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조선3사 시총 2.4배 ‘마스가 펀드'...한국이 더 적극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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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6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한화 필리조선소 한화필리십야드 4도크에서 국가안보다목적선박이 건조되고 있다. 연합뉴스

한미 관세협정이 30일(현지시간) 타결되면서 1500억 달러 규모로 조성되는 조선업 펀드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3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가진 한미 관세협정 브리핑에서 “한미 조선협력 펀드 1500억 달러는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하며 우리 기업의 수요에 기반해 구체적인 프로젝트에 투자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특히 세계 최고의 설계·건조 경쟁력을 보유한 우리 조선 기업과 소프트웨어 분야에 강점을 보유한 미국 기업이 힘을 합한다면 자율운행선박 등 미래 분야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지난 25일(현지시간) 하워드 러트닉 장관과의 한미 산업장관 협상에서부터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를 제안해 협상 지렛대로 썼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통상 협상단은 이날 주미한국대사관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1500억달러(약 208조5000억 원) 규모 조선 협력인 '마스가 프로젝트'가 오늘 합의에 가장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1500억 달러…어디에 어떻게 쓰이나

조선업계와 정부에 따르면 조선업 펀드의 주요 쓰임새는 ①국내 조선사의 미국 조선소 인수 및 시설·인프라 투자비(대출) ②국내 조선사가 투자한 현지 조선소의 선박 수주 시 선박금융(보증) ③자율주행선박·쇄빙선 등 미래투자 등 크게 세가지다.

1500억 달러(약 208조원)는 30일 종가 기준 국내 조선3사의 시가총액 합계(약 88조원)의 2.4배에 달해 개별 기업이 이를 감당하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펀드의 재원은 조선사의 현지 직접 투자 외에 한국수출입은행·한국무역보험공사 등 국책 금융기관의 대출·보증이 상당 부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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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영 디자이너

금융지원으로 유동성을 확보한 국내 조선사가 미국 조선소를 추가 인수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공격적 인수합병(M&A)을 추진하는 한화오션이 나설 가능성이 크다. 한화오션은 지난해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필리조선소를 인수했고, 앨라배마·캘리포니아주에 조선소가 있는 호주 해양방산기업 오스탈 지분(9.9%)도 확보한 상태다. HD현대중공업은 아직 미국 조선소 인수에 나서지 않았지만 “상황이 바뀐 만큼 매물만 좋다면 적극 검토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수석연구원은 “1500억 달러는 일종의 총 한도 개념으로 10~20년의 장기 계획을 통해 쓰이게 될 것”이라며 “특히 미국에 ‘퍼주기’가 되면 곤란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서 투자를 회수 가능한 형태로 구성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부는 왜 조선업 펀드에 적극적이었나

김 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협상 과정에서 ‘조선업 펀드를 더 키울 수 있다’고 했지만, 미국은 ‘그렇게 투자처가 안 나온다’며 난색을 표명했다”고 설명했다. 한국 조선업의 미국 시장 진출 효과가 확실한 조선업 펀드에 한국 정부가 적극적이었다는 얘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조선업 부활 의지는 이미 여러 차례 확인됐다. 미국은 해군력을 증강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2054년까지 300억 달러(약 42조원)를 들여 함정 364척을 신규 건조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액화천연가스(LNG)선, 컨테이너선 등 상선 수요도 꾸준하다. 하지만 미국의 글로벌 선박 수주 점유율은 지난해 0.5%에 불과하다(클라크슨리서치). 안보상 이유로 중국산 크레인 교체 예산(2029년까지 200억 달러)을 투입했지만 정작 미국 내 생산 능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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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오션이 지난해 6월부터 올해 3월까지 유지·보수·정비(MRO)한 미 해군 7함대 소속 '윌리 쉬라호'가 정비를 마치고 지난 3월 13일 경남 거제 한화오션 사업장을 출항하고 있다. 오른쪽 아래는 지난해 9월 입항당시 모습. 한화오션

상선 건조 기술이 일본보다 우수하고, 이지스함 등 전투함 구축 능력과 크레인 제작 기술을 모두 갖춘 한국 조선사들로서는 미국의 조선업 부활 기류에 올라탈 기회일 수 있다. 한 조선업계 임원은 “미국 조선업 부활은 바이든 정부부터 시작됐기 때문에 정권이 바뀌어도 계속될 정책이어서 장기적인 먹거리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소식이 알려진 31일 국내 조선사 주가는 뛰고 있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직접 미국으로 날아가 관세 협상을 측면 지원한 한화오션은 오전 11시30분 현재 전일 대비 13.54% 올랐고 HD현대중공업(5.10%), 삼성중공업(1.69%)도 오름세다.

다만 이신형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미국이 한국의 투자금, 기술력으로 조선업 재건에 성공해도 선박 발주를 충분히 할 지는 의문”이라며 “초기부터 과도한 투자에 나서기보다는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내주는 식의 ‘살리미식 투자’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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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3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미 관세 협상 타결 관련 브리핑 뒤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동맹국에 전략자원 수리를 맡기는 장비거점운영유지체계(RSF) 사업을 추진 중인 미국이 MRO 분야에서 한국에 더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할 수도 있다. 현재 한국은 군함 건조·수리를 해외에 맡기지 못하게 하는 미국 ‘반스-톨레프슨법 수정법’ 탓에 비전투함 MRO만을 맡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예외’를 인정하면 전투함 MRO도 맡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미 국방장관은 이날 통화에서 “함정 MRO 등 동맹협력을 확대하자”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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