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가계대출 한도 맞추려, 전세대출도 옥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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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로구에 거주하는 강모(41)씨는 올해 말쯤 양천구에 전세로 이사를 하려고 집을 알아보다가 좌절했다. 전세 매물이 씨가 마른 데다가, 자금 사정에 맞춰 찾은 집은 근저당이 잡혀있었기 때문이다. 강씨는 부동산중개업자로부터 근저당 때문에 은행 대출이 거절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강씨는 “강남 아닌 웬만한 서울 아파트 전셋값도 5억원 안팎인데 전세대출 문이 좁아져 원하는 집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말했다.

은행권이 본격적으로 전세자금대출 문턱 높이기에 나섰다. 정부가 6·27 대출 규제를 내놓으며 가계대출 총량 목표치를 절반 수준으로 줄인 상황에서,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관리만으론 목표 달성이 어렵다고 판단하면서다. 하지만 실수요자의 전세난이 가중될 수 있단 우려가 나온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갭투자(전세 끼고 매매)용 주택에 대해 세입자의 전세자금 대출(임대인 소유권 이전 조건부 대출)을 오는 10월까지 제한하기로 했다. 정부가 6·27 대책에서 갭투자를 막으려고 수도권 대상으로 한 규제를 전국으로 확대 적용한 것이다.

일부 은행은 이례적으로 깐깐한 대출 기준도 내놨다. 신한은행은 강씨 사례처럼 근저당이 있는 주택에 들어가는 세입자에 대해 전세대출(선순위채권 말소·감액 조건부 대출)을 한시적으로 중단했다. 하나은행과 NH농협은행은 대출모집인을 통해 오는 9월 중 실행할 예정인 주담대와 전세대출을 추가로 접수하지 않기로 했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연말까지 목표치를 맞추려면 전세대출 기준도 좀 더 까다롭게 하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은행이 전세대출 조이기에 나선 건 가계대출 증가세가 계속되면서다. 지난달 말 기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가계대출 잔액은 758조9734억원으로, 한 달 사이 약 4조1386억원 늘었다. 특히 지난달 말 전세자금대출은 한 달 전과 비교해 3781억원 늘어 123조3554억원을 기록했다. 잔액을 기준으로 25개월 만에 최고치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하반기에 금리가 인하되면 가계대출 관리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6·27 대책 뒤 부동산 매매가 위축되면서 전세 매물이 덩달아 줄고, 전셋값은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지난 4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2만2865건으로 약 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한국부동산원이 집계한 지난달 전세수급지수는 전국 144.5, 서울 145.0이었다. 수급지수가 100을 넘으면 공급보다 수요가 많다는 의미다.

전세값도 상승세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중위 전세가격은 평균 5억6333만원으로, 전월(5억6000만원) 대비 333만원 오르며 3개월째 상승세를 이어갔다. 전년 동기(5억3167만원)와 비교하면 5.9%(3166만원) 올랐다. 중위가격은 아파트 전세가격을 순서대로 나열했을 때 가운데에 위치한 값으로, 고가·저가 아파트 거래 비중에 비교적 덜 영향을 받는 지표다.

서정렬 영산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전세대출 규제가 계속되면 반전세와 월세 계약이 증가하고 지방은행·제2금융권뿐 아니라 사금융을 찾는 이들이 늘 수 있다”며 “결국 주거 비용이 올라 실수요자 고충이 커질 수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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