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美 핵잠수함 수리만 하다가 퇴역했다…조선업 붕괴한 미국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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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을 누비며 동아시아의 핵 억제력 강화에 기여했던 미국의 핵 잠수함도 미 조선 산업 붕괴의 후폭풍을 피하지 못했다.
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핵 잠수함 USS헬레나는 최근 몇 년 동안 바다에 나가는 시간 보다 부두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며 “해군의 정비 문제를 대표하는 상징이 됐다”고 지적했다. USS헬레나는 유지·보수 지연으로 6년간 정비와 시험 운행을 거듭한 끝에 지난달 퇴역했다.

미 해군이 운영하는 로스엔젤레스급 핵 잠수함 USS 오클라호마시티. USS 헬라나와 동급이다. [AP=연합뉴스]
1986년 진수된 USS헬레나는 로스엔젤레스급으로 미 샌디에고와 하와이를 거점 삼아 태평양에서 주로 활동했다. 과거 진해와 제주의 해군기지에도 정박했던 USS헬레나는 서해를 비롯한 한반도 인근 해역에서 한·미 연합 훈련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작전을 펼쳐왔다.
USS헬레나는 2017년 말 미 해군이 미국 최대 방산 조선사인 헌팅턴 잉걸스에 유지·보수를 맡기면서 정비에 들어갔다. 당초 몇 개월을 예상한 정비였지만 방어 시스템 개량과 선체 정비 등 추가 정비가 거듭되며 약 4년이 지난 2022년 1월에야 미 해군에 되돌아갈 수 있었다. 그 사이 수억 달러의 예산이 들었던 데다가, 이듬해에도 추가 정비와 시험 운항을 반복하며 해군 조선소를 들락거렸다고 한다.
정비 6년만에 지난해 6월 쿠바의 관타나모만 해군 기지에 입항하는 등 작전에 다시 투입됐지만, 출항 준비하던 중 젊은 수병이 정비 중 부주의로 열어둔 전원 장치에 감전돼 사망하는 사고도 발생했다. 지난해 7월부터 운항을 멈춘 USS헬레나는 결국 1년 뒤에 공식 퇴역했다. USS헬레나의 정비 지연과 인명 사고는 미국이 군함 건조뿐 아니라 이미 보유한 선박과 잠수함 유지·보수·정비(MRO)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을 부각하는 사례라고 WSJ은 꼬집었다.
WSJ은 미 해군의 전력 약화의 원인을 미 조선 산업의 쇠퇴와 맞물린 MRO 역량 약화에서 찾았다. 네 곳밖에 남지 않은 미 정부 소유 조선소가 해군의 핵추진 항공모함과 잠수함 정비를 도맡고 있지만, 장비 노후화와 숙련공 이탈, 도크 부족으로 정비 지연은 일상이 됐다. 선박 수리 지연 때문에 기존 함대의 작전 시간은 길어지고, 그에 맞춰 정비 기간이 더 길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 미시시피주에 위치한 헌팅턴 잉걸스 조선소에서 알레이버크급 이지스 구축함 '테드 스티븐스'를 진수하는 모습이다. 사진 HD현대중공업
MRO 지연 문제는 중국에 맞서 빠르게 함정을 늘려야 하는 미 해군에게도 골치거리다. 미 의회예산국(CBO)은 지난 1월 발간한 해군의 2025년 조선 계획 분석 보고서에서 “10년 넘게 이어진 정비 지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2054년까지 목표로 한 381척의 전투함 건조를 달성할 수 없다”며 “MRO 지연을 줄여야 함정 규모를 효과적으로 늘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 의회조사국(CRS)는 지난 4월 보고서에서 “중국 해군은 이미 370척 이상을 보유한 세계 최대 해군”이라며 “2030년까지 435척의 함정을 보유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 해군은 지난해 기준 296척을 보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미 조선업 투자 펀드인 ‘마스가(MASGA·Make America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미국 조선업의 경쟁력을 강화에 사활을 걸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의 가려운 곳을 적확하게 겨냥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에선 USS헬레나보다 더 심각한 USS보이시 정비 지연도 논란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USS헬레나와 동급 잠수함인 USS 보이시는 2015년부터 10년째 정비 지연으로 작전에 투입되지 못하고 있다. 미 해군은 12억 달러(약 1조6600억원)를 투입해 2029년에 정비를 마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에 다릴 코들 미 해군참모총장은 지난달 24일 미 상원에서 “이 잠수함이 이렇게 오랫동안 방치됐는데, 얼마나 용납할 수 없는 일인지 알고 있다”며 “해체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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