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건희 컬렉션’만 컬렉션? 17인 17색 미술품 수집가들 열정과 이유[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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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컬렉터스
아트 컬렉터스
이은주 지음
중앙북스
‘미술품 거래’라 하면 세금 탈루나 재산 은닉을 위한 재력가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그림을 좋아해도 전시장에서 감상하는 데 그치지, 직접 돈을 주고 사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다.
수십 년 문화·예술을 전문적으로 취재해온 저자에게도 ‘아트 컬렉터(Art Collector)’라 불리는 미술품 수집가들은 생소한 존재였다. 그나마 2021년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평생 모은 미술품 2만여점을 국가에 기증한 ‘이건희 컬렉션’이 화제를 모으면서 ‘컬렉션’에 대한 대중적 인지도가 조금은 높아졌다. 미술품을 수집한 이유에 대해 그저 “내가 좋아서, 홀려서 하는 것”이라 말했다는 이 회장의 단순한 답에서 저자의 궁금증은 시작됐다.
재테크 수단 등이 아니라, 진짜로 그렇게 ‘홀려서’ 미술품을 수집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그들은 왜, 어떤 작품에 그토록 매료돼 수집하기에 이르렀을까. 이 책은 이런 질문에서 출발해 17인의 국내 컬렉터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한 기록이다.
재벌쯤은 돼야 미술품을 수집할 거란 인식과 달리, 저자가 만난 컬렉터들의 면면은 다양하다. 백남준의 설치작품을 거실 한복판에 둔 패션 디자이너, 병원 복도를 전시공간으로 꾸민 성형외과 의사, 식당을 갤러리처럼 바꾼 레스토랑 운영자…. 가지각색 직업과 삶의 궤적을 갖고 있지만, 예술품을 모으는 ‘광기’에 가까운 열정 만큼은 서로 닮아있다.
수집가라면 작품값이 올라가는 것을 가장 중시하지 않을까 싶지만, 오히려 소장하던 작품을 파는 게 아까워 되팔아본 경험은 많지 않은 것도 공통점이다.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예술의 힘을 믿고, 수집은 그런 예술을 창작하는 이들의 활동을 뒷받침하는 일이라는 인식 또한 수집가들은 공유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미술품을 수집하는 행위 자체에만 초점을 맞출 거라 예상한다면 오산이다. 각 컬렉터가 어떻게 수집을 시작하게 됐는지, 어떤 기준으로 작품을 고르는지 쫓아가다 보면, 저마다의 삶의 철학과 공동체를 대하는 태도가 엿보인다. 이를테면 “100년 후를 내다보며 동시대 작가들의 초기작부터 모은다”는 기업가에게서는 후세대에 물려줄 문화유산까지 고려하는 미래지향적 정신이 읽힌다. 그림을 소유함으로써 “영감을 받고, 작가와 동지애를 느낀다”는 건축가의 고백에는 자기 일에 투신하는 창작자로서 열의와 고뇌가 녹아있다.
컬렉터마다 수집하는 작품의 종류도, 예술을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 책장은 지루할 틈 없이 넘어간다. “천년의 세월을 품었다”는 점에 빠져 고려청자만 수백점 모은 한의학 박사, 기괴해 보이는 조각도 “강렬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라며 과감하게 사들인 MZ세대 부부 컬렉터, 로마시대 유물까지 모으는 ‘전문’ 수집가까지. 예술에 감동하고 희열을 느끼는 지점이 이토록 다양할 수 있다는 점에 놀라다 보면 어느새 ‘나도 내 입맛에 맞는 그림 한 점 사볼까’ 하는 마음이 불쑥 들지도 모른다.
컬렉터들의 자택과 수장고에서 촬영한 작품 사진도 풍성하게 담겨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좋은 작품을 발굴하는 수집가들의 ‘꿀팁’도 곳곳에 실려있어, 예비 컬렉터에겐 유용한 지침서가 될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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