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美, AI요원 무시하다 허 찔렸다"…세계 정보기관, AI 도입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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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 정보기관의 인공지능(AI) 도입 경쟁을 놓고 중국을 견제해야 하는 미국 역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오픈(Open) AI 등 AI 연구소의 ‘툴’을 보조적 수단으로 활용하는 수준을 넘어 AI의 독립적인 판단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딥시크 앱. 로이터=연합뉴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29일(현지시간) 세계 각국 정부가 벌이는 AI 첩보 게임의 양상을 전하며 미국이 “허를 찔렸다”고 표현했다. 자국에 오픈 AI, 구글 딥마인드 등 프론티어 AI 연구소를 둔 이점을 미 정보기관이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월 중국이 ‘딥시크(DeepSeek)’ 쇼크로 세상을 놀라게 했을 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은 이 같은 지적을 뒷받침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취임에 즈음해 등장한 딥시크를 보고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바이든 행정부가 정보기관, 국방부, 그리고 핵무기를 다루는 에너지부를 향해 프론티어 AI 연구소들과 긴밀히 협력하라고 지시했다”고 언급했다. 정보기관의 AI 접목이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는 질책과 무관치 않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지난 14일 미 국방부가 주요 AI 연구소와 10억 달러(약 1조3800억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한 건 이런 방향성을 반영한다.
유럽도 AI 첩보 전쟁에 뛰어들었다. 프랑스 미스트랄이 영상, 음성, 신호 등 각 수집 정보에 전담 AI를 배정해 의사결정까지 완성하는 과정을 시연한 게 대표적 사례다. 정보를 실시간으로 선별·분석한 뒤 이상이 감지된 정보 등 중요도에 따라 결정 사안이 포함된 보고가 올라가는 방식이다. 한 마디로 정보마다 학습이 이뤄지는 AI를 일종의 전문가로 키워 인간 분석관을 대체한다는 구상이다. 이럴 경우 정보, 판단, 결정으로 이어지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정보기관과 AI 연구소는 AI가 어떤 식으로 첩보전에 활용되는지 구체적으로 밝힌 적이 없지만 한 발 더 나아가 이코노미스트는 AI가 직접 스파이로 나서는 장면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어떤 AI가 에이전트로서 수백 명의 이란 핵 과학자를 식별·조사하고, 그들에게 망명을 권유하기 위해 접촉한다는 시나리오다.

Open AI 이미지. [AP=연합뉴스]
예컨대 AI 에이전트가 이란 내 핵 과학자의 가족 정보, 재정 능력은 물론 이념 성향, 체제에 대한 불만 수준을 분석해 망명 가능성이 높은 후보군을 추린 뒤 가상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 등으로 접근한다. 사람처럼 다가간 AI가 상대의 신뢰를 얻으면 설득, 탈출 지원까지 수행한다는 것이다.
AI가 실전에서 활용됐다는 증거도 있다. 이스라엘 매체 +972 매거진은 지난 1월 “이스라엘군의 챗GPT 엔진 사용량이 (하마스) 전쟁이 발발한 2023년 10월 이후 20배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하면서 고위 지휘관을 정밀하게 암살할 수 있었던 것도 AI 능력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스라엘 당국이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출신의 개발자를 섭외해 만든 AI 시스템 ‘라벤더’는 이미 하마스를 타격할 때부터 표적을 제시하는 사령관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위성과 감청 등 데이터로 우선 표적을 식별해내면 드론이 공격을 퍼붓는데, 명중률뿐 아니라 표적 리스트를 만드는 인력과 시간을 단축하는 데도 효과가 상당했다고 +972 매거진은 전했다.
그러나 미래는 상상과 다를 수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상반된 관측도 내놨다. 기술력이 문제가 아니라, AI를 대하는 군과 정보기관 관계자들의 보수적 태도가 AI 도입의 변수다.
실제 서구 정보기관의 일부 관계자들은 자율적으로 과제를 수행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AI 개발에 대놓고 회의적인 태도를 드러냈다고 한다. 정보기관이 실제로 원하는 건 진보된 AI 에이전트가 아니라, AI의 환각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기능이라는 것이다. 이는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파악하고 추론하는 인과적 사고 능력은 아직 인간만이 할 수 있다는 믿음과 무관치 않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짚었다.
AI는 실수를 줄인 ‘챗봇’의 역할에 충실하면 된다는 보수적 인식 때문에 자체 툴을 만들려다 시대에 뒤처지는 점도 문제다. 바이든 정부에서 기술 정책에 관여한 타룬 차브라 엔스로픽 안보정책 책임자는 “진정한 혁신은 단순히 챗봇으로 사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며 “일단 AI를 사용하기 시작했다면 임무를 수행하는 방식을 어떻게 재설계할 것인지 스스로 생각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중국과 경쟁 구도에서도 위기감이 팽배하다. 지난 23일 미 정부가 국방부와 정보기관에 “경쟁국과 비교해 미국의 AI 도입 속도를 정기적으로 평가하고 지속적 접근방식을 수립하라”고 지시했지만 때가 늦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DeepMind 로고. 로이터=연합뉴스
실리콘밸리의 싱크탱크인 보안기술연구소(Institute for Security and Technology) 관계자는 “중국이 딥시크를 군사 및 정보 분야에 얼마나, 어떻게 활용하는지 우리의 이해에 큰 격차가 생겼다”며 “중국은 우리보다 규제 장치가 적어 강력한 통찰을 훨씬 빠르게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카트리나 멀리건 오픈AI 안보 총괄 책임자는 “과거의 방식대로 일을 계속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범용 AI 기술력 경쟁에서는 미국이 이길 수 있지만 도입 경쟁에선 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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