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입은 시장주의, 행동은 역주행…'기업 족쇄법' 쏟아내는 여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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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국회 본회의에서 2차 상법 개정안이 여당 주도로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밀고(노란봉투법), 또 밀었다(2차 상법개정안). 대통령은 ‘실용주의 친(親)기업’을 말하는데, 여당은 거침없이 반(反)기업 입법을 밀어붙이고 있다. 경제 정책을 관철하는 데 있어 ‘소득주도성장(소주성)’을 전면에 내세운 문재인 정부 시절보다 한층 진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회는 25일 본회의를 열어 소위 ‘더 센 상법’으로 불리는 2차 상법 개정안을 여당 주도로 의결했다. 법안은 재석 의원 182명 가운데 찬성 180명, 기권 2명으로 통과됐다. 더불어민주당과 범여권 정당이 찬성표를 던졌고, 개혁신당(2명)이 기권표를 행사했다. ‘경제 내란법’이라며 법안에 반대한 국민의힘은 표결을 거부했다.
개정안은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에 대해 집중투표제 도입을 의무화하고, 감사위원 분리 선출을 기존 1명에서 2명 이상으로 확대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기업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의 1차 상법 개정안을 지난달 3일 통과시킨 뒤 50여일 만의 속도전이다. 여당은 한 발 더 나가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3차 상법 개정안도 준비 중이다. 이 같은 릴레이 상법 개정이 기업 경영 활동을 급격히 위축할 수 있다는 우려에도 여당은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앞서 24일엔 하청 노조의 교섭 대상을 원청 기업으로 확대하고, 불법 쟁의 행위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의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도 통과시켰다. 법안 통과 전까지 “우려를 넘어 참담하다”고 반발한 경제 8단체는 “국회가 입법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균형 있는 입법에 힘써주길 바란다”며 무기력하게 물러섰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재명 정부는 초기 입법 방점을 ‘노동권’과 ‘주주 권리’에 찍었다”며 “노동권, 주권을 높이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지만, 그 방식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상법은 기업 지배 구조의, 노란봉투법은 제조업 노사 관계의 근간이 되는 법이다. 두 법안의 처리 과정에서 여당과 소통한 경제단체 대관 담당자는 “반기업 입법 드라이브는 이재명 정부 초기 자신감도 있지만, 윤석열 정부 시절 중점 법안마다 거부권(재의 요구권)에 가로막혔던 오기(傲氣)가 밑바탕에 깔렸다”며 “거부권으로 막혔던 법안은 무조건 속도전으로 밀어붙인다는 기조에 기가 눌렸다”고 말했다.
정부도 반기업 정책에 힘을 싣고 있다. 예산과 함께 경제정책을 돌리는 축인 세제가 확연한 증세 기조로 돌아섰다. 기획재정부가 최근 발표한 내년 세제개편안에 따르면 법인세 최고 세율을 24%에서 25%로 올린다. 주식 시장에서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대주주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 이상으로 강화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대기업 규제 정책을 실행할 ‘경제 검찰’ 공정거래위원회 수장으로 강성 진보 인사를 임명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앞세운 ‘실용적 시장주의’는 이념 대신 경제적 효율, 기업 자율을 중시하겠다는 의미다. 이 대통령은 “기업이 잘돼야 나라가 잘된다”, “경제의 핵심은 기업”이라고 누차 강조했다. 하지만 대통령 취임 석 달을 앞둔 당·정 행보의 결과는 친노조·반기업·증세다. 기업을 위한다는데, 정작 기업이 반발한다. 취지와 무관하게 자영업·소상공인과 저소득층을 어렵게 만들었던 소주성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소주성을 전면에 앞세워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제 시행,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부자 증세’ 등을 추진한 문재인 정부와 현 정부는 반기업 기조에선 다르지 않다”며 “이재명 정부는 대통령이 겉으로 ‘실용주의 친기업’을 앞세우고, 강성 여당이 포퓰리즘(인기 영합주의) 입법에 드라이브를 거는 식으로 진화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분석했다.
여야 정치 역학도 과거와 다르다. 여당은 한층 강성으로 바뀌었는데, 견제해야 할 야당은 무기력에 빠졌다. 경제는 수출·내수 동반 악화에다 중국과 경쟁 심화, 미국발(發) 관세 이슈로 복합 위기에 처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당의 포퓰리즘 입법 독주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사람은 대통령뿐이지만 의지가 없어 보인다. 중도층 지지가 약발을 다할 때까지 현재 경제정책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경제에서 후과(後果)가 커진다면 정책 추진의 동력을 잃을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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