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클린턴 예측 뒤집혔다…“트럼프, 시진핑 국가자본주의 벤치마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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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 민주주의의 가장 소중한 가치인 ‘경제적 자유’를 받아들일 것이다.

2000년 3월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은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중국이 자유화할수록 미국 경제를 닮아갈 것이고, 궁극적으로 민주화가 될 거란 생각이다. 이런 기대 속에 미국은 중국이 이듬해 WTO에 가입하는 걸 적극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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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통계자료를 들어보이며 경제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5년이 지난 현재 클린턴을 비롯한 미국 오피니언 리더들의 통념은 180도 뒤집혔다. 중국이 미국을 닮을 거란 전망은 그들만의 ‘희망 회로’ 였을 뿐 실제론 미국 자본주의가 중국을 닮아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보장하기보다 국가가 기업 운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중국식 ‘국가자본주의’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는 건데,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가속화되고 있다는 게 WSJ의 분석이다.

WSJ가 든 ‘트럼프식 국가자본주의’ 사례는 다양하다. 중국 연계 의혹을 이유로 립부 탄 인텔 최고경영자(CEO)의 사임을 요구한 것을 비롯해 엔비디아와 AMD가 중국에 판매한 반도체 판매 수익의 15%를 미국 정부에 내기로 한 것 등이다. US스틸의 인수를 허용하면서 일본제철로부터 ‘황금주’(주요 경영 사안에 거부권 행사 가능한 주식) 확보한 것과 상호관세로 세계 각국을 위협해 1조 5000억 달러(약 2090조원) 규모의 투자 약속을 받아낸 것도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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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6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중국에 부임한 16개국 신임 대사들을 상대로 환영 연설을 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트럼프가 보인 행위는 미국이 구현해 온 자유 시장 정신과는 차이가 크다는 것이 WSJ의 평가다. 국가가 민간 기업의 결정을 주도하는 측면에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혼합한 국가 자본주의에 가깝다. 이런 체제를 가장 적극적으로 구현하는 곳이 중국이다. 중국은 시장경제 체제를 첨가한 자신들의 혼합형 사회주의를 ‘중국 특색 사회주의’로 정의해 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집권 이후엔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로 발전시켜 서방 시장경제 체제의 대안이라고 내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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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윈 알리바바 그룹 창업자. AFP=연합뉴스

WSJ는 중국 사례에 빗대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 정책을 ‘미국 특색 국가자본주의’라고 정의했다. 트럼프가 이른바 ‘엡스타인 의혹’을 보도한 WSJ와 소유주인 루퍼트 머독을 상대로 100억 달러의 명예훼손 소송을 걸었던 것도 지난 2020년 중국 금융을 전당포 영업에 비유한 마윈 알리바바 그룹 창업자와 알리바바 그룹에 대대적인 단속을 벌인 시진핑과 닮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기업에 거침없는 보복을 벌인다는 점에서다.

트럼프의 ‘벤치마킹’엔 고속성장하는 중국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있다. 중국이 공산당 주도로 ‘광속 건설 중인 거대 공학 국가’라면 미국은 삼권분립과 법치주의 등 이른바 ‘민주주의의 비효율에 발목 잡힌 국가’라는 게 트럼프의 인식이다. 법률가 중심의 복잡한 절차에 발목이 잡힌 데다 자유시장주의가 미국 제조업의 해외 이전을 부추겨 산업 기반을 약화하면서 중국에 추월을 당하게 생겼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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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1년 중국 안후이성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사회주의사상’ 교재를 읽고 있다. 안후이교육망 캡처

이를 막으려면 중국과 같은 방식으로 미국 국가 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게 트럼프 생각이다. WSJ는 “미국에서도 2차 세계대전 시기 ‘방위생산법’, 세계 금융위기 당시 기업 구제금융 등 기업에 대한 국가 개입은 있었지만 모두 일시적이었다”며 “트럼프는 이를 체계적·영속적으로 구현하려 한다”고 평가했다.

다만 국가자본주의엔 왜곡, 낭비, 특혜 등 부작용도 상당하다. 이로 인해 시장 자원 분배 등에서 비효율을 낳을 확률이 높다. 중국 철강과 자동차 분야 과잉생산 문제가 대표적이다. WSJ는 “시진핑의 통제 강화로 철강과 자동차가 초과 생산되며 가격과 기업 이익이 폭락하고 중국의 성장세가 둔화했다”며 “미국엔 중국과 달리 독립적인 사법부, 언론의 자유 등이 살아있는 만큼, 이를 통한 견제와 균형이 잘 이뤄지는지에 따라 트럼프의 국가자본주의 시도가 성공할지가 결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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