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부, 한미훈련 연기 제안은 패착? …"울고 싶은 美, 뺨 때려준 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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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브리지 콜비 미국 국방부 정책차관이 지난해 4월 23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태화 기자

미국 국방부에서 대중 견제 및 해외 주둔 미군의 태세 조정 정책 등을 주도하는 엘브리지 콜비 정책 차관이 최근 한·미 국방장관 통화 결과를 설명하며 “대북 방어에 있어 한국의 주도적 역할”과 “전략적으로 지속 가능한 동맹”을 강조했다. 향후 주한미군은 대중 견제 목적으로 전환하고, 북한의 위협은 한국이 주로 맡아 대응하는 게 미국이 그리는 한·미 동맹의 모습이라는 취지로 읽힌다.

콜비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SNS) 엑스(옛 트위터)에 직전 한·미 국방 장관 간 통화 결과를 전하면서 “한국은 강력한 대북 방어에 주도적 역할을 하고 국방비 지출을 확대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모범 사례”라고 밝혔다. 이어 “한·미는 역내 안보 환경에 대응해 동맹을 현대화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며 “우리는 공동의 위협에 맞서 방어할 준비가 된, 전략적으로 지속 가능한 동맹이 되도록 한국과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한국이 국방비 지출 증대를 통해 첨단 재래식 능력을 증강, 대북 대응을 주도하는 동시에 역내 중국의 위협 증강에도 공동으로 맞서는 게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바라는 한·미 동맹의 지향점이라는 뜻으로 분석된다. 이는 주한미군의 역할을 대중 견제로 확장하고, 한반도 주둔 규모는 줄이는 ‘전략적 유연성’ 적용을 통해 가능하다는 게 그간 콜비가 해온 주장의 골자이기도 하다. 미국은 이를 이른바 ‘동맹의 현대화’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며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특히 콜비가 한·미 국방장관 통화 직후 이런 글을 올린 건 이재명 정부도 동맹 현대화를 어느 정도 수용한다는 신호를 읽은 것이란 분석이다. 실제 정부는 그간 동맹의 현대화라는 용어를 직접 언급하는 걸 꺼려왔는데, 통화 뒤 한국 국방부 보도자료에서 사실상 처음으로 이를 거론했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과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 장관이 “변화하는 역내 안보환경 속에서 한·미 동맹을 상호 호혜적으로 현대화하기 위한 협의”를 지속하기로 했다는 대목이었다.

같은날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외교장관 회담 뒤에도 외교부는 “양 장관은 변화하는 역내 안보 및 경제 환경 속에서 동맹을 더욱 강화하고 전략적 중요성도 한층 높이는 방향으로 동맹을 현대화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밝혀 ‘동맹의 현대화’가 공식 의제화했음을 확인했다. 첫 한·미 정상회담을 목전에 둔 가운데 미국의 동맹 현대화 요구에 마냥 버티기는 힘들다고 판단한 것일 수 있다.

특히 콜비가 동맹의 현대화를 언급하면서 “전략적으로 지속 가능한 동맹이 되도록(ensure) 협력한다”고 한 건 향후 한·미 동맹을 지속하기 위한 미 측의 전제 조건처럼 읽히는 측면도 있다.

동맹의 현대화 개념은 대북 방어를 대중 견제의 하위 변수로 보는 시각에 가깝기 때문이다. 대만 해협 등 유사시 한반도로 전선이 확대되거나, 중국이 북한을 움직여 전력을 분산시키는 양동 작전을 방지하는 맥락에서 북한 방어의 필요성을 본다는 뜻이다. 이런 차원에서 콜비의 발언은 대중 견제 전략의 일환으로 한국이 대북 방어 기능을 제대로 해내지 못 할 경우 미 측이 한·미 동맹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뜻도 된다. 이를 넘어 군사적 측면에서의 다양한 대중 압박 전략에 한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것으로 ‘동맹의 몫’을 해내란 요구도 될 수 있다.

미국이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에 국방비 증액 압박을 하는 것도 안보 분야 투자를 늘려 역내 위협을 스스로 방어할 능력을 갖추라는 취지다. 특히 미국은 중·러의 핵 증강에 맞서 핵 전력을 늘리는 데 집중하고 대신 한국과 일본, 나토 등 동맹국들은 첨단 재래식 전력으로 이를 뒷받침하라는 구상이다. 재래식 전력 위주인 주한미군 규모는 줄이고, 전시작전통제권은 한국에 넘기는 게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도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얘기다.

이와 관련, 헤그세스 국방장관도 지난 5월 아시아 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들은 GDP(국내총생산)의 5%를 국방비로 지출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아시아의 주요 동맹국들은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훨씬 더 강력한 위협에 직면해 국방비를 줄이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앞서 미 국방부는 한·미 국방장관 회담 결과를 발표하며 두 장관이 조만간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에서 직접 만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올해 서울에서 개최되는 SCM은 9~10월로 예상되는데, 여기서 주한미군이나 전작권 전환 등을 의제로 올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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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정부가 한·미 을지자유의방패(UFS) 연합연습·훈련 직전 미 측에 실기동훈련(FTX)을 일부 연기하자고 제안한 건 자기 모순적이란 지적이다.

UFS는 기본적으로 한·미 재래식 전력 중심의 연합 작전계획(OPLAN)을 기반으로 한 방어적 성격의 연례 군사 훈련이다, 미래 전작권 전환을 대비해 한국군 주도의 작전 운용 능력 등을 증명해야 하는 일종의 ‘정기 모의고사’인 셈이다. 연간 단위로 계획하며, 유사시 증원 전력에 해당하는 미 본토 지상군의 배치 계획도 사전에 결정된다.

전작권 전환을 추진하는 이재명 정부가 이런 제안을 했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UFS는 내주 위기관리연습(CMX)을 필두로 본격화할 예정인데, 정부는 이를 약 2주 남겨 놓고 일부 훈련을 9월로 미루는 것을 미 측에 제안했다.

미국의 지원 없이도 한국의 재래식 전력만으로 주도적으로 북한을 감당하라는 콜비식 논리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도 있다는 시각도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가뜩이나 미국은 한국 스스로 북한을 감당하길 원하는데, 정부가 먼저 연합훈련 연기를 들고 나온 건 울고 싶은데 뺨 때려 준 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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