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다문화 모범 한국, ‘봉화’ 올리겠다
-
0회 연결
본문

베트남 전통의상을 입고 경북 봉화군 충효당 앞에 선 도 옥 루이엔 광운대 교수. 이 일대에는 ‘K-베트남 밸리’가 조성될 예정이다. 김정석 기자
“한국을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다문화 국가로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봉화에 조성되는 베트남 마을이 그 시작이 될 겁니다.”
지난 18일 경북 봉화군 봉성면 충효당에서 만난 베트남 출신 도 옥 루이엔(47) 광운대 교수는 충효당 옆 화산이씨 종택 마루에 앉아 이렇게 말했다. 그는 최근 봉화군 홍보대사가 됐다. 인구 약 2만8000명의 소도시 봉화군이 베트남 이주여성을 홍보대사로 임명한 이유는 뭘까.
루이엔 교수와 한국의 인연은 약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어릴 때 TV에서 한국을 ‘아시아의 용’이라고 표현하는 걸 봤는데, 그때부터 한국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고 했다. 지금에야 ‘K컬처’가 전 세계에 번져 있지만, 1990년대에는 ‘한류’라는 개념조차 없었다. 그런 시기에 루이엔 교수는 생긴 지 2년밖에 안 된 베트남 호찌민대 한국학과에 진학했다. 그는 “대학에 들어가 ‘가나다’부터 배웠다”고 했다.
졸업 후 직장 생활을 하던 루이엔 교수에게 2002년 경북 칠곡에 있는 한 대학교에서 유학을 권유했다. 베트남에서 열린 유학박람회에서 알게 된 곳이었다. 루이엔 교수는 “한국학과를 졸업 후에도 ‘한국이 아시아의 용이 된 이유’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해 유학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한국에 온 그는 서울대(국어교육과)와 연세대(국어국문학)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고, 베트남 이주민 정착과 자립을 지원하는 ‘부자민(Phú Gia Minh,, 베트남어로 ‘부유한 가정의 밝은 미래’란 뜻)’ 공동체를 만들었다. 박사과정 중 봉사활동을 하다 어렵게 사는 베트남 이주민들을 만난 게 계기가 됐다. “내가 타국 생활을 하며 겪은 어려움을 이들이 겪지 않길 바란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주민들의 경제 지식을 높이면 조금이라도 삶에 도움이 될까 싶어, 한국 경제 서적을 베트남어로 번역해 출간하기도 했다.
그렇게 베트남 공동체 대표로 활동하던 루이엔 교수는 어느 날 봉화군에서 연락을 받았다. “지역에서 ‘K-베트남 밸리 사업’을 하는데 자문을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베트남 최초의 통일왕조이자 장기집권 왕조인 리(Ly) 왕조(1009~1225)와의 인연에서 출발한 사업이라고 했다. 리 왕조의 후손인 이용상(1174~?)은 역성혁명을 피해 1126년 고려로 피신, 화산 이씨 성씨를 하사받아 봉화 일원에서 집성촌을 이뤘다고 한다. 봉화군은 충효당 일대에 당시 베트남 전통 마을과 리 왕조 유적지를 재현하고, 연수·숙박시설 등을 조성해 충효당을 관광명소화하겠다고 했다.
루이엔 교수는 “베트남 정규 교육과정에서는 가르치지 않는 리 왕조의 역사에 대해 듣고 전율했다”고 했다. 그는 봉화군과 힘을 합쳐 베트남 마을 만들기에 집중하는 한편, 봉화군 홍보대사로서 베트남과의 인연을 널리 알릴 생각이다. 지난 11일 한국을 국빈 방문한 또 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의 통역을 맡았을 때도, 참석자들에게 이런 인연을 소개했다고 한다.
오는 24일 충효당에선 베트남 마을 조성의 시작을 알리는 리 왕조 동상 제막식, 다문화커뮤니티센터 상량식 등이 열린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