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손목과 메달을 바꿀 각오

본문

17557896626167.jpg

재일동포 출신 유도 국가대표 김지수. 지난해 손목 수술 후 8개월 만에 매트에 복귀했다. 같은 부위만 네 번 수술한 그는 왼손과 팔목에 테이프를 잔뜩 두르고 훈련에 나선다. 테이핑 시간만 20분 걸린다. 그런데도 “하루빨리 국제대회에 출전해 건재를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전민규 기자

“다섯 번인가? 아니 네 번 했네요. 워낙 여러 번 다쳐서 세다 까먹었어요.”

재일동포 출신 여자 유도 63㎏급 국가대표 김지수(25)에게 ‘수술을 몇 번 했느냐’고 물었는데, 손가락을 펴고 횟수를 세어보던 선수가 머리를 긁적였다. 김지수는 지난해 8월 파리올림픽 직후 왼손목 수술을 받았다. 8개월 가까운 재활을 거쳐 지난달 매트에 복귀했다. 대한유도회는 선발전을 치르지 않은 그를 강화선수 자격으로 대표팀에 발탁했다. 김지수는 공백기가 길었지만, 63㎏급 한국 선수 중 세계랭킹(26위)이 가장 높다. 지난 20일 서울 태릉선수촌 유도장에서 만난 그는 “오래 쉬어서인지 다른 나라 선수들이 ‘혹시 은퇴한 거 아니냐’고 물어보더라”면서 “하루 빨리 국제무대에 복귀해 건재를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김지수의 왼쪽 손목은 칼자국 투성이다. 같은 부위만 네 차례나 수술하는 과정에서 남은 흉터다. 처음 수술대에 오른 건 2021년 도쿄올림픽(16강 탈락)이 끝난 직후였다. 올림픽 출전을 위해 치료를 미룬 채 훈련한 탓에 손목 인대가 너덜너덜하게 찢어진 상태였다. 접합 수술을 받은 그는 예정보다 이른 2022년 4월에 복귀했다. 하지만 충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훈련하다 손목이 부러져 재차 수술대에 올랐다. 2개월 뒤엔 같은 부위에 철심을 끼워 넣는 수술을 한 차례 더 받았다. 결국 2021년 9월부터 약 2년 동안 공식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2023년 6월 김지수는 63㎏급으로 체급을 올려 복귀했다. 파리올림픽이 불과 1년 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지만, 기어이 출전권을 따냈다. 파리에선 개인전은 8강에서 탈락했지만 혼성단체전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기쁨도 잠시, 올림픽 후 네 번째 손목 수술을 받았다. 의사는 “손목에 한계가 왔다. 이번엔 매트로 복귀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은퇴 갈림길에서 김지수는 이를 악물었다. 그는 “일본에서 나고 자란 내가 한국에 건너온 건 태극마크를 달고 메이저대회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라며 유도를 포기하지 않았다. 김지수는 왼손과 팔목에 테이프를 잔뜩 두르고 훈련과 경기에 나선다. 테이핑 시간만 20분 가까이 걸린다. 김지수는 “붕대처럼 꽉 동여매도 손목에 통증이 있다. 고주파 치료를 받지 않으면 다음 날 정상적인 훈련이 힘들 만큼 아프지만, 목표가 있기에 참고 견딘다”고 털어놨다.

17557896628434.jpg

정근영 디자이너

김지수는 일본 효고현 히메지시에서 나고 자란 재일동포 3세(부모 모두 한국 국적)다. 고교 시절엔 종주국 일본이 주목하는 특급 유망주였다. 유도 명문 슈쿠가와고 1학년이던 지난 2016년 전일본고교선수권대회에서 쟁쟁한 3학년 선배들을 줄줄이 꺾고 48㎏급 정상에 올랐다. 고 3때는 57㎏급으로 체급을 올려 또 한 번 고교 전국 챔피언이 됐다.

“유도 천재가 나타났다”는 일본 언론의 조명을 뒤로 하고 김지수는 고교 졸업 후인 2019년 한국으로 건너왔다. 그리고 1년 만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김지수의 당면 과제는 내년 아시안게임 금메달이다. 개최지 나고야는 김지수의 고향 히메지에서 자동차로 2시간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고향 근처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에서 태극기를 휘날리고 싶다”는 김지수는 “일본 선수들과 평소에 잘 지내지만, 국제대회에선 두려움을 주는 존재가 되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54,145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