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옛것인 듯 옛것 아닌, 그래서 더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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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채시라(사진 오른쪽)가 무용수로 데뷔한 연희극 ‘단심’. [연합뉴스]

‘정적인 제례 의식에 더한 칼 군무, 애절한 판소리 속 용궁 로맨스 걷어낸 새로운 심청.’

현대적 감각을 더한 전통 공연에 대한 관객들의 호응이 이어지고 있다. 시대 흐름과 궤를 맞춘 변주를 시도하면서도 한국 전통 예술이 품은 여백과 절제, 해학 등의 미덕을 극대화한 작품들이다. 배우나 무용수들을 응원하는 ‘팬덤’의 등장도 전통 공연계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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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제례악을 재창조한 작품으로 칼 군무가 압권인 ‘일무’. [사진 세종문화회관]

서울시무용단은 오는 21~24일 ‘일무(佾舞)’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 올린다. 국가무형문화재이자 유네스코 세계 인류무형유산인 ‘종묘제례악’의 의식무인 ‘일무’를 모티브로 삼았다. 일무는 여러 사람이 줄을 지어서 추는 춤이다.

정적인 한국적 춤에 역동성을 더한 이 공연은 2022년 초연해 올해 네 번째 시즌을 맞이했다. 세종문화회관 대표 공연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물론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지난 2023년 뉴욕 링컨센터 공연은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일무’를 두고 “변증법적 조화와 증식을 보여준다”라고 평했다.

3000석이 넘는 대극장에서 선보이는 공연이지만 올해 티켓도 이미 동난 상황이다. 이번 공연은 기존 작품에 영상과 조명 디자인을 보강했다는 게 무용단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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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극 ‘심청’에서 심봉사로 나온 ‘국악 아이돌’ 김준수(사진 오른쪽). [연합뉴스]

창극 ‘심청’은 주목받는 또 다른 전통극이다. 국립창극단이 19세기에 완성된 판소리 ‘심청가’를 재해석했다. 음악은 판소리 고유의 원형을 유지하되 ‘효녀’라는 틀을 걷어낸 새로운 ‘심청’을 선보인다. 이 작품은 오는 13, 14일 ‘20205 전주 세계 소리 축제’에서 먼저 선보인 후 다음 달 3~6일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한다. 일부 회차 VIP석은 이미 매진됐다.

관객의 사랑을 받는 전통 공연은 꾸준한 이어지고 있다. 지난 5월 8일부터 6월 28일까지 국립정동극장에서 공연한 연희극 ‘단심(單沈)’은 판소리 심청가의 원전이었던 고전 설화 ‘심청’을 재해석했다. 역시 ‘효’를 넘어선 새로운 심청을 한국 무용으로 구현했다. 데뷔 40년 차 배우 채시라가 처음 출연한 무용극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오는 10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 경주에서 특별 공연이 열린다.

속도감 넘치는 한국 무용을 펼친 서울시무용단의 신작 ‘스피드’, 러시아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단편 『주인과 하인』을 소리꾼 이자람이 판소리로 각색한 ‘눈, 눈, 눈’도 올해 상반기 객석을 가득 채우며 관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은 전통 공연이다.

이들 작품은 동시대 관객의 눈높이에 맞게 현대적인 해석을 가하면서도 한국 전통 예술이 지닌 고유의 가치와 장점을 제대로 살려내려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미국 출신 금융인이자 방송인으로 ‘일무’ 브랜드 앰배서더로 활동 중인 마크 테토 TCK인베스트먼트 대표이사는 ‘일무’에 대해 “한국의 미학에는 여백과 여정, 그리고 절제가 존재한다”라며 “‘일무’에는 이 세 가지가 다 있다”고 말했다.

‘심청’ 제작진은 이 작품이 판소리의 정체성을 가졌다고 강조했다. ‘심청’의 연출과 극본을 맡은 요나 김은 이 작품을 ‘판소리 씨어터’로 정의하며 “판소리라는 장르는 외국에서도 잘 알고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용어로 굳이 앞에 ‘코리아’를 붙일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전통 공연에서 아이돌 못지않은 ‘팬덤’이 등장한 것도 인기 몰이의 한 요소라는 해석이 나온다. ‘심청’의 경우 ‘국악계 아이돌’로 불리는 김준수와 유태평양이 출연해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또 지난해 방송된 경연 프로그램 ‘스테이지 파이터’를 계기로 많은 팬을 확보한 기무간, 김규년, 최호종과 같은 한국 무용수가 활발히 활동하며 한국 무용 인지도를 크게 높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무간의 경우 오는 11월 6일~9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열리는 서울시무용단 작품 ‘미메시스’에 출연한다. 서양 철학 개념인 미메시스(모방)를 바탕으로 한국 전통춤의 본질을 찾는 작품이다.

국립국악원 운영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임희윤 문화평론가는 “클래식 분야에서 조성진, 임윤찬이 등장하며 관객층을 넓힌 것처럼 창극, 한국무용 등 전통 분야에서 팬덤층이 생기며 전통극에 대한 선입견이 벗겨지는 분위기”라며 “관객 저변이 넓어짐에 따라 그간 주목받지 못했으나 출중한 실력을 지닌 창극 배우나 한국 무용수 등의 기량이 알려지고, 그만큼 전통 예술에 관심이 높아지는 선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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