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단독]김해공항 '돗대산 참사' 공포 여전…민∙관∙군 머리 맞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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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김해국제공항의 항공 안전을 책임진 민·관·군 핵심 관계자들이 이례적으로 한자리에 모여 ‘김해공항 안전 개선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 들어 항공기의 충돌 위험, 활주로 오착륙 등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한 위험 사례가 잇따르면서다.
23년 전 김해공항에 착륙하려던 중국 민항기가 돗대산과 충돌, 129명이 숨진 ‘돗대산 참사’를 연상케 하는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참석 기관의 한 관계자는 “특정 사안으로 민·관·군이 다 모인 건 이례적이다”며 “안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경민 기자
‘돗대산 참사’ 재현될라…민·관·군 합동 회의
7일 국토교통부·공군 등에 따르면 지난 5일 김포국제공항에서 국토부 주관으로 부산지방항공청과 한국공항공사, 공군의 항공안전단과 제5공중기동비행단, 민간 항공사 6곳 등이 모여 합동 회의를 진행했다. 회의 참석자는 모두 김해공항을 운영·관리하거나 김해공항에 주둔 또는 취항하는 기관 관계자로, 이날 ‘김해공항 안전 개선 방안’ 관련한 논의만 이뤄졌다고 한다.
이번 회의는 최근 항공 안전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마련됐다. 지난 6월 25일 충돌 위험이 대표적이다. 대만 민항기(중화항공)가 착륙 과정에서 돗대산을 아슬아슬하게 비껴간 일이다. 이 여객기는 돗대산(최고높이 381m)의 180m 높이 봉우리에 700m 거리까지 접근, 승객 150여명이 불안에 떨었다. 이를 두고 지역에선 “2002년 돗대산 참사와 매우 유사한 상황이어서 자칫하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했다”(홍태용 경남 김해시장)는 우려가 나왔다.
6월 12일과 3월 25일엔 각각 중화항공, 진에어 여객기가 허가받지 않은 활주로에 착륙하기도 했다. 오착륙은 항공기 간 충돌로 이어질 수 있는 중대한 문제다. 3개 사례 모두 돗대산을 피해 선회 비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김해공항은 돗대산이란 특수 환경이 있다 보니 ‘어떻게 하면 이런 사례를 예방할 수 있을지’ 기관별로 의견을 취합하는 자리였다”면서도 “비행 절차 개선 필요성 등 여러 의견이 있었지만, 아직 결정된 건 없다. 추가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김해국제공항 착륙을 시도하는 한 여객기(사진 오른쪽 상단)가 '항공장애 주간표지'를 넘지 않고 공항 활주로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주간표지 북쪽 너머에는 돗대산이 있어, 주간 표지를 지나 선회하면 돗대산과 충돌할 수도 있다. 지난 3일 오후 경남 김해시 불암동에서 촬영한 모습. 안대훈 기자
조종사들 “김해공항 다른 공항보다 위험”
돗대산은 민항기 조종사들 사이에선 이미 악명 높다. 김해공항 착륙을 어렵게 하는 대표적인 지형 장애물이어서다. 돗대산은 북쪽 활주로 끝에서 직선으로 불과 3㎞ 거리에 있다. 항공업계 등에 따르면 이 때문에 돗대산과 가까운 북쪽 활주로로 착륙할 땐 ‘직진입 접근'을 할 수 없다. 항공기가 활주로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서서히 고도를 낮춰 일직선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진입 방향에 돗대산이 우뚝 서 있어서다. 그래서 북쪽 활주로로 착륙하려면 남쪽에서 북쪽으로 비행하다 방향을 선회, 돗대산에 닿지 않게 반원을 그리며 진입해야 한다.
이런 ‘선회 접근’ 과정에서 항공기 조종사는 정밀한 계기 장비의 도움도 받을 수 없다. 돗대산 등 산악 지형이 공항에서 쏘는 유도 빔(Beam)을 가로막는다. 조종사는 진입할 북쪽 활주로와 공항 주변 지상에 설치된 항공기 유도등, 항공장애 주간표지, 남해고속도로 등 비행 위치를 가늠할 외부 상황을 끊임없이 육안으로 살피며 선회 비행을 해야 한다. 이때 선회 시점이 늦어져 길게 돌면 돗대산에 충돌할 위험이 커진다. 6월 중화항공 사례가 그런 경우다.
2016년 부산발전시민재단이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김해공항 취항 조종사 341명 중 72.7%가 ‘다른 공항에 비해 위험하다’고 응답했고, 안전 위협 요인으로는 돗대·신어산(80.8%)이란 응답이 압도적이었다. 신어산은 돗대산 뒤쪽(북쪽)에 있다. 최인찬 신라대 항공운항학과 교수는 “김해공항은 세계적으로 드문 공항”이라며 “여타 국제공항들은 마지막 최종 접근 구간에 산악 지대가 거의 없다”고 했다.

2002년 당시 하늘에서 내려다 본 경남 김해 돗대산 중국 여객기 추락사고 현장.산 너머로 김해 공항의 활주로가 보인다. 중앙포토
“표준 매뉴얼대로 했다간 돗대산 충돌”
문제는 김해공항 선회 접근이 다른 공항에 접목되는 표준 절차와 다르다는 점이다. 국내 항공사 A기장은 “대개 착륙할 활주로 말단과 같은 선상에서 40초쯤 더 나아가 터닝(turning)하는데, 김해공항에서 그렇게 길게 선회하면 돗대산과 충돌할 수 있다”며 “그래서 절반인 20초 만에 선회를 시작해야 한다. 이게 정상 절차도 아니고 김해공항에 맞게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돼 있다 보니, 교육이 미진하면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민항기 조종 경력만 28년으로 2022년까지 김해공항을 취항했던 최인찬 교수는 “표준 절차를 따르지 못하고 매우 짧게 선회해야 되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조종사의 압박감, 스트레스가 굉장하다”며 “이런 상황에서 국내 조종사와 달리 김해공항에 자주 취항하지 않는 외국 조종사의 경우, 길게 선회하는 기존 방식이 몸에 익어 자칫 돗대산 쪽으로 갈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이어 “외항사에 김해공항의 지형적 특성이 고지돼 있긴 하지만, 실제로 해보는 것과는 차이가 크다”고 했다.
부산지방항공청 관계자는 “국토부에서 외항사에 ‘김해공항 취항할 때 경력자가 조종할 수 있게 하라’는 취지의 권고는 하지만, 강제 사항은 아니다”고 했다.
지난해 선회접근 5000번 넘어…“조금씩 증가 추세”
김해공항은 돗대산이 있는 북쪽이 아닌 남쪽 활주로로도 착륙 가능하다. 이때 계기 장비를 활용하며 활주로에 직진입도 할 수 있다. 활주로 남쪽 일직선상엔 별다른 장애물이 없어서다. 그런데 평소 북풍이 부는 김해공항에 남풍이 불면, 북쪽 활주로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비행기는 맞바람을 맞으며 착륙해야 안전한 탓이다. 남풍이 자주 부는 4~8월에 선회 접근이 잦은 이유다. 최 교수는 “춘계에서 하계로 넘어가는 시점에 오전까진 북풍, 낮 12시가 지나면 남풍으로 바뀌는 게 공식이었다”고 했다.
김해시가 김해공항 관제를 맡은 공군 측에 받은 자료에 보면, 지난 한 해 항공기가 김해공항에 선회 접근한 횟수는 5310회에 달했다. 전체 착륙 횟수의 10.9%에 불과하다. 하지만 매년 늘고 있다고 한다. 부산지방항공청 관계자는 “10년 전 5~7%보다 2배 정도 늘었다. 매년 조금씩 증가하는 추세”라며 “기후 영향 탓인지, 날씨가 따뜻하니 아침에도 남풍이 불기도 한다”고 했다.

서울 김포국제공항에서 여객기가 활주로 남단 지면 끝에 설치된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을 지나쳐 착륙하고 있다. 연합뉴스
“근본적인 대책 마련해달라”
김해공항 인근 지역에선 근본적인 안전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해시의회는 지난달 24일 ‘김해공항 항공안전 구조개선 및 제도적 대책 마련 촉구 건의문’을 채택해 대통령실과 국토부, 국방부, 국회에 보냈다. 앞서 같은 달 15일 홍태용 김해시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돗대산 참사로부터 23년이 지났지만 선회 접근의 근본적인 위험성은 해소되지 않았다”며 “그간 수차례 항로 변경 등을 건의했지만, 공군에서 개선 효과 미비와 군사작전구역 항로별 운항 고도 제한으로 어렵다고 했다”고 분개했다.
홍 시장은 “최근 대통령께서 ‘국민들이 국가나 공무원들의 무관심, 부주의로 목숨을 잃거나 집단 참사를 겪는 일이 절대 생기지 않도록 했으면 한다’고 당부한 만큼 정부와 관계 기관들이 어떤 대책을 내놓을지 56만 김해 시민과 함께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김해시 관계자는 “단순히 안전을 개선하도록 노력하겠다는 게 아니라 국토부, 공군, 항공사 등 민·관·군이 TF팀을 꾸려 구체적인 세부 실천 과제를 도출해야 한다”고 했다.
A기장은 “위성 GPS 장치 활용한 ‘RNP 접근’ 등 지금 김해공항처럼 지형지물이나 장애물이 많아 접근이 어려운 공항에 사용하려고 만든 새로운 접근 절차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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