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 제국의 잔혹하고 폭력적인 역사[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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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유산
캐럴라인 엘킨스 지음
김현정 옮김
상상스퀘어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을 가리키는 낯익은 표현이다. 전성기의 영국 제국은 그랬다. 식민지와 보호령 등을 합해 전 세계 육지의 4분의 1가량을, 4억 5000만 명이 넘는 사람을 지배했다. 영국을 가리키는 또 다른 낯익은 표현은 '신사의 나라'. 그렇다고 영제국의 식민 지배와 통치가 그저 신사적으로 이뤄졌으리라 순진하게 여길 독자는 많지 않을 터. 그럼에도 이 책이 지적하듯, 영제국은 그나마 "선량한 제국주의의 창시국"이라고 여기는 시각도 많다.

미국의 역사학자이자 하버드대 교수인 지은이는 이와는 사뭇 다른 영제국의 폭력적인 역사를 상세히 드러낸다. 대표적인 것이 1950년대 케냐에서 벌어진 마우마우 사태다. 마우마우 봉기라고도 불리는 무장 봉기가 일어나자 영국 정부는 1952년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처형은 물론 수만 명을 수용소에 구금했다. 구금된 이들을 비롯해 당시 케냐 사람들은 말로 옮기기 힘든 잔혹한 고문을 포함해 온갖 폭력을 겪었다. 피해자들의 증언 등과 함께 이를 상세한 조명한 지은이의 첫 책 『제국의 심판』은 2005년 출간되어 큰 주목을 받았고, 이듬해 논픽션 부문 퓰리처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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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영국 런던에서 국기 유니언 잭 깃발이 휘날리는 가운데 뒤편에 국회의사당이 보이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역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케냐의 생존자들은 2009년 영국 왕립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다. 지은이 역시 중요 참고인으로 재판에 참여했다. 4년에 걸친 재판 결과 영국 정부는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피해 배상과 보상에 나선다. 놀랍게도 그 와중에 과거 영국이 케냐는 물론 여러 식민지에서 대량으로 문서를 폐기했고, 영국 내로 들여온 방대한 문서들을 비밀리에 보관해왔다는 사실까지 드러난다. 책의 끝부분은 이런 재판 과정도 자세히 전한다.

이 책은 18세기 말부터 20세기에 걸쳐 벵골, 인도, 보어전쟁이 벌어진 남아프리카, 독립전쟁이 벌어진 아일랜드, 이라크, 아랍봉기 등이 벌어진 팔레스타인, 비상사태가 선포된 말라야, 케냐 등을 아우르며 영제국의 "벨벳 장갑에 감춰진 무쇠주먹"의 실상을 생생해 전한다. 각 지역의 상황과 사건을 개별적으로 열거하는 대신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영국의 정치적 상황 등과도 함께 전반적 흐름을 엮어내며, 여러 기록과 자료를 바탕으로 주요 인물들에 대해서도 세세히 전한다.

지은이는 영제국이 자행한 폭력을 국가 주도의 "합법화된 불법"으로 부른다. 자유주의, 법치주의의 흐름과 달리 식민지에서는 비상사태·계엄령 선포 등을 통한 법적예외주의를 따랐고, "예외적인 국가 주도 폭력을 점차 합법화하고, 관료화하고, 정당화했다"면서다. 이는 피부색이 다른 상대를 무지몽매한 야만의 상태, 혹은 어린아이 같은 상태로 여기며 "문명화의 사명"으로 스스로를 합리화한 자유제국주의와도 맞물린다. 책은 자유제국주의가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되었는지 역시 추적한다. 산업혁명과 명예혁명의 나라만은 아닌 영국의 역사, 팔레스타인을 비롯해 오늘날로 이어지는 지난 세기의 역사를 새롭게 다시 보게 하는 책이다. 원제 Legacy of Violence: A History of the British Emp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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