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중간자’ 외교하다가 미·중 틈바구니에 팽당한 인도…“힘의 한계”

본문

지난 2014년 9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고향 구자라트주 아마다바드의 사바르마티 강변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전통 그네 의자에 함께 앉았다. 두 정상은 웃으며 강바람을 맞았다. 이날 중국은 인도에 20조원 상당의 투자계획을 밝히며 철도, 민간용 원자력 에너지 분야의 협력을 약속했다. 취임 4개월 만에 강대국과 우호 관계를 이끌어낸 모디 총리의 외교 성과였다.

17549795693711.jpg

지난 2014년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고향 구자라트주 아마다바드의 사바르마티 강변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전통 그네 의자에 함께 앉았다. 사진 유튜브 캡처

당시 중국은 인도의 경제적 롤모델이었다. 값싼 제조업과 빠른 인프라 확충, 세계시장 진출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벤치마킹할 대상이었다. 그러나 불과 6년 뒤인 2020년 히말라야 국경에서 양국 병사들 간 무력 충돌이 발생하며 수십 명이 사망했다. 1962년 중-인도 전쟁 이후 국경 문제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는 양국 간 관계는 이내 급속도로 멀어졌다.

인도는 이후 미국 쪽으로 외교 방향을 틀었다. 2023년 모디 총리는 미국을 국빈 방문하며 백악관에서 환영 만찬을 즐겼다. 당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백악관 집무실에서 포옹과 악수를 하고, 미 상∙하원 합동의회에선 연설 중 울려 퍼지는 뜨거운 환호와 반향을 만끽했다. 모디 총리는 연설 중 “A.I는 미국(America)과 인도(India)의 약자”라며 우호 관계를 강조하기도 했다. 인도는 미국의 중국 견제의 핵심 파트너이자 쿼드(Quad)의 중추로 거듭났다.

17549795695588.jpg

지난 2023년 6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상∙하원 합동의회 연설 중인 모디 총리(앞). 그의 뒤엔 당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왼쪽)이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 유튜브 캡처

하지만 최근 분위기는 급변했다. 미국이 인도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 농업·유제품 시장 개방 거부를 문제 삼으며 인도산 의류·보석·철강 등에 최고 5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서다. 세계 최대 우유 생산국인 인도는 농민 표를 지키기 위해 버터·치즈에 40%, 분유에는 60%의 관세를 부과한다. 미국은 이를 불공정 무역장벽으로 규정하고 개방을 요구하지만, 인도 정부는 “농촌 사회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며 거부했다. 급기야 트럼프 대통령은 “인도 경제는 죽었다”는 막말까지 던졌고, 모디 총리는 강하게 반발하며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지속했다. 현지에선 맥도날드와 코카콜라, 아마존, 애플 등 미국 제품에 대한 보이콧도 확산하면서 양국 관계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그렇다고 인도가 또다시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로 선회하기엔 순탄치 않다. 최근 시진핑 주석이 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강조하며 인도를 끌어당기려 했지만, 실질적 신뢰 회복은 이뤄지지 않았다. 무역 규모도 2021년 정점을 찍은 뒤 감소세다.

17549795697409.jpg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지난 2019년 6월 29일(현지시간)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기간 중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동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오히려 미국과 중국 간 미묘한 관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중국에 대한 관세 부과 유예 조치를 90일 더 연장하면서다. 지난 5월 1차 무역 협상에서 합의한 90일 연장에 이은 두 번째 연장이다. 오는 11월 10일까지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는 중단된다. 중국도 미국 기업 45곳에 가한 보복 조치를 중단했다.

인도 입장에선 미·중 모두에서 완전한 우군을 얻지 못하고 ‘닭 쫓던 개’ 신세가 됐다. 뉴욕타임스(NYT)는 8일 “시진핑과 트럼프 구애 실패 후 반성하는 모디”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세계 두 초강대국과의 관계를 변화시키려던 인도의 힘에 한계가 드러났다”고 짚었다. 모디 총리의 측근인 아미타브 칸트 전 G20 경제 특사는 NYT에 “무역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도 신뢰는 영원히 사라졌다”며 미국과 인도의 관계를 내다봤다.

인도 매체인 NDTV도 “인도가 미·중 관계의 희생양이 됐다”며 “균형외교가 시험대에 올랐다”고 분석했다. 외교 해법으론 “국익에 따른 전략적 자율성과 다중 동맹의 유연성”을 강조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역시 “미국과 외교 도박 실패한 인도는 외교전략을 재검토해야 한다”며 “트럼프가 미국·러시아·중국의 공조에 기반을 둔 새로운 질서를 추구하면서 인도는 설 자리를 잃었다”고 했다.

1754979569933.jpg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지난 10일(현지시간) 인도 남부 카르나타카 주의 주도 벵갈루루에서 신규 지하철 노선 개통식을 위해 참석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일각에선 이런 인도 외교의 ‘전략적 자율성’이 딜레마에 부딪혔다는 주장이 나온다. 미국과 손잡으면 중국과 러시아가 멀어지고, 중국 쪽으로 기울면 미국과의 기술·방산 협력이 흔들린다는 뜻이다.

이제 인도는 미·중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자신을 ‘대체 불가능한 파트너’로 만들어야 한다. 최근 모디 정부는 미·중 외에도 다른 동맹국과의 관계에 힘을 싣는 모습이다. 러시아와의 에너지·방산 협력을 확대하거나 브라질과의 교역 규모를 세 배로 늘리는 등 제휴를 강화하기로 했다.

관련기사

  • 트럼프 '50% 관세폭탄'에 불만? 인도 "미국산 무기도입 유보"

  • 어려운 中 앞서 쉬운 인도부터…트럼프, 100% 넘는 관세 경고장

  • 타결 1순위 꼽히던 인도, 26% 관세에도 느긋한 이유는

  • '중러 불참' 브릭스, 공동선언문 발표…"美 이란 핵시설 타격·관세 비판"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53,804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