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김용태 따위""국힘 광화문 나와" 대놓고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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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5일 권성동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가운데)가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선고(4월 4일)가 임박한 지난 3월 25일 당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 직후 기자들에게 대뜸 “개인적 판단으로는 탄핵 기각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탄핵 반대”라고만 주장하던 당 지도부가 선고에 대한 전망을 공개적으로 내놓은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그가 제시한 핵심 근거는 “현재의 여론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와 다른 헌법재판소의 구조”였다.

권 원내대표의 발언은 보수 유튜버들이 앞다퉈 헌재의 구성에 대한 제 나름의 분석을 토대로 만든 ‘기각설’을 한창 보수 진영에 주입하던 국면에서 나왔다. 같은 달 22일 유튜버 고성국씨는 “캐스팅보트 김형두 재판관이 보수 쪽으로 스텝을 옮기고 있다는 단적인 증거가 있다”고 불을 지폈다. ‘신의한수’ 신혜식씨도 다음 날 “민주당 쪽 언론인조차 ‘재판관 한 명은 기각, 두 명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며 “헌재 내부에서 (탄핵) 인용으로 몰아가기 어려워 선고를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강용석 변호사도 26일 “쟁점마다 정계선-김복형 재판관이 부딪힌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며 “4대4도 아니고 정정미 재판관이 이쪽(탄핵 기각)으로 넘어와 3대5까지도 예상한다”고 기름을 부었다.

이후 국민의힘의 메시지는 급변했다. 권영세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은 31일 회의에서 갑자기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더 이상 시간을 끌지 말고 신속히 판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고를 미룰수록 조기 대선에 희망이 생긴다는 생각에 “신중한 판단”을 요구하던 입장을 180도 바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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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31일 한국사 강사 출신 유튜버 전한길씨와 국민의힘 의원들이 국회에서 헌법재판소의 신속한 판결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고성국TV, 이봉규TV 등은 윤 전 대통령도 즐겨보던 채널이다. 윤석열 정부 시절 당 지도부에 속했던 인사는 “대통령도 유튜브를 본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의원들도 유튜브 여론을 의식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도부가 유튜브에 직접 휘둘린 건 아니지만, 술자리에서 청취한 민심도 결국 유튜브에서 시작돼 돌고 돌아온 것 아니겠냐”며 “의원들이 직접 취재했다는 기각설이 완전히 빗나갔다는 건 유튜브 상에서 만들어진 ‘가짜 정보’가 순환되는 구조를 보여주는 결과”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이 유튜버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여론을 추종하는 현상은 12·3 비상계엄 이후 두드러졌다. 지난해 12월 윤상현 의원이 전광훈 목사가 주도하는 광화문 집회에 처음 등장한 날(12월 28일)은 고성국TV가 “국민의힘도 광화문으로 나오라”고 말한 날부터 불과 이틀이 지나서다.

6·3 대선이 한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 국민의힘의 최대 고민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누가 다느냐였다.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은 5월 15일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윤 전 대통령을 찾아뵙고 탈당을 요청할 것”이라고 했다가 16일 돌연 “탈당은 이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입장을 바꿨다. 공교롭게도 김 위원장의 태도 변화는 같은날 고성국씨가 “김용태 따위가 나설 일이 아니다”라며 반대 여론을 부추긴 데 이어 친윤계가 “강제하듯이 내쫒는 건 아무 도움이 안 된다”고 반발한 직후에 일어났다. 17일 윤 전 대통령은 자진 탈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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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5일 보수 유튜버 고성국씨가 김용태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향해 ″(윤석열 전 대통령 탈당에) 나설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진 유튜브 '고성국TV' 캡처

유튜버들의 영향력은 8·22 전당대회를 앞두고 한층 선명해지고 있다. 김문수·장동혁 후보는 최근 한국사 강사 출신 전한길씨 유튜브에 출연해 윤 전 대통령의 재입당을 주장했다. “당선 보증수표”(초선 의원)라는 말까지 나오는 전씨가 후보들을 상대로 일종의 ‘윤어게인(Yoon Again) 감별’ 면접을 보면서다. 김 후보는 “당연히 받아준다”고, 장 후보도 “당에 도움이 된다면 못 받을 이유가 없다”고 답했다.

적극적 투표의사를 보이는 강성 당원들이 유튜브로 결집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지난 14일 집중호우로 온라인 대체된 전당대회 합동연설회 당시 라이브 방송 시청자수가 이를 증명한다. 당 공식 채널 ‘국민의힘TV’ 시청자는 2000여명. 같은 시각 전한길씨 라이브 방송엔 6000명 넘는 시청자가 몰렸다. 당 중앙윤리위원회가 전씨에게 ‘배신자 소란’을 이유로 ‘경고’라는 솜방망이 징계를 내린 직후였다. 댓글창엔 “끝까지 지지한다”, “작금의 100명의 의원보다 나은 분이다” 등 전씨를 향한 응원 일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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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기자

전씨가 당심을 장악하기 시작한 건 윤 전 대통령 탄핵 국면 때였다. “비상계엄은 계몽령”이라는 구호로 스타덤에 오른 전씨는 국회에도 여러 번 등장했다. 3월 31일 그가 탄핵 반대 토론을 위해 국회에 방문했을 때는 의원 37명이 사진을 찍으려고 우르르 달려가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의원 107명을 다 모아도 전한길 한 사람보다 울림을 만들지 못하는 현실”(비례대표 의원)이라는 자조가 국민의힘엔 팽배하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길심(전한길씨 마음)을 움직여야 당선을 기대할 수 있는 게 지금 국민의힘 현실”이라고 말했다. 유명 보수 유튜브에 출연했었다는 한 의원은 “유튜브에 한 번만 출연해도 한 달치 후원금이 하루 만에 들어온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유튜버들이 확산하는 음모론에 정면 대응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 의원은 “부정선거론을 정면 반박하면 입지가 흔들린다”며 “선거관리위원회의 부실선거를 지적하는 정도로 애매하게 선회해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 영남 의원은 “이미 유튜버들이 당내 여론을 장악하고 있다”며 “때려 달라고 뺨 내밀고 있는 이들을 때릴수록 더 큰 목소리를 낼까 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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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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