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은 30일(현지시간) 엑스(X) 계정에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한미 무역합의 문서에 서명하는 사진을 올렸다. 백악관이 공개한 한미 무역합의에 서명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모습. 사진 백악관 엑스 계정

한·미 양국은 미국이 오는 1일부터 부과하기로 예고한 상호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내리는 데 31일 합의했다. 대신 한국은 미국과의 조선업 협력 등에 3500억 달러(486조원)를 투자하기로 했고, 액화천연가스(LNG) 등 미국 에너지 제품을 1000억 달러(139조원) 규모로 구입하기고 했다. 한국은 국내 민감도가 높던 쌀과 쇠고기 시장 추가 개방은 방어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주 내로 정상회담을 하기로 했다.

한·미 양국은 각각 이런 내용의 협상 결과를 발표했다. 협상을 위해 미국 워싱턴DC에 머물던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등이 이날(현지시간으로 30일)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뒤 협상이 최종적으로 타결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협상 타결 직후 페이스북에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며 “주요국들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여건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상호관세율 15%는 앞서 일본과 유럽연합(EU) 등이 미국과 타결한 수준의 관세율이다. 협상 타결 직후 긴급 브리핑을 연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우리 주력 수출 품목인 자동차 관세도 15%로 낮췄다”고 밝혔다. 다만 한국은 미국과 기존에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있어 자동차 관세율이 0%였던 데 반면, 일본과 EU는 2.5% 관세율이었다. 상승폭은 한국이 큰 것이어서 상대적 경쟁력 하락 우려도 나온다. 김 실장은 “우리도 (12.5% 관세율을) 당연히 주장했다”며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3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미 관세 협상 타결 관련 브리핑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이 조성하기로 한 3500억 달러 미국 투자 펀드는 조선업 협력에 활용될 1500억 달러와 반도체·원전·2차전지·바이오 등에 투자할 2000억 달러로 구성돼 있다. 조선업 협력 방안은 이번 협상 과정에서 한국이 미국을 설득했던 가장 중요한 협상 카드였다고 한다. 미국은 쇠퇴한 자국 조선업의 한계를 보완하고, 중국과의 해군력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동맹과의 조선업 협력에 관심이 많았다.

김 실장은 “세계 최고의 설계·건조 경쟁력을 보유한 우리 조선 기업들과 소프트웨어 분야의 강점을 보유한 미국 기업들이 힘을 합한다면 자율운행, 선박 등 미래 선박 분야에서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이번에 합의한 3500억 달러 규모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김 실장은 “일본과 우리의 투자 펀드 규모를 경제 규모만으로 단순 비교하는 것은 어렵다”면서도 “한국과 일본의 지난해 기준 무역 적자는 규모는 유사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일본보다 작은 규모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일본은 5500억 달러 투자 펀드를 만들기로 했다. 김 실장은 “더욱이 우리 기업이 주도하는 조선 펀드 1500억 달러를 제외한다면 우리의 펀드 규모는 2000억 달러로 일본의 36%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이 30일(현지시간)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면담을 위해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서쪽 출입문 검문소를 통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투자 펀드는 직접 투자의 비중은 적다고 대통령실은 설명했다. 김 실장은 “직접 투자는 비율이 매우 낮을 것”이라며 “대부분이 대출과 보증”이라고 설명했다. 그 중에서도 한국무역보험공사나 한국수출입은행의 보증이 제일 비중이 크다고 덧붙였다. 다만 ‘직접 투자 비중이 구체적으로 얼마냐’는 질문엔 “아무도 모른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셀렉트(선택)한 사업이 적격인지 판단하고 논의하는 과정에서 세부적으로 논의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김 실장은 “식량 안보와 우리 농업의 민감성을 감안해 국내 쌀과 쇠고기 시장은 추가 개방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했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협상 과정에서 한국에 쌀 추가 수입과 30개월령 이상 쇠고기 수입을 압박했다. 쇠고기에 대해선 한국이 “이미 한국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1위”라는 점을 주장하며 막았다고 한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 타결 이후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대한민국이 미국 제품(자동차, 트럭, 농산물 등 포함)에 대해 완전히 개방하기로 합의했다”며 농산물도 개방 품목으로 썼다. 김 실장은 “정치 지도자의 표현으로 이해한다”며 “농축산품 논의가 전혀 없었고 합의된 바도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왼쪽),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주미한국대사관에서 한미 무역협상 타결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 글에서 “앞으로 2주 안에 이 대통령이 양자 회담을 위해 백악관을 방문할 것”이라고 썼다. 구체적인 한·미 정상회담 시점은 양국 외교 라인이 조율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별도로 대한민국 자체 투자 목적으로 대규모 자금을 투자하기로 했다”며 “이 대통령이 방미했을 때 발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3500억 달러 외 추가 투자가 발표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김 실장은 “정상회담이 열리면 한·미 간 상호 호혜적인 결과를 낼 수 있는 투자 패키지가 나올 것 같다”며 민간 영역에서 이뤄지는 투자일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