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164번째 도전 끝에 우승컵…얼굴은 예수, 내면엔 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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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미 플리트우드가 25일(한국시간) PGA 투어 플레이오프 최종전 투어 챔피언십 정상에 오른 뒤 포효하고 있다. 유독 우승과 인연이 없었던 그는 164번째 출전 끝에 트로피를 들어 올려 지긋지긋한 ‘무관의 제왕’ 꼬리표를 뗐다. [EPA=연합뉴스]
‘무관의 제왕’ 토미 플리트우드(34·잉글랜드)가 마침내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25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이스트레이크 골프장에서 열린 PGA 투어 플레이오프 최종전 투어 챔피언십에서 합계 18언더파 262타를 기록하며 고대하던 챔피언 타이틀을 품에 안았다. “PGA 투어에서 우승이 없는 선수 가운데 가장 뛰어난 실력자”라는 평가를 받았던 그는 164번째 출전 끝에 드디어 정상에 섰다.
플리트우드는 긴 머리와 수염 덕분에 ‘필드의 작은 예수’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그의 개성 있는 헤어스타일은 언제나 눈길을 끌고, 표정 변화 없는 영국식 위트는 팬들을 웃게 한다. 그는 머리를 기른 사연에 대해 “아버지가 머리숱이 적으셔서 언젠가 나도 줄어들 것 같았다. 즐길 수 있을 때 충분히 즐기고 싶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어머니 때문이다. 10대 시절 형과 장난으로 머리를 삭발했을 때 어머니가 충격을 받아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본 이후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의리파’로도 유명하다. 나이키 계약 선수였던 그는 회사가 골프용품 생산을 중단한 이후에도 오랫동안 나이키 클럽을 사용했다. 7·8번 아이언의 호젤이 닳아 12개 클럽으로 대회를 치른 적도 있다. 캐디는 어릴 적 동네 친구고, 어린 시절 그를 지도했던 코치에게 아직도 배운다.
아내 클레어는 그의 무명 시절 에이전트였다. 나이는 플리트우드보다 23세 많다. 전 남편 사이에서 낳은 아들도 있다. 클레어는 “(청혼을 받고) 처음엔 거절했다. ‘바보 같은 짓’이라 만류했다”고 했지만, 결국 2017년 결혼해 지금까지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PGA 투어의 한국인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퍼트 전문 코치로 활동 중인 김규태(35) 위닝퍼트 대표는 지난 수년 간 새벽부터 저녁까지 장승처럼 PGA 투어 그린을 지켰다. 몇몇 마음 좋은 선수들은 곰처럼 우직한 김 코치에게 인사를 건네기도 했는데, 그 중 가장 따뜻한 사람은 플리트우드였다. 그는 김 코치에게 전화번호를 주고 안부도 주고받는다.
플리트우드는 올해도 여러 번 우승을 놓쳤다. 6월 트래블러스 챔피언십과 2주 전 플레이오프 1차전 세인트 주드 클래식에서도 막판에 역전패했다. PGA 투어 관계자들은 “플리트우드는 실력이 좋지만 마음이 여려 우승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가 마지막 홀에서 놓친 역전패 하나하나는 결코 잊히지 않는 악몽이 됐다. 그러나 플리트우드는 다운 되어도 다시 일어나 달려드는 젊은 복서처럼 계속 돌아왔다. 플리트우드는 “(홧김에) 클럽을 물에 던져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다”라며 “모든 것에서 배우고, 거기서부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최근 12번의 경기에서 7번이나 톱10에 들었다. 그중 6번은 4위 이내다. 페덱스컵 플레이오프 첫 두 대회에선 공동 3위와 공동 4위를 기록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도 “이전에 잘 안 됐다고 해서 이번 주에도 안 될 거라는 법은 없다”며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유지했다. 미국 골프 채널 해설자 브랜델 챔블리는 “이번 대회는 스코티 셰플러 등과의 싸움이 아니었다. 10년 가까이 매주 플리트우드를 죽인 악마·괴물·포식자들과의 승부였다”고 평했다.
플리트우드는 결국 이겼다. 너무 착해 물러 터진 것처럼 보였던 이 사내의 내면은 가장 단단했다. 골프의 신은 그의 첫 우승에 골프 사상 가장 많은 우승 상금(1000만 달러·약 140억원)을 선물했다. 패트릭 캔틀리 등이 15언더파 공동 2위다. 세계랭킹 1위 스코티 셰플러는 14언더파 공동 4위다. 임성재는 이븐파 공동 27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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