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돈 풀어도 건설 쇼크…정부, 0%대 성장률 공식화 [경제성장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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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서울 성북구 한 아파트 건설 현장의 모습. 연합뉴스

정부가 22일 수정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0.9%로 전망했다. 하반기 경제 정책 방향이나 새 정부 경제 정책 방향을 발표하며 0%대 그해 성장률 전망치를 내놓은 것은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0.1%) 이후 처음이다. 민생회복 소비쿠폰의 효과로 내수 경기가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지만, 극심한 건설 투자 부진과 미국 관세 부과 등 대내외 불안 탓에 1%를 밑돌 것으로 봤다.

0.9%의 성장률은 지난 1월 발표한 1.8%에서 절반으로 낮춘 수치다. 한국은행ㆍ한국개발연구원(KDI)ㆍ국제통화기금(IMF)ㆍ아시아개발은행(ADB) 등 국내외 기관의 전망치(0.8%)보다는 높다. 분기별로는 2분기 0.6% 성장하며 1분기 역성장(-0.2%) 충격을 어느 정도 만회했지만 1%대까지 성장률을 끌어올리기엔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김재훈 기재부 경제정책국장은 “연간 0.9%를 달성하려면 하반기 거의 1%대 중반 수준의 성장을 해야 하므로 쉬운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며 “성장률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올해 G20(주요 20개국)은 2.9%, 미국과 유로존 성장률 전망치도 각각 1.6%·1.0%로 한국보다 높다. 한국의 경쟁국인 대만은 최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을 3.1%에서 4.45%로 크게 올리기도 했다. 반면 한국은 2022년 2.7%, 2023년 1.6%, 2024년 2.0%로 내리막 흐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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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기자

다행히 내수 경기는 흐름이 반전됐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민간소비 증가율은 1.3%로 작년(1.1%)보다 0.2%포인트 높여 잡았다. 추경을 통해 전 국민에게 지급한 민생회복 소비쿠폰의 효과가 반영될 거란 기대다. 지난해 12월 88.2까지 급락했던 소비자심리지수 역시 올해 7월 기준 110.8까지 상승했다. 약 4년 만의 최고치다. 금리 인하 효과 등을 고려하면 당분간 회복 흐름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게 기재부의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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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기자

내수 회복세에도 정부가 눈높이를 낮춘 건 올해 건설투자 성적 때문이다. 작년(-3.3%)보다 나빠진 -8.2%로 예상했다. 예상보다 투자 감소 폭도 크고, 회복도 더디다. 김 국장은 “수주가 실제 투자로 반영되는데 통상 4~8분기 정도 소요되기 때문에 내년에는 좀 더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관세 부과 등 대내외 불안 영향도 있다. 올해 수출 증가율은 0.2%로 작년(8.1%)에 비해 급감할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는 하반기에 반도체와 선박은 증가세를 이어가겠지만, 품목 관세가 적용되는 자동차와 철강 등은 상반기보다 둔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는 두 차례에 걸쳐 편성한 추가경정예산은 올해와 내년 성장률을 각각 0.1%포인트씩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을 거로 내다봤다. 다만 현 단계에서 3차 추경은 검토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소비자물가 전망치는 1.8%에서 2.0%로 높여 잡았지만, 큰 변동은 없을 거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국제유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가공식품 가격 등이 높은 상승률을 나타내고 있는 점을 반영했다. 취업자는 당초 목표치(12만명)보다 5만명 늘어난 17만명으로 전망했다.  다만 청년층(15~29세)의 취업난은 지속될 것으로 봤다.

내년 성장률 전망치는 1.8%다. 올해보다 두 배가량 높은 수준이다. 조영무 NH금융연구소장은 “건설투자는 유례없이 어려운 상황이고, 관세 불확실성도 여전하다”며 “내년 성장률은 기저효과에 따라 올해보다는 낫겠지만, 경기가 본격적으로 살아나지 않는다면 또 다시 추경을 할 것인지 등 정책 대응이 중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정부는 경기 여건을 고려해 내년 총지출 증가율을 올해보다 높은 수준으로 설정해 2026년 예산안을 편성할 계획이다.

이번 경제성장전략에 담긴 핵심 키워드 중 하나는 잠재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반등이다. 잠재 GDP는 한 나라의 노동ㆍ자본ㆍ자원 등 모든 생산요소를 모두 동원하면서도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생산 수준이다. 2010년 3%대였던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생산인구감소, 투자 위축 등으로 올해 1%대 후반까지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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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새정부 경제성장전략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왼쪽부터 문신학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구 부총리,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연합뉴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인공지능(AI) 대전환은 인구충격에 따른 성장 하락을 반전시킬 유일한 돌파구”라며 AI에 집중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AI 기술 투자 확대엔 공감하는 분위기다. 다만 정부 계획대로 고령자를 포함한 전 국민을 AI 인재로 육성하고, 중소ㆍ영세 제조기업까지 AI 활용률을 높이려면 막대한 자본이 필요함에도 구체적인 재원 마련 방안이 미흡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저출산·고령화 같은 인구 위기, 고용 양극화, 생산성 격차 등 잠재성장률의 발목을 잡고 있는 구조적 문제도 'AI 도입' 외에는 구체적인 해법이 부재하다. AI의 거품 논란과 부작용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AI를 산업정책이 아닌, 거시정책의 틀로 활용하는 것이 맞느냐는 비판도 나온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잠재성장률을 끌어 올리려면 노동ㆍ자본ㆍ총요소생산성이 모두 늘어야 하는데, 생산성 높은 고학력자들의 일ㆍ가정 양립을 지원하는 대책 등은 미비하다”며 “무엇보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노란봉투법ㆍ상법개정안ㆍ법인세 인상 등은 기업 투자를 위축시키는 요인이기 때문에 AI 투자만으로 잠재성장률 3%를 달성한다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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