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존'이라 불렸던 고아 소년...세계 곳곳 누빈 독립운동가 김규…

본문

17552495791504.jpg

책표지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정병준 지음
돌베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사와 해방 직후 현대사에서 김규식(1881~1950)은 늘 중요하게 거론되는 인물이다. 그는 1919년 3·1운동 직전 파리강화회담에 특사로 파견되어 혈혈단신 활동했고, 나중에는 임시정부 부주석을 지냈다. 한편으로 불과 16세에 미국으로 떠나 현지 대학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지식인이었고, 유창한 영어는 물론 여러 나라 말에 능통한 언어 천재였다.

17552495793721.jpg

미국 로녹대학이 소장하고 있는 김규식의 입학 사진.[사진 돌베개]

하지만 그에게 온전히 스포트라이트를 맞춘 서사는 많지 않다. 특히 해방정국에서의 그를 두고 이 평전의 지은이는 "이승만·김구와 함께 우익의 3영수로 꼽히던"인물"임에도 "주인공이라기보다는 주요 조역으로 등장하는 느낌이 강했다"고 전한다.

지은이의 설명에 따르면 해방 직후의 김규식은 '중도파의 비극'과도 연결된다. 김규식과 함께 각각 좌우합작, 남북협상에 나섰던 여운형과 김구는 모두 암살당했고, 김규식 자신은 1950년 한국전쟁 와중에 별세했다. 지은이는 "김규식은 성공과 실패가 분명치 않은 길을 걸어간 사람인 데다 정치적 추종자를 거느리지 않은 외로운 존재였고, 납북되어 사망함으로써 정치적 유산을 남기지 못했다"고 전한다.

17552495795719.jpg

1919년 무렵의 이승만(왼쪽)과 김규식. [사진 돌베개]

지은이는 현대사 연구자이자 이화여대 교수. 앞서 『몽양 여운형 평전』, 『우남 이승만 연구』,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 『1945년 해방 직후사』 등을 펴내며 주목을 받아왔다. 이런 와중에 김규식에 매료되고 그 평전을 쓰는 것을 '일생의 도전'으로 삼게 된 이유를 그는 책에 이렇게 적었다. "정치적 성패로 따지자면 성공하지 못한 사람의 역사이지만 그 삶 속에 담겨 있던 진정성과 꺼지지 않은 불꽃 같은 열정의 순간들이 마음을 사로잡기 때문일 것"이라고.

17552495798322.jpg

1919년 파리강화회의 특사로 파견된 김규식(앞줄 맨 오른쪽)이 파리위원부 사람들과 함께한 모습. [사진 돌베개]

오랜 연구와 조사를 거쳐 나온 이 평전은 세 권 분량. 해방 직전까지 김규식의 삶을 크게 세 시기로 나눴다. 1권은 어린 시절과 미국 유학, 귀국 이후 기독교계 활동과 중국 망명 등을 담았다. 특히 파리강화회의 특사 활동은 구미위원부 시기와 더불어 2권 전체를 1919~1921년의 단 3년에 할애한 데서 그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3권은 모스크바 극동민족대회 참가와 이후 중국에서의 독립운동 등을 담았다.

저자가 서문에 밝힌 대로 이 책은 영웅전도, 위인전도 아니다. 김규식을 한결같이 높이 평가하는 대신 때로는 지은이가 '우극(愚劇)'이라고 표현하는, 즉 어리석다고 보는 활동까지 풍부하게 조명한다. 또 이승만과의 협력과 불화는 물론 임시정부와 독립운동 전반의 부침과 진퇴, 분열과 갈등이 다양하게 다뤄진다. 어느덧 해방 80주년을 맞은 나라에 사는 현재의 독자로서는 독립운동을 펼친 이들이 겪어온 험난한 상황이, 그들이 예의주시한 국제 정세와도 맞물려 전해진다.

1755249580072.jpg

1945년 서울에서 촬영된 임시정부 요인들의 모습. 앞줄 가운데 김구와 김규식이 나란히 서있다. [사진 돌베개]

이 책은 '사료 추적기'로도 읽을 수 있다. 3권 말미에 '김규식 자료 추적기'를 따로 실었을 뿐 아니라, 본문 곳곳에 김규식과 독립운동 전반과 관련해 새로운 자료를 발굴하거나 원본을 확인하고 확보한 과정과 의미를 전한다. 지은이 자신은 물론 여러 연구자들의 성과나 도움을 포함해서다.

지은이가 책에 쓴 대로 "흔히 역사학자는 문헌에 기초해 사변적 연구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한 장의 사진과 조각난 흔적을 찾아 세계를 떠돌며, 역사의 편린과 모자이크를 맞추기 위해 온종일 사진 촬영을 하고 복사·스캐닝을 하는 노동자에 가깝다"는 말이 실감 난다. 김규식을 독립운동가, 민족지도자로 치환하는 대신 온전히 그 삶을 조명하려는 노력은 그가 임시정부를 떠나 중국의 대학교수로 일하거나, 앞서 몽골 등의 미국인 회사에서 일했던 시기에 대한 추적에도 드러난다.

17552495803286.jpg

어린 김규식. 1886년 촬영된 모습이다. 사진 뒤편에 언더우드가 보호하는 아이인 '존'이라고 이름이 적혀 있다.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 소장.[사진 돌베개]

1권의 첫머리 역시 자료, 그중에도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에서 김규식의 어린 시절 사진 원본을 확인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귀한 집 도련님 같은 사진 속의 모습과 달리 이 어린 소년이 어떻게 고아나 다름없는 처지가 됐는지, 이 사진이 어떻게 촬영되어 미국으로 전해졌는지가 당시의 시대상과 김규식 부친의 이채로운 경력과도 연결된다. 사진 뒤편에 적힌 아이 이름은 '존'. 미국에서 남자 익명처럼 쓰는 이름이기도 한데, 성장한 김규식이 미국식 중간 이름으로 쓰기도 했다고 한다.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52,771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