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스스로 단단해지는 '영악한' 아이들… 영화 ‘수연의 선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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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수연의 선율'의 한 장면. 수연(김보민, 왼쪽)은 어떤 부부에게 입양되기 위해 먼저 입양된 아이 선율(최이랑)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다. 사진 싸이더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홀로 남겨진 13살 소녀 수연(김보민). 보육 시설에 가지 않기 위해 보호자를 찾아 나선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7살 소녀 선율(최이랑)을 입양한 부부를 발견하고는, 선율에게 접근한다. 자신 또한 입양되고 싶어서다.

영화 '수연의 선율' 최종룡 감독 인터뷰

수연은 부부의 호감을 사는데 성공하지만, 부부는 어느 날 갑자기 종적을 감춘다.
영화 '수연의 선율'(6일 개봉)의 수연은 여느 청소년 성장담의 주인공과 다르다. 차가운 세상에 홀로 내던져 졌지만, 슬픔과 불행에 짓눌리지 않는다. 타인의 도움 없이 스스로 살 길을 찾아간다.

수연의 보호자 찾기로 시작한 영화는 극적 반전을 통과하며 보호와 책임, 가족의 의미 등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최종룡(41)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이 영화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초록뱀미디어상, CGK(한국촬영감독조합) 촬영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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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수연의 선율'을 연출한 최종룡 감독. 사진 싸이더스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최 감독은 "영화 덕분에 아이들에 대한 궁금증과 두려움이 해소됐다"고 말했다.

영화의 출발점은.  

"방과 후 교사로 5~6년간 아이들에게 글쓰기 등을 가르쳤는데, 어느 순간 아이들과의 관계가 힘들어졌다. '아이들은 어떤 존재일까'라는 궁금증이 들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주인공인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아이들은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단선적 사고에서 벗어나게 됐다."

수연은 매우 독특한 캐릭터다.    

"주체적이고 자립적인 캐릭터를 통해 아이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다. 수연처럼 불우한 환경에서도 굉장히 단단한 아이들이 많다. 환경이 그들을 단련시킨 거다. 가르친 학생들 중에 수연 같은 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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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수연의 선율'의 수연(김보민)은 주체적이고 자립적인 캐릭터다. 사진 싸이더스

선율을 입양한 부부는 양육 자격이 없어 보인다.

"아이가 예뻐서 입양했지만, 역량 부족으로 아이를 방치하고 유튜브 후원금 모금에 이용한다. 무책임한 쇼윈도 부부다. 아내 유리는 오히려 수연에게 모성을 갈구하는데, 진짜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을 상징한다."

차가운 세상은 수연과 선율을 너무 일찍 어른으로 만들어 놓았다. 수연은 유리의 마음에 들기 위해 갈치조림까지 만들고, 선율의 하교 길을 책임지겠다고 말한다. '영악'해 보이지만, 나름의 '영민'한 생존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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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수연의 선율'의 한 장면. 선율을 입양한 부부가 수연과 함께 단란한 한 때를 보내는 모습. 사진 싸이더스

수연과 선율, 부부의 단란한 한때는 카메라가 흔들리지 않는다.

"겉으론 반듯한 집을 고정샷으로 표현했다. 쇼윈도 유리창 같은 세계다. 부부가 사라지고 나선 다시 핸드헬드 촬영으로 돌아간다. 흔들리고 불안한 아이들의 심경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선율의 목표는 버림 받지 않는 것이다. 착하고 말 잘 듣는 어린이가 돼야 한다는 강박, 표현성 언어 장애는 나름의 생존 전략이다. 다친 곤충들을 플라스틱 통에 넣어 '지켜주는' 선율은 침대 밑이나 옷장 안에서만 잠을 잔다. 해맑아야 할 7살 소녀의 눈엔 체념, 원망, 갈구 등 온갖 감정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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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수연의 선율'의 선율(최이랑)은 자신을 입양한 부부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해 착하고 말 잘 듣는 아이처럼 행동한다. 사진 싸이더스

선율을 이용만 했던 수연이 나중엔 마음의 문을 여는데.  

"부부가 사라진 뒤 수연은 선율을 짐짝처럼 여긴다. 그 전에도 마음을 줬던 적이 없다. 하지만 1년이 지나서야 수연은 선율 또한 자신처럼 보호자를 간절히 원했고, 그 대상이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수연의 성장이다."

관객들이 영화에서 무엇을 느꼈으면 하나.

"'의지할 곳 없는 두 소녀의 보호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영화를 봐주셨으면 한다. 그런 마음을 갖는 게 모든 위대한 일의 시작이 아닐까."

차기작은 뭔가.  

"어른들이 주인공인 작품을 준비 중이다. 영화 속 유리처럼 진짜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들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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