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현대판 노비 아냐" 대학 앞 검은 천막…할머니들 11년째 농성,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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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동구 울산과학대학교 앞에 있는 천막 농성장. 일흔이 넘는 고령자 4명이 상주하고 있다. 이들은 교대로 천막을 지키며 학교를 상대로 복직과 임금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11년째다. 김윤호 기자
지난 12일 찾은 울산 동구 울산과학대학교 앞. 여름 햇볕과 장마를 버틴 천막은 낡고 빛이 바래 있었다. 곰팡이가 핀 파라솔과 낡은 텐트, 오래된 서랍장, 작은 냉장고, 주전자와 전기 포트가 빼곡히 들어선 이곳은 김순자(73) 씨를 포함한 일흔이 넘는 고령자 4명이 상주하는 천막 농성장이다. 이들은 교대로 천막을 지키며 학교를 상대로 복직과 임금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벌써 11년째다.
13일에는 권창준 고용노동부 차관이 직접 천막을 찾았다. 노동 현안을 총괄하는 차관의 방문은 이들의 요구가 단순한 개인 갈등을 넘어 장기 고용 분쟁으로 정부가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달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더불어민주당 김태선 의원이 김영훈 장관 후보자에게 사태 해결을 촉구한 지 28일 만의 변화다.
11년째 이어지는 천막 농성, 그 사연은 2014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할머니들은 울산과학대 청소를 맡은 A용역업체 소속이었다. 시급 5210원을 6000원으로 인상해 달라며 울산지역연대노조 울산과학대 지부 소속으로 파업에 나섰다.

지난 13일 권창준 고용노동부 차관이 울산과학대 앞 천막을 찾아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사진 더불어민주당 울산시당
그러나 협상은 길어졌고, 결국 학교 측은 "면학 분위기를 해친다"며 법원에 퇴거 가처분을 신청했다. 법원은 이를 인용했다. 본관 로비에서 이어지던 농성은 정문 앞 천막으로 옮겨졌다. 이후 학교와 A업체 계약이 종료되면서 새로운 청소 근로자들이 채용됐다. 결국 일자리를 잃었다.
처음에는 8명이 함께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건강 문제와 생활 여건 등으로 하나둘 떠나 현재는 4명만 남았다. 이들이 주장하는 근거는 2007년 작성된 합의서다. 당시 울산과학대 동부캠퍼스에서 근무하던 청소 조합원이 원할 경우, 새로운 용역업체가 고용을 승계한다는 내용이 담겼고, 이들은 이를 곧 고용 보장의 약속으로 받아들인다. 다만 이 합의서가 법적 구속력을 갖는지에 대해서는 해석이 엇갈려 분쟁 해결이 더 어려워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할머니들의 천막생활은 사계절 내내 이어지고 있다. 겨울엔 비닐로 바람을 막고, 여름엔 부채와 선풍기로 더위를 견딘다. 한때는 비바람에 천막이 날아갈 뻔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자리를 지켜온 이유에 대해 노조 지부장 김씨는 "우리가 원하는 건 거창한 게 아니라, 일을 못 한 지난 시간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이라고 말했다.

울산 동구 울산과학대학교 앞에 있는 천막 농성장. 일흔이 넘는 고령자 4명이 상주하고 있다. 이들은 교대로 천막을 지키며 학교를 상대로 복직과 임금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11년째다. 김윤호 기자
울산과학대 측은 계약 종료와 함께 법적 관계가 이미 끝났다는 입장이다. 당시 고용 승계 설명회에서 농성자들이 해당 요구를 명시적으로 제기하지 않았고, 퇴직금 지급도 끝냈다는 것이다.
대학 관계자는 "복직이나 임금 지급 등 법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요구는 없는 것 같다"면서 "(학교에서도) 그동안 사태 해결을 위해 많은 고민이 있었고, 앞으로도 해결 방안을 계속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학교 측은 지난해부터 천막 옆 화장실 개방, 전기 사용 허용 등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오랜 기간 이어진 천막 농성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울산지역 시민단체와 노동계는 "대학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일부 주민들은 "학생 학습 환경과 학교 이미지에 악영향을 준다"고 우려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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