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확성기 철거, 한미훈련 연기 검토…李정부 잇단 '대북 유화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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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는 4일 문자공지를 통해 ″우리 군은 이날부터 대북확성기 철거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군 관계자들이 대북확성기 철거 작업하는 모습. 사진 국방부 제공

군 당국이 최전방에 설치한 고정형 대북 확성기를 4일부터 전면 철거에 들어갔다. 지난해 6월 윤석열 정부가 북한의 오물풍선 도발에 대응해 확성기를 꺼낸 지 14개월 만이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직후 확성기 방송을 중단했고, 이날 확성기까지 철거하면서 잇따라 대북 유화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다. 다만 북한은 여전히 “한국과 마주 앉을 일도, 논의할 문제도 없다”는 입장이라 향후 반응이 주목된다.

軍 "긴장 완화 도움 되는 실질 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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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기자

국방부는 4일 “우리 군은 오늘부터 대북 확성기 철거를 시작했다”며 “이는 군의 대비 태세에 영향이 없는 범위 내에서 남북 간 긴장 완화에 도움이 되는 실질적 조치를 시행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군 소식통들에 따르면 이번 철거는 최전방 군사분계선(MDL) 가까이에 설치했던 24개의 고정형 대북 확성기가 대상이다. 16개의 이동형 확성기는 지난해 말부터 사실상 운영하지 않았다. 이날부터 수 일에 걸쳐 모든 고정형 확성기를 뗀다는 게 국방부의 설명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북한과의 사전 협의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앞선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때처럼 선제적으로 철거를 결정했다는 설명이다. 북한은 이날 오후까지 대남 확성기를 철거하지 않은 상태다.

앞서 이재명 정부는 출범 1주일 만인 6월 11일 오후 2시 부로 확성기 방송을 중단했다. 군 당국은 이 때부터 철거까지 검토해왔다고 한다. 대통령실은 방송 중단을 발표하며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북한의 중대한 도발이 없었던 상황에서 긴장 완화를 위한 선제적 조치로 이번 결정을 내렸다”며 “이는 남북 간 군사적 대치 상황을 완화하고 상호 신뢰 회복의 물꼬를 트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다만 북한의 행동 변화 없이 연이은 선제 조치를 이어갈 경우 오히려 북한의 대남 길들이기에 말려들 수 있다는 우려도 작지 않다. 특히 대북 확성기 방송은 북한의 ‘최고 존엄’을 직접 비판하는 내용으로, 북한 당국이 매우 민감해 하는 대표적인 비군사적 조치로 꼽힌다.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얼마 되지 않는 실효적 대북 카드인 셈이다.

이와 관련, 북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달 28일 대남 비난성 담화를 내면서 정부의 이런 조치와 무관하게 '적대적 두 국가 관계' 노선이 달라지지 않았음을 분명히 했다. 김여정은 “리(이)재명 정부가 아무리 동족 흉내를 피우며 온갖 정의로운 일을 다하는 것처럼 수선을 떨어도 한국에 대한 우리 국가의 대적 인식에는 변화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대북 방송 중단도 “평가 받을 만한 일이 못 된다”고 깎아 내렸다. “스스로 자초한 모든 결과를 감상적인 말 몇 마디로 뒤집을 수 있다고 기대하였다면 엄청난 오산”이라며 더 적극적인 행동으로 성의를 보이라는 식의 발언도 했다.

정부가 ‘남북 신뢰 조치’를 앞세워 확성기 카드를 먼저 접으면, 향후 북한이 오물풍선 등 다시 도발을 하더라도 이를 다시 꺼낼 명분이 미약해진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도발 대응 수단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상황을 예단하지 않겠다”고만 했다.

9·19 남북 군사합의 효력 복원 수순 밟나  

정부 내에선 6월 확성기 방송 중단 때 북한이 대남 확성기를 끈 적이 있는 만큼 이번에도 북한이 대남 확성기 철거 등으로 호응해 올 수 있지 않겠냐는 기대감도 감지된다.

정부가 속전 속결로 확성기 방송 중단→철거를 결정한 건 이 대통령의 공약 사항이었던 9·19 남북군사합의의 효력을 되살리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으로 볼 여지도 있다. 앞서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6월 4일 9·19 군사합의의 전부 효력정지를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뒤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어 확성기 방송 설치·재개를 결정했는데, 이재명 정부는 이를 되돌리기 위한 수순을 밟고 있을 가능성이다.

정부는 이달로 예정됐던 한·미 을지자유의방패(UFS) 연합연습의 실기동훈련(FTX) 일부를 9월로 연기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김여정이 앞선 담화에서 “침략적 성격의 대규모합동군사연습”을 거론했기 때문이란 해석이 나왔다. 이런 연이은 유화 조치의 배경으로 이 대통령이 오는 8·15 경축사 등을 통해 전향적인 대북 구상을 내놓기 위한 분위기 조성 차원일 가능성도 거론된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2018년 4·27 판문점 선언의 후속 조치로 그해 5월 대북 확성기를 철거했다. 당시 판문점 선언에서 지상·해상·공중에서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고 “5월 1일부터 MDL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 행위들을 중지하고 그 수단을 철폐”하기로 한 데 따른 것이다. 남북 정상은 같은 해 평양 공동선언(9월 19일)의 부속합의서로 9·19 군사합의를 채택했고, MDL 5㎞ 이내의 적대 행위를 중단하기로 했다.

정동영 "우리가 선을 취하면 저쪽도 선으로 응할 것"

김여정의 담화에 호응하듯 ‘한·미 연합연습 조정’ 카드를 띄운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이날 군 당국의 확성기 철거 조치에 대해 “대통령의 지시로 확성기 방송이 중지됐고, 그 연장선상에서 철거 조치는 잘한 일”이라며 “무너진 신뢰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그런 조치의 하나”라고 평가했다.

정 장관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인 진우스님을 만난 자리에서 “지난 정부 때 강대강으로 서로 맞서 그 결과로 (관계가)단절되고 나빠졌는데 김정은 북쪽 위원장도 강대강, 선대선을 강조해왔기 때문에 우리가 선을 취하면 저쪽도 선으로 응할 거라고 생각된다”며 이처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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