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여름은 고작 계절』 김서해 작가 “모든 글쓰기는 나의 반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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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해 작가는 도서관 사서로 근무한 적이 있다. 사람들이 어떤 표정으로 책을 읽고 후기를 나누는지 눈 앞에서 봤다. 그래서 그는 "책은 무엇보다도 가장 깊이 의사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라고 생각한다. "연결감을 느끼고 싶어 소설을 쓰면, 실제로 독자와 소속감을 느낀다"고도 말한다. 권혁재 기자
한 호숫가에 두 여자아이가 있다. 한 명은 쓰러졌고, 다른 한 명은 그 아이를 사정 없이 내리친다. 어딘가 이상하고 괴상하기까지 하다. 때리는 사람이 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마치 자신을 때리는 것처럼.
김서해 작가(29)의 두번째 장편소설, 『여름은 고작 계절』은 이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장면은 작가가 소설을 쓸 때 처음으로 떠올린 모습이기도 하다. 산뜻한 표지에 ‘여름’이란 단어가 주는 계절의 감각이 서려 있지만, 책 속 세계는 다르다. 굳이 따지자면 유년시절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끈적하고 어두운 여름에 가깝다.

『여름은 고작 계절』은 김서해 작가의 네번째 소설. 그는 “내 이야기에 등장하는 외로운 사람이 세계와 연결되고 싶어하는 것처럼, 나도 나의 마음을 이해받고 싶어서 쓴다.”고 말한다. 사진 위즈덤하우스
지난달 22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출판사 위즈덤하우스에서 김서해 작가를 만났다. 마침 대서(大暑), 푹푹 찌는 여름의 한낮이었다. 작가는 2023년에 앤솔러지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 속 단편소설 ‘폴터가이스트’를 통해 활동을 시작한 신인이다. 2019년부터 3년간 블로그에 썼던 글이 편집자들의 눈에 띄어 앤솔러지 참여까지 이어졌다. 같은 해 장편소설 『너는 내 목소리를 닮았어』를, 다음해 단편소설 『라비우와 링과』를 냈다.
『여름은 고작 계절』은 ‘아메리칸 드림’ 열풍의 끝에 다다랐던 2000년대를 배경으로, 갑작스럽게 미국에 이민 온 한국인 소녀 ‘제니’와 그를 이어 한국에서 온 소녀 ‘한나’가 미국의 한 학교에서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는 그 시절 누구나 느꼈을 법한 감정의 동요를 누구보다 세밀하게 풀어낸다. SNS에 올라오는 후기에도 “주인공이 너무 나 같다”는 평이 많다. 『여름은 고작 계절』은 지난 6월 25일 출간된 이후 1달 만에 1만부를 출고했고, 4쇄를 기록하며 사랑 받고 있다.

김서해 작가가 좋아하는 책은 서양 고전 속 여성인물들을 다루는 작품이다. 마거릿 애트우드의『페넬로피아드』는 재독을 여러차례 할 정도로 사랑하는 소설이다. 그는 "작가가 등장인물의 유능한 변호사로 느껴질 만큼, 주인공 입장에 흠뻑 젖어 쓴 글이 좋다"고 한다. 권혁재 기자
“내가 느꼈던 모순적 감정들을 나열해보며 주인공의 감정 묘사를 한다. 글쓰기는 나의 반성문 같다.” 김서해는 “사람들은 어떤 순간에 하나의 감정만 느끼지 않는다”고 믿는다. 암울한 감정을 느낄 때도 미래에 대한 작은 희망을 품게 되는 것처럼. 그는 “양면적 감정을 소설에서 더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이유는, 일상에선 그걸 느낄 새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가 주요하게 다루는 감정은 외로움. 특히 사회구조적 불균형에서 오는 개인의 ‘외로움’을 포착하는 데에 관심이 많다. 이 감정은 주인공과 상대 인물의 ‘일대일 관계’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작가는 “내 글은 오토픽션(Autofiction, 작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허구적 요소를 넣어 쓴 글)의 성격을 띤다”며 “우울감과 힘듦에 시달리는 ‘나’와 역량을 발휘하고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나’를 분리해서 각각 다른 인물을 만드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나아진 내가 과거의 힘든 나를 도와줬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22일 오후, 위즈덤하우스에서 만난 김서해 작가는 문예창작 석사과정을 밟고있다고 했다. 학부는 그와 관련없는 과를 나왔지만, 작가활동이 계기가 됐다. 그는 글을 쓰기 위해 원데이 클래스 등을 참여하며 무작위로 경험을 쌓는 습관도 있다. 권혁재 기자
『여름은 고작 계절』 속 주인공인 한국인 제니가 느끼는 외로움 역시 한나의 등장을 기점으로 증폭된다. 제니는 학교의 ‘주류’인 또래 그룹에 끼고 싶어 주어진 환경을 스펀지처럼 받아들이고, 언어 공부에 열중한다. 그러다 자신과 완전히 다른 성격인 인물, 한나를 만난다. 한나는 매번 “나는 ‘해나’가 아니라 ‘한나’야”라고 또래와 선생님의 발음을 교정한다. 영어를 잘 못하지만,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기보단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낸다.
제니는 따돌림당하는 한나의 모습을 보며 동질감을 느끼고, 집단에서 소외당하는 외로움을 상기한다. 쓰러진 한나를 때리며 고통스러워하는 제니의 모습이 소설의 첫 장면이자 마지막 장면으로 담긴 이유다.
소설은 제니의 회고록이자 반성문으로 구성됐다. 작가는 “현재 일어나는 일은 직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과거는 재해석되며 일정한 이미지를 갖춘다”고 설명한다. 이 형식을 통해 현재의 제니가 청소년이었던 제니의 과거를 직면케 만들었다.

캐나다 작가 쿄 맥클레어의 에세이 『Unearthing』(언얼씽) 표지. 사진 Scribner Book Company
외국어는 그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태어나서 5살까지 일본에 살았다. 나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가족들이 일본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한다. 13살부터 16살까진 미국을 왔다갔다하며 소설 속 제니 혹은 한나같은 삶을 살았다.” 그는 “처음 미국에 갔을 때만 해도 두려움뿐이었는데, 외국어를 익히며 소속감이 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번역을 통해 ‘외국어’라는 화두를 계속 가져갈 예정이다. 전작 『라비우와 링과』를 본 편집자의 제안으로 지난해 출간된 캐나다 작가 쿄 맥클레어의 에세이 『Unearthing』을 번역했다. 1~2달 이내에 출간을 앞두고 있다. 김서해는 “문장마다 작가의 의중을 파악해야 하는 번역 작업 덕분에 내 글을 퇴고하는 방식도 변했다. 앞으로도 번역을 병행하고 싶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나만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작가가 되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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