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10만원 투자 47% 수익…그때부터 악랄한 유혹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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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시×, 왜케 그지들밖에 없냐.”

“2억 하고 자판(상담사 역할 조직원) 떼야지.”

“옷 입어 쩜오(강남 고급 유흥주점) 가게. 이번 달 꼴등이 내는 거 알지.”

투자 리딩사기 범죄자들이 텔레그램에서 나눈 대화다. 내용은 거칠고 노골적이다. 피해자들을 ‘거지’ 취급했고 누군가 평생 모았을 2억원을 우습게 여겼다. 뜯어낸 돈은 서울 강남 유흥업소에서 수천만원씩 탕진했다. 경찰에 검거된 사기 일당은 온몸에 문신을 새긴 조폭들이었다. 이들은 ‘여성 투자 상담 전문가’를 사칭했다. 외모도, 전문 투자 경력도 전부 조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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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박모씨가 상담사(조직원)와 나눈 카카오톡 대화 내용.

피해자 박모(62)씨는 이들에게 당했다. 박씨는 문자메시지를 눌렀다가 카톡 상담에 초대됐다. 상담사는 “적은 돈도 괜찮으니 사이트에서 얼마나 수익이 나는지 보라”고 했고 박씨는 10만원을 보냈다. 다음 날 상담사는 “차트값이 매우 좋아 4만7000원가량의 수익을 올렸다”며 돈을 바로 찾아가라고 했다. 하루 만에 47% 수익을 올린 박씨는 얼마 뒤 300만원을 투자했다. 이게 화근이었다. 첫 투자금 300만원이 며칠 뒤 625만6480원으로 불었다. 상담사가 추가 투자 여부를 물었지만 여유자금이 없던 박씨는 이를 거절했다. 대신 돈을 찾겠다고 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달랐다. 3일간 진행되는 프로젝트라고 미뤘고 사흘 뒤엔 “차트가 지연돼 내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일주일 만에 박씨의 투자금 300만원은 4418만원으로 늘었다. 상담사는 “더 좋은 수익을 보셨다”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돈을 찾으려면 투자 수수료를 내야 했다. 수수료는 수익의 25%로 1002만원이나 됐다. 투자금 300만원의 3배가 넘었다. 결국 박씨는 자신의 돈을 찾기 위해 현금서비스까지 받아 1002만원을 납부했지만 이번엔 입금자 이름이 잘못돼 돈을 다시 보내야 한다고 했다. 정확하게 입금하지 않으면 규정상 투자금을 돌려주지 못하게 돼 있다는 것이었다. 동생의 친구에게 빚까지 내 돈을 보내고 나자 입금자 이름을 잘못 보낸 투자자는 ‘증거금’ 납부가 필요하다며 또 입금을 요구했다.

“여성 투자상담가, 원금보장” 사기대본 짜 유혹, 111억 챙겼다

박씨가 자신의 돈을 되찾기 위해 낸 돈은 네 차례에 걸쳐 6600만원이 넘었고, 이 조직은 돈을 챙긴 뒤 연락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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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민 기자

리딩사기는 선물·코인 등 종목 추천으로 수익을 보장한다며 투자를 유도해 빼돌리는 금융사기다. 2023년부터 1년 반 동안 집계된 피해금액이 1조원에 육박할 정도로 확산일로다. 중앙일보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리딩사기 조직의 텔레그램 대화 내용을 단독으로 입수했다. 2022년 11월부터 2024년 1월까지 피해자 199명에게 111억원의 사기 행각을 벌인 총책과 조직원 등 28명의 은밀한 대화 기록이다. 조직원들은 텔레그램을 통해 정보를 교환하며 범행을 도모했고 실행에 옮겼다. 구체적인 범죄 수법과 조직의 실체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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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민 기자

경찰에 적발된 ‘캐피털게인’ 등 4개 리딩 투자 사이트를 운영한 조직의 경우, 역할 분담이 체계적이었다. 28명 가운데 18명이 피해자를 유인하는 상담사 사칭 조직원 즉 ‘자판’이었다. 이들은 3개 팀으로 나뉘어 피해자를 끌어들였다. 여기에 지원이 붙는다. 문자 발송 업자와 디자이너(각종 문서·사진 조작) 등 3명, 돈을 받고 빼돌리기 위한 ‘인출집’과 ‘장집’(대포통장을 제공하는 업자), 상품권 업자(환전책) 등 5명, 그리고 전산과 자금을 관리하는 본사 실장과 조직 총책 하모(26)씨로 이뤄졌다.

텔레그램 방은 사기에 동원되는 정보를 공유하고 편취한 돈을 집계하고 관리하는 사이버상의 범죄 ‘본사’였다. 기능에 따라 관리자방, 승인방, 결제방, 소통방, 디자인방, 리모콘방, 멘트방, 문자방 등 8개로 나뉘어 역할을 분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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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사기 조직이 운영한 텔레그램방 대화 내용.

‘승인방’은 입출금과 가입 여부를 통제하는 곳이다. 피해자들이 문제의 계좌를 금융당국에 신고하면 바로 출금이 정지되기 때문에 뜯어낸 돈을 자신들이 인출할 수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피해자들이 전달받는 실물 계좌처럼 돈이 거래된 장면은 이런 방식을 통해 조작된 가짜다. ‘소통방’에선 위험을 전파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작전 내용이 오갔다. “오늘 신고한 거 같은 회원?”이라는 문자가 뜨고 회사 입금계좌가 막히면 색출이 시작된다. 대화가 갑자기 사라진 회원이 표적이다. ‘관리자방’에선 입출금 내역을 정산했다. 하루 입금된 돈만 4억원이 넘는 경우도 있었다. ‘리모콘방’은 범행에 이용된 나스닥·오일 지수 등을 조직원들 요청에 따라 ‘마사지’를 해서 보냈다.

경찰에 압수된 ‘리딩사기’ 범죄조직의 컴퓨터에선 ‘스크립트’가 발견됐다. 일종의 ‘사기 실행 대본’이다. 모니터 뒤에 숨어 상담사를 가장한 조직원들이 스크립트를 이렇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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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박모씨와 상담사(조직원)의 카카오톡 대화.

“(껄끄러워한다고 생각될 때) 모든 분이 가장 중요시하는 부분은 수익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다릅니다. 수익성도 중요하지만 원금의 안전성을 가장 중요시해….” 의심하는 투자자에게 ‘원금 보장’을 강조하라는 대본은 영리했다. 안전하게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말은 허황되지만, 사람들은 믿고 싶어 하는 대로 믿었다.

‘기본멘트’란 대본에선 처음 인사말부터 신원 확인, 투자 종목, 종목에 따른 대응까지 어떤 멘트를 할지 구체적으로 적어놨다. ‘반론 Q&A’라는 제목의 스크립트에선 의심을 무마하는 방법을 코치했다. 금융지식이 부족한 조폭들의 금융사기를 인도할 ‘지침서’였던 셈이다.

본지가 피해자들의 대화 내용을 분석한 결과, 공통으로 발견되는 리딩사기 수법이 확인됐다. 첫째, ‘체험 프로젝트’라는 미끼 상품이다. 상담사는 피해자의 인적 정보, 자산, 투자 성향 등을 파악한 뒤 투자 체험을 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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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조직이 2023년 4월 22일 정산한 입출금액.

둘째, ‘이체 명의가 틀렸다’는 식으로 재입금을 요구하는 수법이다. 투자금이 수익을 냈으니 찾겠다고 하면 수수료를 입금하라고 한다. 이때 ‘입금자 이름이 틀렸다’ ‘다른 곳으로 보냈다’ ‘다시 보내달라’는 식으로 수차례 재입금을 요구했다. 피해자는 의심하면서도 자신이 보낸 돈이 투자금에 들어간다는 말을 믿고 계속 송금하다 사기에 빠져들었다.

셋째, 상담사(자판)가 자신의 돈을 빌려주겠다며 투자를 유도한다. 피해자들은 상담사에게 사기를 당하는 줄도 모르고 “감사하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친인척·지인에게 돈을 끌어오다 한꺼번에 날린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7억원 넘게 리딩사기단에 당한 서모(73)씨는 “의심했지만 그때마다 각종 증명 서류를 보여주면서 안심시켰다. 지금 보면 왜 속았을까 싶지만 한번 큰돈이 들어가고 나면 다른 게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2년간의 수사 끝에 서울 종로서 수사팀은 지난달 말 총책 하모(26)씨를 구속 송치하는 등 사기 행각을 벌인 리딩사기 조직원 28명 전원을 검거했다.

☞리딩사기=전문가를 사칭해 고수익·원금보장을 약속하며 가짜 투자 정보를 제공하고 수수료 등 명목으로 금전을 편취하거나 유사투자를 유도해 피해를 발생시키는 금융사기 범죄다. 가짜 상담원과 조작 정보를 올리는 허위 투자 사이트를 운영한다.

2025년 대한민국 '리딩사기'의 실체-더 자세한 내용은 더중앙플러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8000만원 뜯고 “시X 거지들” 이게 리딩사기, 악마의 단톡방 ①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54881

“2억 뜯고 쩜오나 가야지?” 26세 ‘교수’와 역겨운 그 대화②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55177

리딩사기 그놈 필리핀 튄 후…고급주택 내부서 ‘충격 행각’③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55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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