는 등 난민인정 신청이 명백히 이유 없는 경우’(7호)에 해당한다며 난민 인정심사에 회부하지 않았다. 이에 A씨가 처분을 취소하라며 소를 제기했다.

지난해 5월 1심은 법무부 처분이 위법하다고 했다. “A씨가 처한 상황 등을 개별적으로 살펴 전 남편으로부터의 위협이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인 신분에서 기인한 박해에 해당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하고, 이는 난민인정 심사 과정에서 면밀하게 판단되어야 할 것”이라며 “난민인정심사 불회부결정 요건은 엄격하게 해석·적용함이 타당하다”고 했다.

하지만 같은 해 11월 2심의 판단은 달랐다. “전 남편에 의한 괴롭힘은 사인에 의한 것으로, 본국 국가기관에 보호를 요청해야 할 문제”이며 “튀니지 법원은 남편의 폭력을 이유로 한 A씨의 이혼청구를 받아들였고, 이혼 후 괴롭힘에 대한 A씨 신고로 경찰이 전 남편을 구금하기도 했다”고 짚었다. 사회 구조적 차원의 박해가 아니라는 취지다.

"신청 이유 없다 명백하지 않다면 원칙적으로 심사" 

대법원은 이를 또다시 뒤집었다. “전 남편에 의한 폭력이 전통적·문화적·종교적 이유를 토대로 제도적 또는 조직적으로 조장·방치되는 등으로써 여성에 심각한 고통을 수반하는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행위라면,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가해지는 ‘박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심사 자체를 거부한 처분은 위법하다고 했다.

아울러 “튀니지 정부가 여성에 대한 폭력에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조치를 취해왔다”는 2심 재판부의 선고 근거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조치 후에도 구조적 한계와 현실적 문제 등이 남아 있다는 각종 자료가 존재하는 점에서, A씨가 충분한 보호를 기대할 수 있음이 명백하다고 인정하기에 의문의 여지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시행령상 ‘난민인정 신청이 명백히 이유 없는 경우’는 “난민 요건의 주요사실에 관한 주장 자체에 심각한 모순이 있거나 객관적 자료와 현저히 배치되는 등 난민인정 신청의 이유 없음이 명백히 드러날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고 밝혔다. 심사해야지만 비로소 ‘이유 없음’을 알 수 있는 경우라면, 원칙적으로 심사해야 한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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