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겉으론 침묵, 물밑선 "버텨라"…李, 쌀·소고기 방어전 지휘했다 [관세협상 막전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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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3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민주권시대 공직자의 길' 고위공직자 워크숍에서 '국민주권 정부 국정운영 방향과 고위공직자 자세' 주제로 특강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오리가 우아한 자태로 있지만, 물살에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 물밑에선 얼마나 생난리입니까.”
이재명 대통령이 31일 고위 공직자 워크숍에서 한·미 통상 협상 과정에 대해 꺼낸 비유다. 이 대통령은 “(그동안) 제가 말을 하면 악영향을 주니까, 말을 안 했다”며 “가까이 있는 참모들은 안다. 우리가 얼마나 노심초사하면서 어떤 행동을 하고 있었는지”라고 말했다.
실제 이 대통령은 협상 초기부터 겉으로는 ‘전략적 침묵’을 유지한 채, 물밑으로는 협상에 일일이 관여해 왔다. 미국 정부의 농축산물 추가 수입 요구가 워낙 강했던 탓에 정부 일각에선 ‘쌀이나 쇠고기 양보는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나왔으나, 이 대통령은 “조금만 더 버텨 달라”고 협상팀에 지시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대통령 판단에 따라 농축산물이 가진 정치적 민감성과 역사적 배경을 충분히 감안해서, 그쪽의 추가 개방을 막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한·미 협상 과정에서도) 당연히 고성이 오갔을 거고, 정부 내에서 협상 전략을 논의할 때도 부처 간 고성이 오갔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대신 산업통상자원부 제조산업정책관실에서 고안해 낸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설득하는 핵심 카드로 삼았다. 산자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구호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에 한 글자를 추가해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의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라고 이름 붙였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산자부는 마스가(MASGA)라고 적은 모자도 20개 제작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붉은색 ‘마가(MAGA)’ 모자를 즐겨 쓰는 점에 착안해, 트럼프 대통령의 참모들을 설득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로 통상 협상을 마무리하기까지 대통령실은 단계적 접근법을 취했다. 처음엔 포괄적인 협력 방안만 제시해 미국 측의 니즈(needs)를 파악한 뒤, 조선업에 특화된 펀드 방안을 제시하면서 디테일을 공개했다는 것이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하워드 러트닉 장관의 자택에서 진행된 협상에선 미리 준비한 패널을 꺼내 보였다. 정부 관계자는 “대통령은 ‘국익 관점에서 당당하게 협상에 임하라’는 큰 차원의 지침뿐만 아니라, 세부적인 전략이나 맨데이트(mandate·협상권 위임)까지 직접 챙겼다”고 말했다.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기업의 참여를 끌어낸 전략도 주효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21일 한화그룹 김동관 부회장과 만났고, 김 부회장은 28일 미국 워싱턴DC로 출국해 정부 협상단을 측면 지원했다. 미국의 필리조선소를 인수해 운영하는 한화그룹은 마스가 프로젝트의 핵심 기업으로 꼽힌다. 한·미 협상에 관여한 정부 관계자는 “미국 측은 한국 조선업의 ‘기술 명장’ 같은 숙련된 근로자들이 멘토가 되어서 현지 인력을 교육할 수 있다는 점에 굉장한 매력을 느꼈다”며 “이런 건 기업의 협력 없이는 불가능했던 부분”이라고 말했다.
협상이 막바지에 다다를 무렵엔 이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이 대통령은 지난 30일 오후엔 미국에 체류 중인 구윤철 경제부총리와 김 장관 등 협상단과 외교망을 통해 1시간 30분가량 최종 협상 시나리오를 점검했다. 31일 새벽에도 관저에서 실시간으로 수차례 상황을 보고받았다. 정부 협상단은 이 대통령이 정한 범위 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1시간 남짓 최종 면담을 진행했고, 투자액은 다소 늘었으나 쌀·쇠고기의 양보 없이 상호 관세를 25%→15%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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