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힘은 더이상 보수 아니다" 2040 찐보수도 등돌린다 [위기의 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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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가 추락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인 2022년 5월 2주차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45%였던 국민의힘 지지율은 지난 8월 2주차 조사에서 22%로 반 토막 났다. ‘집토끼’도 등을 돌린 결과다.

갤럽 월간 집계에 따르면 2022년 5월 74%였던 보수층의 국민의힘 지지율은 올 7월 기준 49%로 25%포인트 하락했다. 진보층의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75%였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핵심 지지층도 적잖게 이탈했다는 적신호”라며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유능함마저 실종된 국민의힘의 현주소”라고 말했다.

2021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부터 2022년 대선, 뒤이은 지방선거까지, 국민의힘의 3연승을 뒷받침했던 핵심 지지층은 왜 등을 돌렸을까.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12ㆍ3 비상계엄 사태 탓으로만 돌리기 힘든, 장기간 누적된 문제가 작용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한때 보수 진영의 핵심 지지층에 속했지만 이제는 “국민의힘이 쳐다보기도 싫다”는 3인을 찾아 심층 인터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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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철 해병대 예비역연대 회장이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해병대 예비역연대 회장인 30대 정원철씨는 학창 시절 천안함 사태, 연평해전을 보고 울분을 토했던 ‘애국 청년’이었다. 북한 핵 개발 관련 소식이 전해질 때면 피가 끓었고, 문재인 정부 시절 서해공무원 피살사건 땐 “나라가 국민의 생명을 버렸다”고 분노했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박 전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2017년 대선 때도 홍준표 후보를 선택했다. 2022년 국민의힘이 윤석열 검사를 대선 후보로 영입했을 때 오히려 “그가 정말 보수를 대변할 수 있을까”라고 우려할 정도였다.

그런 정씨는 지금 ‘반(反)국민의힘’ 투사다. 인터뷰를 한 지난 13일에도 서울 서초동의 순직해병 특검 사무실 앞에서 “국민의힘 반성하라”고 핏대를 세우고 있었다. 정씨는 “2020년 윤 대통령의 ‘바이든 날리면’ 발언 논란 때, 또 이준석 대표를 쫓아낼 때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했지만 국민의힘을 등질 정도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정씨에겐 2023년 7월이 결정적 시기였다. 해병대 채수근 상병의 사망 소식을 알리는 속보를 접했을 때 마음이 아팠지만, 그게 곧 정부를 향한 분노가 되진 않았다. 순직 사건은 복무 중에도 많았다. 7월 말 쯤 ‘VIP 격노설’이 떠돌더니 수사 외압 논란이 일면서 상처는 분노가 되어갔다.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이 ‘항명수괴’로 몰려 구속 기로에 놓이자 분노는 결국 밖으로 터져 나왔다. 뜻을 같이 하는 전우들을 모아 예비역연대를 창설했다.

정씨는 “국가를 위해 복무하던 해병대원의 죽음 앞에 보수 정권이 이런 행태를 보인다는 게 견딜 수 없었다”며 “더 가관인 건 국민의힘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군(軍)과 안보의 중요성을 아는 의원 누구라도 브레이크를 걸 줄 알았지만 다들 윤석열 대통령 눈치만 보며 나 몰라라 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요즘 행태를 보면 해산 후 재창당하는 게 답이라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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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남’ 이범석 씨가 7일 오후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 본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우상조 기자

이범석(26)씨는 ‘보수 이대남’의 표본이다. 중학생 때 전교조 소속 담임 선생님이 좌파 편향이라는 문제의식을 느끼곤 홀로 근현대사를 공부했다. 그 과정에서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을 알게 되면서 보수의 가치를 체득했다.

문재인 정부 땐 탈원전 드라이브와 소득주도 성장론에 반발해 청년 토론 모임을 열었다. 이 모임을 ‘신전대협’이라는 청년 보수 단체로 발전시켰다.

윤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이씨는 계엄 그 이후를 보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에서 멀어졌다. “계엄 선포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대규모 간첩단이라도 발각됐나 싶었다”는 이씨는 “‘경고성 계엄’ 운운하는 모습에 크게 실망했다”고 말했다. 그런 윤 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하면서도 이씨는 당이 문제를 바로잡을 거라는 한 가닥 기대를 가졌다고 한다.

이씨는 “나도 민주당의 줄탄핵이 큰 잘못이고, 선관위의 선거 관리도 부실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를 윤 전 대통령의 정치적 재기와 부정선거로 연결 짓는 주장이 당을 휩쓰는 걸 보고 크게 실망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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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연 바른신경외과 원장이 25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위치한 병원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김도연(46)씨는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후보를 택한 이후 지난 18년간 참여한 모든 투표에서 국민의힘 후보만 뽑았던 신경외과 원장이다. 2022년에는 국민의힘에 입당도 했다. 그 배경을 그는 “2008년 광우병 사태 때 진보 진영의 민낯을 봤을 때부터 깊은 불신이 자리잡았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음모론과 포퓰리즘을 남발하는 진보 진영과 달리 보수는 적어도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해 움직이는 집단이라고 믿었다”고 말했다. 같은 관점에서 김씨는 “국민의힘은 더는 보수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의대 정원 증원 자체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생각했다는 김씨는 “대통령이 마치 무엇에 홀린 듯 ‘2000명’을 외치는 걸 보고 이게 뭔가 싶었다”고 말했다. 여기에 덮친 R&D예산 삭감 사태는 그의 반감을 증폭시켰다.

하지만 김씨의 기대를 완전히 접게 한 건 국민의힘의 무기력이었다. 그는 “적어도 소장파 그룹에서 건전한 비판 정도는 나올 줄 알았는데, 의원들은 쉬쉬하며 대통령의 눈치만 보더라”고 말했다.

최근 국민의힘 상황에 대해 김씨는 “지지를 거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부정선거 음모론이나 ‘윤 어게인’(Yoon Again) 등 선동적 구호는 커졌지만, 보수 정당으로서의 정책 역량은 빵점”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젊고 능력 있는 인재들로 물갈이하지 않으면 다시 국민의힘을 지지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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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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