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예타 기준 500억→1000억 26년 만에 완화, 선심성 사업남발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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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도로·철도 등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예타) 기준을 대폭 완화한다. 1999년 제도 도입 이후 기준 금액을 손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는 14일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신규 SOC 예타 대상 기준을 ‘총사업비 500억원(국비 300억원) 이상’에서 ‘총사업비 1000억원(국비 500억원) 이상’으로 상향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예타는 대규모 재정 사업을 추진할 때 경제성과 효과 등을 평가하는 제도로, 사업성이 떨어지는 SOC를 걸러내 예산 낭비를 막는 장치다.

26년 만에 금액 상향에 나서기로 한 건 커진 경제 규모와 물가 상승을 반영한 조치다. 또 예타 조사 인력과 예산이 부족한 점도 감안했다. 최근 5년간 예타 평균 조사 기간은 16.7개월로 예타 운용지침에서 정한 기간(9개월)을 7개월 이상 초과하고 있다. 예타가 꼭 필요한 사업조차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을 받아온 이유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공공부문 의존도가 높은 지방을 중심으로 SOC 사업 추진 속도를 끌어올리는 긍정적 측면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부작용도 우려된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20년부터 올해까지 예타 조사가 완료된 사업비 500억원 이상 1000억원 미만 SOC 사업은 총 4건이다. 이 중 서산 군 비행장 민항시설 설치, 연구개발(R&D) 비즈니스밸리 연결도로 개설 등 2건은 예타 문턱을 넘지 못했다. 앞으로는 예타에서 경제성이 없다고 판단했던 이런 사업을 걸러낼 수 없게 된다.

이에 더해 기재부는 지역에 대한 전략적 투자를 유도하는 차원에서 경제성 평가를 축소하고 지역균형발전 평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예타 평가 항목을 손볼 예정이다. 익명을 원한 한 국립대 교수는 “정치권에서 지역 표심을 얻기 위한 선심성 사업을 더 적극적으로 펼칠 것이고, 이는 재정 악화로 이어진다”며 “지금도 10분에 차 서너 대 지나다니는 지방도로가 많은데, 앞으로는 더 늘 것”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정부의 재정에 부담을 줄 우려가 크다. 불과 하루 전인 13일 이재명 대통령이 나라재정 절약 간담회를 열어 강력한 지출 구조조정을 언급했는데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반응도 나온다. 안종범 정책평가연구원장은 “금액 상향과 함께 면제 요건을 재정비하고, 재정 낭비를 줄이려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만 기재부 관계자는 “모든 사업에서 경제적 효율만 따질 순 없고, 균형개발이라는 다른 가치 또한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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