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트럼프 "돈바스 포기하면 휴전"…우크라에 전한 '푸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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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미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의 엘멘도프-리처드슨 합동군사기지에서 열린 양국 정상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악수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15일(현지시간) 미ㆍ러 정상회담이 뚜렷한 합의 발표 없이 마무리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휴전 해법의 공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떠넘기며 결단을 촉구하는 모양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휴전 전제조건으로 요구해 온 우크라이나의 돈바스 영토 포기를 사실상 압박하면서다.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의 당사자인 푸틴 대통령에게는 책임을 묻거나 추가 제재를 가하는 대신 오히려 우크라이나 쪽에 푸틴 요구 수용을 종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푸틴 대통령과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그 결과를 젤렌스키 대통령을 비롯해 영국ㆍ프랑스ㆍ독일 등 유럽 주요 국가 정상들에게 설명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돈바스 지역에서 철수하면 현재 전선을 기준으로 휴전하고 우크라이나와 유럽 국가를 공격하지 않겠다는 것을 서면으로 약속하겠다는 제안을 했다고 우크라이나와 유럽 각국에 전했다.
우크라이나 돈바스는 루한스크와 도네츠크를 포함한 동부 지역이다. 2022년 2월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가 루한스크 지역 대부분을 점령했고 도네츠크는 약 4분의 3을 장악한 상태다. 도네츠크 서부의 전략적 요충지 통제권을 여전히 놓지 않고 있는 우크라이나는 ‘영토 포기는 절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온 상황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황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미 전쟁연구소(ISWW)]
트럼프, 사실상 푸틴 요구 수용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돈바스를 러시아에 넘길 경우 휴전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실상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협상안을 받아들이고 우크라이나 역시 수용하라고 촉구하는 형국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ㆍ러 정상회담 전부터 공공연히 ‘영토 교환’을 거론했었다. 그는 알래스카로 향하는 전용기 기자 간담회에서 “러시아ㆍ우크라이나 간 영토 교환 문제가 논의될 것이다. 그 결정은 우크라이나가 내리도록 해야 한다”며 우크라이나의 영토 일부 포기를 전제로 한 평화 협정 가능성을 시사했다.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의 엘멘도프-리처드슨 합동군사기지에서 3시간 가까이 진행됐던 미ㆍ러 정상회담은 ‘빈손’으로 끝났지만, 두 정상의 표정은 밝았다. 회담 분위기가 우호적이고 신뢰에 기반했다며 이를 상대방의 공로로 돌리고 서로 치켜세우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많은 것을 합의했지만 큰 사안 몇 가지는 해결되지 않았다. 따라서 합의가 공식 체결되기 전까지는 합의가 있다고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 역시 “오늘 우리가 도달한 이해가 우크라이나의 평화로 가는 길을 열어주기를 희망한다”면서도 “우크라이나 전쟁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고 러시아의 국익을 고려하며 유럽과 세계 전체의 안보 균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기존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트럼프 “휴전 대신 평화협정으로 가야”

그래픽=남미가 기자
‘노딜 회담’ 직후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회담은 10점 만점에 10점이었다”는 자평과 함께 평화협정의 관건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달렸다고 거듭 강조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하루 뒤인 16일에도 같은 기조를 유지하며 젤렌스키를 압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글을 통해 “어제(15일) 정상회담은 매우 잘 진행됐고, 젤렌스키 대통령과 유럽 여러 지도자들과의 늦은 밤 통화도 성공적이었다”며 “끔찍한 전쟁을 끝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단순한 휴전 합의가 아니라 평화 협정으로 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젤렌스키 대통령의 18일 백악관 방문 계획을 알리면서 “모든 게 잘 되면 우리는 푸틴 대통령과의 회담을 잡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까지 포함한 3자 회담을 갖기를 희망하며 그 시한은 22일로 설정했다는 얘기를 유럽 정상들과의 통화에서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미ㆍ러 회담 이틀 전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을 향해 “즉각적 휴전이 없으면 심각한 후과가 있을 것”이라고 강한 톤으로 경고했던 것과는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앞서 지난달 14일에는 러시아가 50일 내 휴전 협정을 맺지 않을 경우 러시아와 거래하는 제3국에 최대 100%의 ‘세컨더리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했고, 같은 달 28일에는 ‘휴전 협정 시한’을 50일에서 10~12일로 단축하겠다며 압박 강도를 높였다.
NYT “트럼프, 푸틴에 전쟁 면죄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미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의 엘멘도프-리처드슨 합동군사기지 비행장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러다 푸틴 대통령과의 대면 회담 직후 공을 러시아 대신 우크라이나에 넘기는 쪽으로 급선회한 것이다. 미 언론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에게 전쟁 면죄부를 부여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NYT는 ‘트럼프, 푸틴의 우크라이나 접근법에 굴복’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푸틴에 추가 제재 없이 폭넓은 평화 협정 논의가 진행되는 동안 무기한 전쟁을 계속할 수 있는 프리패스를 부여했다”며 “이제 휴전도, 시한도, 제재도 없다”고 짚었다. 워싱턴포스트(WP) 역시 “트럼프가 크렘린 주장에 흔들린 듯하다”고 평했다.
러시아 반응은 대조적이다. 푸틴 대통령 최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러시아와 미국의 최고위급 회담 메커니즘이 완전히 복원됐다”며 “중요한 것은 전제조건 없이 ‘특별군사작전’이 계속되는 동안에도 협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는 것”이라고 호평했다.
80년 전 얄타회담 ‘소환’
돈바스 접수와 휴전을 맞바꾸는 푸틴의 구상이 현실화된 것은 아니지만 침략 피해국이 빠진 상황에서 미국이 침략국 쪽에 힘을 싣는 듯한 모습은 80년 전 얄타 회담이나 포츠담 회담을 연상시킨다는 얘기가 나온다. 당시 약소국의 목소리는 배제된 채 승자 중심의 편향된 국제 질서를 고착화시킨 것처럼 ‘힘에 의한 현상 변경 시도’가 용인되는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1945년 2월 4~11일 크림반도에서 열린 얄타 회담은 미국ㆍ영국ㆍ소련이 전후(戰後) 국제 질서 재편을 논의했으며, 한반도와 독일의 분할 점령이 당시 결정됐다. 같은 해 7월 17일부터 8월 2일까지 독일에서 열린 포츠담 회담은 미국ㆍ영국ㆍ소련이 얄타 회담 논의를 더욱 구체화해 유럽과 동아시아 영토 분할을 결정했다. 휴전 중재 의지가 강한 트럼프 대통령이 사실상 승전국 격인 러시아 협상안을 받아들여 우크라이나에 이를 강요하고 결국 관철시킬 경우 강대국 간 담판으로 약소국 국경선이 결정된 80년 전 역사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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