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혼문’ 완성했다...케데헌 ‘골든’, 빌보드 차트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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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왼쪽부터) 미라, 루미, 조이로 이뤄진 3인조 걸그룹 헌트릭스가 노래를 통해 악령들을 물리쳐 '황금 혼문'으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나서는 이야기다.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의 OST ‘골든’(Golden)이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 100’ 1위를 기록했다.
빌보드는 11일(현지시간) 공식 홈페이지에 게재한 16일자 차트 예고 기사에서 “‘골든’이 지난주보다 한 단계 순위를 올리며 알렉스 워렌의 ‘오디너리’(Ordinary)를 제치고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고 밝혔다. 이어 “‘골든’은 ‘핫 100’ 차트를 석권한 ‘케이팝과 관련된’(associated with Korean pop) 아홉 번째 곡으로, 여성 보컬이 부른 첫 번째 1위 곡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이로써 ‘골든’은 지난 1일 영국의 오피셜 싱글 차트 ‘톱 100’ 1위에 이어 미국 빌보드 차트까지 석권하는 기록을 세웠다. 지난 6월 20일 애니메이션 공개 이후 약 2달 만에 이뤄낸 성과다. ‘케데헌’의 성공은 세계인들이 장르의 경계를 넘어 ‘한국문화’ 전반을 즐기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평가된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크리에이터들의 작품이 앞으로 더욱 주목 받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골든’, 빌보드 히트곡 흥행공식 따라, 차트 장기집권 예상”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속 한 장면. 루미(가운데)는 메인 보컬로 등장해 시원한 고음을 보여준다. 사진 넷플릭스
‘케데헌’의 주인공은 케이팝 3인조 걸그룹이자 퇴마사인 헌트릭스다. 이들은 노래를 불러 얻은 팬들의 마음을 통해 악령을 물리치고, 방어막 ‘혼문’을 완성하려 한다. 5인조 보이그룹 사자보이즈가 상대 악령 그룹으로 등장해 대결 구도를 펼친다.
극 중 헌트릭스가 부르는 ‘골든’은 최종 목적인 ‘황금 혼문’을 상징하는 동시에 주인공들의 과거 상처를 극복하고 빛나는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을 담아낸 노래다. 시원하게 뻗어 올라가는 고음 등 가창면에서도 전형적인 케이팝의 진행 방식을 따른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골든’은 팬덤을 기반으로 한 케이팝 가수들의 노래가 아니라, 대중적 인기를 얻은 애니메이션의 주제가가 차트에 진입해 차근차근 순위를 높인 빌보드 히트곡의 흥행 공식을 따랐다”며 “차트에 장기 집권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음악, 공연 넘어 K-문화까지 수출…새 지평 열려

'케데헌'의 인기는 곳곳에 숨겨져있는 케이팝 문화들에 공감을 얻으며 더욱 공고해져갔다. 매기 강 감독은 대기 시간에 분식을 먹고, 냅킨 위에 식기를 올려놓는 등 디테일을 더했다. 사진 넷플릭스
‘케데헌’은 미국 애니메이션이지만 케이팝 걸그룹의 일상과 무대, 팬들과의 교류는 물론 한국의 예절과 음식문화 등을 섬세하게 그렸다. 공연하기 전 함께 라면을 먹는 모습, 사인회를 통해 팬들과 만나고 유대감을 쌓는 모습 등 기존 케이팝 팬들이 공감할 만한 요소들을 곳곳에 넣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케이팝 문화 내 현상들을 구체적으로 묘사해 케이팝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겐 공감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신선함을 주며 인기를 견인했다”고 봤다.
이는 세계 팬들의 관심이 단순히 케이팝 음악 혹은 공연에서 더 나아가 케이팝을 포함한 한국문화 전반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케데헌’은 한국 문화를 단순 반영하는 방식에 그치지 않고, 영미권 현지문화와도 연결한 점이 인상적이다. 서사는 전형적인 액션 히어로 장르물의 법칙을 따르며, ‘골든’에도 표현된 ‘디아스포라적 인물’ 루미의 극복 서사는 다양한 문화와 인종이 공존하는 영미권의 문법과도 맞아떨어진다.
한국계 캐나다인 매기 강 감독 제작…디아스포라 콘텐트에 한획 그은 ‘케데헌’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만든 매기 강 감독은 지난 6월 넷플릭스를 통해 "한국 문화에 대한 애니메이션 영화가 나오면 멋지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에서 태어나 5세에 캐나다 토론토로 건너가 살았다. 사진 넷플릭스
무엇보다 ‘케데헌’의 성공에서 주목할 점은 이 작품과 수록곡이 만들어진 독특한 배경에 있다. 한국 자본으로 만들어진 콘텐트가 아님에도 케이팝과 한국문화의 재현을 통한 성공 사례를 일궈내서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는 이를 “존중을 바탕으로 한 재현”이라고 봤다. “케이팝 문화를 기계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존중하며 실제 케이팝을 만들어가는 핵심 인물들과 함께 작업했기 때문에 좋은 결과물이 나왔다”고 평했다.
‘케데헌’은 미국 제작사인 소니픽처스가 제작했지만, 현지의 한국계 캐나다인인 매기 강 감독과 한국계 애니메이터들을 고용하고 한국의 케이팝 회사들과 함께 작업했다. 헌트릭스의 ‘골든’은 SM엔터테인먼트 연습생 출신인 작곡가 이재와 서울 출신 래퍼 겸 싱어송라이터 레이 아미, 미국 뉴저지 출신인 오드리 누나가 가창했다. 이들은 모두 한국계 미국인이다. 작곡에는 케이팝 기획사 더블랙레이블의 음악 프로듀서 테디·24와 이재가 참여했다.

애니메이션 ‘K팝 데몬 헌터스’ 주제곡 ‘골든’을 작곡하고 부른 이재. 아이돌 연습생 출신으로 “더 이상 숨지 않고 빛나겠다”는 '골든'의 메시지를 스스로 증명했다. AFP=연합뉴스
이러한 ‘케데헌’의 제작방식은 디아스포라 콘텐트의 성공 사례 중 하나로 평가될 수 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윤여정 배우에게 여우조연상을 안긴 영화 ‘미나리’(2021), 제작자와 감독, 주연배우 모두 한국계 인물들이 참여한 애플TV+의 ‘파친코 시리즈’ (2022, 2024)의 성공 역시 같은 맥락이다.
김도헌 평론가는 “‘케데헌’은 케이팝이 외부 문화와 결합됐을 때 얼마나 (대중의) 호기심을 끌어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라며 “앞으로는 한국인 제작자가 없거나, 아웃소싱(외부 위탁)하는 형태로서 만들어진 케이팝 콘텐트가 등장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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