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틀리스트가 운용 중인 투어 밴 내부. [사진 타이틀리스트]

지난 3월 초, 미국 플로리다 올랜도의 베이힐 리조트. PGA 투어 시그니처 이벤트인 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 대회장 한 귀퉁이에 대형 트럭들이 빽빽하게 들어섰다. 트럭은 모두 13대. 타이틀리스트, 캘러웨이, 테일러메이드, 핑 같은 메이저 용품사 트럭부터 샤프트 전문 회사, 심지어 골프 용품을 만들지 않는 나이키에 이르기까지 선수들의 장비와 옷, 신발 등을 책임지는 ‘움직이는 본부’가 그곳에 모여 있었다.

드라이버 헤드(캘러웨이 제품) 등 다양한 골프 용품을 갖춰 놓았다. [사진 캘러웨이]

이 트럭들의 이름은 ‘투어 밴(Tour Van)’. 선수들의 장비 창고이자 이동 피팅숍이다. 서랍엔 드라이버, 아이언, 웨지 헤드와 샤프트, 그립 등이 빼곡히 들어 있다. 내부는 레스토랑의 분주한 주방 같다. 작업대 위에는 첨단 피팅 장비와 선수별 스펙 및 선호도를 정리한 두툼한 가이드가 놓여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피터들이 그 자료를 보며 클럽을 조립한다. 웨지와 퍼터 작업 공간이 가장 넓다. 선수들이 그루브의 날카로움, 바운스 각도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어떤 선수는 로브 웨지를 2주마다 교체하고, 어떤 선수는 코스 컨디션이나 그린 스피드에 따라 퍼터를 바꾼다. 한켠에는 선수 전용 라커도 있다. 모자, 장갑 같은 소모품이 채워져 있고 선수들은 필요한 만큼 챙겨간다.

투어 밴은 매년 35~40개 대회를 따라다닌다. 대형 트럭이 가기 어려운 하와이 대회의 경우 최소 물량만 항공편으로 보내 관련 업무를 진행한다. 투어 밴의 활동 무대는 PGA 투어가 중심이지만, 메이저 대회 위주로 LPGA 투어에도 4~5차례, 아마추어 대회도 간혹 찾아간다. 대회장에 도착하는 건 일요일이다. 세팅을 마친 뒤 월요일부터 선수들을 맞는다. 화요일이 가장 분주하다. 수요일 오후가 되면 다음 대회 장소로 떠난다.

브랜드별로 운영 방식이 제각각이다. 선수 규모가 가장 큰 타이틀리스트는 미국 동부와 서부에 각각 한 대씩, 두 대의 투어 밴을 굴린다. 계약 선수가 적은 PXG나 윌슨도 트럭을 운영한다. 효율에 비해 비용이 큰 것 같지만, 경기장에 세워둔 것만으로 ‘움직이는 광고판’ 역할을 한다. 미즈노는 트럭 일부를 VIP 접대 공간으로 꾸며 비즈니스 파트너를 초청한다.

조 툴롱 등 전문가들이 맞춤형 골프채를 제조한다. [사진 캘러웨이]

가장 큰 트럭을 운용하는 용품사는 캘러웨이다. 길이 14m에 무게는 29톤이나 된다. 영화 트랜스포머 속 차량처럼 주차 후 확장이 가능하다. 폭은 5m로 넓어지고 2층으로 변신한다. 내부에 라운지 2곳과 컨퍼런스룸, 커피바와 스낵바까지 갖춰 선수들의 휴식 공간 역할도 한다. 캘러웨이 투어 밴을 총괄하는 조 툴롱 투어 디렉터는 “전시 효과가 뛰어나 다른 브랜드보다 눈에 잘 띈다”고 말했다.

모터스포츠 포뮬라1(F1) 피트가 ‘이동식 초정밀 공장’이라면, 골프의 투어 밴은 ‘선수들의 무기고’격이다. 툴롱은 “투어 밴이 보유한 로프트 측정 장비는 디지털로 1000분의 1도까지 측정할 수 있다”면서 “단 1m 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골프에서 정밀도는 곧 경쟁력”이라고 했다.

캘러웨이 트럭은 정밀 퍼팅 분석 시스템 ‘퀸틱’과 8㎞가 넘는 전기·데이터 케이블, 자체 보안 네트워크, 그리고 선수별 성과 분석 프로그램까지 갖춰 놓았다. F1 피트의 엔지니어들처럼 투어 밴 인력 또한 최고 수준의 기술자들이지만, 자부심만큼이나 업무 긴장도가 높다. 툴롱은 지난 2021년 마스터스 당시를 떠올리며 “필 미켈슨의 퍼터 로프트를 잘못 세팅했다. 미켈슨이 이상하다며 계속 조정을 요청해 만지다 보니 결국 퍼터 인서트에 홈이 생겼고 성적도 좋지 못했다. 그 일 이후로 잠을 못 이뤘다”면서 “다음 메이저대회인 PGA 챔피언십에서 새로 만들어 준 퍼터로 미켈슨이 우승한 뒤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고 털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