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채석장 발파 사망’ 경찰 부실수사 인정…“고의 없어 법적책임 안 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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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2일 오후 경남 사천시 사천읍 한 석산에서 SUV 차량이 추락, 전복돼 있다. 사진 경남소방본부

채석장 발파 사망사고…경찰 “초동 수사 미흡했다” 

부실 수사 논란이 일었던 ‘경남 사천시 채석장 발파(發破) 사망 사고’과 관련해, 경남경찰청이 당시 사천경찰서 담당 경찰관들의 초동 수사가 미흡했다고 인정했다. 유족과 민주노총이 이들 경찰관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소·고발한 지 9개월 만이다.

하지만 경남청은 사고 처리가 미흡한 것은 맞지만 고의로 부실 수사를 한 것이라 보기 어렵단 이유로 이들 경찰관에게 형사적 책임을 묻지 않고, 내부 징계 절차만 밟기로 했다. 유족과 민주노총은 “제 식구 감싸기”라며 반발했다.

앞서 사천시 한 채석장 발파 작업 중 파편이 튀어 자동차 운전자 등이 숨졌지만, 당시 경찰이 이를 단순 교통사고로 섣불리 판단하면서 불거졌다. 유족의 문제 제기로, 경찰이 재조사한 뒤에야 현장 발파 작업자의 과실로 사망 사고가 발생했단 사실이 드러났다.

‘직무유기’ 고발된 경찰 4명, 형사 책임 면해

경남경찰청은 직무유기 혐의로 고소·고발된 사천경찰서 A경정 등 경찰관 4명을 불송치했다고 30일 밝혔다. 이들 4명은 경찰 업무를 소홀히 한 혐의로 지난해 10월 유족 등에게 고소·고발 당했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지난해 8월 2일 사천시 한 채석장에서 비포장 도로를 달리던 SUV자동차가 발파 작업 후 3m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발파로 발생한 돌덩이 파편이 튀어 차 안에 있던 운전자(60대)와 동승자(50대)를 때리면서다. 둘은 외상성 두부 손상 등으로 숨졌다. 이들은 발파 업체의 대표와 전무였다.

그런데 사고 초기 경찰은 이를 단순 교통사고로 봤다. ‘발파 작업 이후 내려오던 차량이 전복됐다’는 식의 발파 팀장 B씨(40대) 진술만 믿고서다. ‘발파와 무관한 단순 전복(顚覆) 사고’라고 판단한 경찰은 사고 난 자동차 감정도 누락하고, 차 내부 수색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유족은 불의의 사고로 변을 당했다고 생각해 장례까지 마쳤다. 시신도 모두 화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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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 채석장 사고' 유족이 민주노총 경남본부 주최로 지난해 10월 22일 경남 창원시 경남경찰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사천경찰서의 부실 수사를 지적하며 관련자들을 고소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족이 뒤집은 부실 수사…“사고 전 발파 있었다”

사건 국면이 전환된 건 유족의 문제 제기를 하면서다. 사고 차 사진 등을 본 유족이 채석장 감시카메라(CCTV) 영상을 확인해 자동차 전복되기 직전 발파 작업이 있었던 정황을 발견한 것이다. 경남청은 사건 발생 19일 만인 8월 21일 사천경찰서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아 재조사를 벌였다.

경찰은 CCTV 영상을 토대로 발파 비산물이 사고 난 자동차 이동 경로로 날아와 흩어지는 모습을 확인했다. 자동차 감정 과정에서 차 안에 19개가량의 돌도 수거했다. 또 경찰은 발파 팀장 B씨가 발파 작업 중 발파 경고를 하고 위험 구역 안에 감시원을 배치해 출입을 금지하는 등 안전조치를 지키지 않았단 정황도 파악했다. 이를 토대로 경찰은 B씨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지난해 10월 검찰에 넘겼다.

“고의는 아니므로 직무유기 아냐”

하지만 경남청은 당시 부실 수사 책임자 A경정 등의 오판이 직무유기 혐의에 따른 법적 책임을 묻기엔 고의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초동 수사 과정에서 발파 작업과 사망 사고의 관련성을 인식하지 못한 과실은 있지만, 교통사고 처리는 절차에 따라 진행했다는 이유에서다.

경남청 관계자는 “단순 교통사고로 오판해 수사가 미진한 결과를 야기했다”면서도 “(A경정 등) 피의자들이 자신의 직무를 의식적으로 방임하거나 포기했다고 보기는 어려워 직무유기 혐의에 대해선 대상자 4명 모두 불송치했다”고 했다. 다만, A경정 등 4명과 교통조사팀 다른 팀원 1명 등 당시 초동 수사를 진행한 경찰관 5명은 감찰 부서에 통보해 징계하도록 조치했다.

경남청은 사고 당일 작업 중지 명령을 내리지 않은 혐의(직무유기)로 고발된 고용노동부 진주지청 소속 근로감독관 2명도 불송치했다. 작업 중지 명령을 내리려면 당일 사고 원인 조사가 완료돼야 하지만 당시 원인 조사가 끝나지 않아 중지 명령을 내릴 수 없었던 상황으로 판단했다. 당시 근로감독관이 중지 명령을 하지 않으면서 사고 이후에도 발파 작업이 진행, 현장이 훼손됐단 지적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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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 2일 오후 경남 사천시 사천읍 한 채석장 내 비포장 도로에서 SUV 차량이 추락해 전복돼 있다. 사진 경남소방본부

근로감독관·발파업체도 ‘불송치’

또 경찰은 사고 이후 사고 차 폐차 시도, 추가 발파, 서류 반출 등 증거인멸 등 혐의로 유족 등에게 고발된 발파 업체 전·현직 임직원 12명도 수사를 방해할 동기나 의도를 인정할 증거가 충분치 않다고 판단해 검찰에 넘기지 않았다. 보험사 처리 과정에서 폐차가 이뤄지려 했던 등 정해진 업무 절차에 따라 진행하다 불거진 문제로 봤던 것이다.

경남청 관계자는 “재발 방지를 위해 교통사고 발생 시 과학수사 현장 감식을 강화하는 계획을 수립해 조사관들을 지원하고 있다”며 “일선 교통조사관을 상대로 초동 수사 미흡 사례가 없도록 사례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동계 “제 식구 감싸기”…경찰 “재발 방지 노력”

민주노총 경남본부는 “범죄 피해자가 있는데 가해자가 없다는 경남경찰청의 수사 결과를 납득할 수 없다”며 “형식적 절차만 지키면 직무유기죄가 없어진다는 불송치 결정은 전형적인 제 식구 감싸기”라고 반발했다. “핵심 증거물을 보존하지 않은 사실을 단순히 차량 감정 누락 및 관리 미흡으로 둔갑시켰다”고 지적했다.

유족 측은 민주노총을 통해 “경찰의 제 식구 감싸기로 인해 경찰 결과만 바라보는 고용노동부의 수사에도 악영향을 미칠까 우려된다”며 “(발파 업체 실소유주) C씨를 비롯한 책임자들이 법적, 도의적 책임을 질 때까지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고용노동부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산업안전보건법·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여부 등을 검토하고 있다. 숨진 피해자 2명이 발파 업체의 등기 임원(각각 대표이사·전무)일 뿐 실질적인 경영주는 따로 있다고 유족 측이 주장하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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