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이슬비 내리는 길을 걸으며~”…봄비 가수 박인수 78세로 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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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트곡 '봄비'를 부른 원로 가수 박인수씨가 18일 폐렴으로 별세했다. 향년 78세. 연합뉴스
“이슬비 내리는 길을 걸으며~ 봄비에 젖어서 길을 걸으며~ 나 혼자 쓸쓸히 빗방울 소리에~ 마음을 달래도~.’
1971년 발표돼 큰 인기를 끈 한국 첫 솔(soul) 가요 ‘봄비’를 부른 원로가수 박인수(78·본명 백병종)씨가 18일 영면에 들었다. 고인의 유족은 “고인이 오랜 기간 알츠하이머 등 지병으로 투병해왔다”며 “최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던 중 폐렴으로 건강이 급격히 악화해 오늘 오전에 숨을 거두셨다”고 밝혔다.
박씨는 독특하면서도 애절한 음색으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특히 그가 부른 ‘봄비’(작사·작곡 신중현)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이자 한국 솔 음악의 명곡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나팔바지’ ‘펑크 브로드웨이’ ‘의심받는 사랑’ ‘꽃과 나비’ ‘당신은 별을 보고 울어보셨나요’에 이어 1992년 ‘해 뜨는 집’과 2013년 ‘준비된 만남’까지 총 20여장의 음반을 발표했다. 그가 녹음한 마지막 곡 ‘준비된 만남’은 선배 가수인 재즈 보컬리스트 겸 작곡가 김준이 만든 노래였다.

중앙일보 2002년 4월 19일자 사회면 톱. 박인수씨의 안타까운 근황 관련 단독보도. 중앙포토
한국 솔(soul) 음악 대부 자리매김
박씨의 인생은 험난한 여정이었다. 1947년 평북 길주 출생인 고인은 한국전쟁 도중 어머니와 둘이 피란길에 올랐다가 열차에서 어머니의 손을 놓쳐 고아 신세가 됐다. 이후 어린 박군은 어머니를 찾기 위해 수시로 열차에서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이 과정에서 한 미군의 눈에 띄면서 인생 2막을 맞았다. 소년의 남다른 노래 솜씨를 눈여겨본 이 미군이 제대하면서 열두살이던 박군을 미국 가정으로 입양했다.
하지만 외로움과 향수로 뉴욕 할렘가를 전전하다가 극적으로 귀국했다. 우리말보다 영어가 유창했던 그는 뉴욕 할렘가에서 접한 솔 창법을 구사하며 미8군 클럽에서 활동했다. 그러던 중 1960년대 말 그룹 퀘션스의 객원 보컬로 참여하며 신중현 사단에 합류해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았고, 인생명곡 ‘봄비’를 발표하게 됐다.
노래 통해 한국전쟁 때 헤어진 어머니 재회
이후 박씨는 한국전쟁 당시 헤어진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노래 ‘당신은 별을 보고 울어보셨나요’를 발표해 화제를 모았고, 노래가 인기를 끌면서 지난 1983년 어머니와 극적으로 재회하기도 했다.
박씨는 1970년대 중반 가요계를 휩쓴 ‘대마초 파동’에 휘말렸고, 이혼의 아픔도 겪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저혈당 증세 등으로 건강이 악화하면서 노래를 접고 무대를 떠나야 했다. 이후 소식이 끊겼던 그는 경기도 고양시의 한 교회가 운영하는 사회복지시설에서 지내다 2002년 4월 갑자기 쓰러져 중환자실에서 입원하기도 했다.
당시 돌봐줄 가족도 없고 치료비도 없었던 박씨의 딱한 사연을 접한 ‘목화밭’을 불렀던 ‘하사와 병장’ 출신 후배 가수 이경우씨는 그의 근황을 언론에 알리고 동료 가수들과 자선음악회를 여는 등의 방법으로 도움의 손길을 전한 바 있다. 〈중앙일보 2002년 4월 19일 자 보도〉

가수 박인수씨가 지난 2002년 5월 홀로 투병 중인 자신을 도외준 후배 가수 이경우씨에게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직접 사인해 선물한 자신의 CD 음반. 사진 이경우씨
박씨는 이후 췌장 종양 제거 수술과 병원 치료를 거쳐 건강을 추슬렀다. 그는 이후 요양원 생활을 거친 뒤 2012년 부인 곽복화(75)씨와 37년 만에 극적으로 재결합했다.
박씨의 이런 굴곡진 삶은 같은 해 KBS 1TV ‘인간극장-봄비’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그는 당시 건강이 다소 회복되면서 2012년 6월 대중음악계 선후배들의 도움을 받아 서울 마포구 한 재즈클럽에서 컴백 공연을 열었고, 이후 전국 각지에서 여러 차례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부인 보살핌 받으며 투병 이어와
박씨의 이후 삶도 순탄치 않았다. 재결합한 부인 곽씨는 거동을 제대로 못 하는 남편 박씨와 함께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방 두칸짜리 월세집에 살며 간병인 없이 홀로 남편을 보살펴 왔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기초생활수급비로 생활했다. 이런 딱한 사정을 다시 접한 후배 가수 이경우씨는 동료 가수들과 자선음악회를 열어 성금을 전하기도 했다.
이경우씨는 “박인수의 삶은 절절한 그의 노래에 고스란히 배어있다”며 “그는 솔 음악을 통해 고통과 슬픔을 극복하고 이를 기쁨으로 승화시킨 한국을 대표하는 최초이자 최고의 솔 가수였다”고 박씨를 추모했다. 빈소는 서울 영등포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유족으로는 아내와 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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