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감히 성공적 정상회담"…진짜 청구서가 남았다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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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진행된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간 첫 정상회담에 대해 대통령실은 “(양 정상이)친밀감을 느끼는 데 확실한 공감을 하고 끝났다. 감히 성공적인 정상회담”이라고 자평했다. (강유정 대변인)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 이후 멈춘 대미 정상외교를 다시 가동하고, 첫 대면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가 친밀감을 형성하는 등 상징적 의미에서 동맹의 공고함을 확인하는 게 목표였다면, 대통령실의 평가대로 이번 회담은 합격점을 받기에 충분하다. 우려했던 ‘트럼프발 돌발 사고’도 없었다.
하지만 현미경을 들이대면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정작 통상과 안보 분야 등에서 산적한 현안은 다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방명록 작성 때 쓴 만년필을 선물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강 대변인은 이를 “그조차도 이야기가 안 될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다”는 뜻으로 해석했지만, 정상회담이 끝난 지 하루가 지나서도 양국 간 합의 사항을 담은 결과물이 문서로 나오지 않는 건 오히려 그 여파일 수 있다.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공개적 이견 노출을 가까스로 피한 것”일 뿐(영국 BBC 방송) 청구서가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가시적인 합의물은 없고 이 대통령과 트럼프의 ‘말’만 존재하는 상황에서 일단 양측이 대화와 관여를 중시하는 대북 접근법에 공감한 건 정부가 성과로 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대통령은 “저의 관여로 남북관계가 잘 개선되기는 쉽지 않은 상태인데, 실제로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트럼프 대통령”이라고 치켜세웠고, 트럼프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겠다는 화답을 수차례 했다.
언론에 공개된 53분간의 발언 및 질의응답 과정에서 한·미 정상은 김정은의 이름만 13차례 언급할 정도로(영문본 기준) 큰 관심을 보였다. 정부가 미국의 지지를 바탕으로 대북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한 셈이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북한과 대화 재개를 위해선) 누군가 그 작업을 위한 단초를 열어야 하는데 현재 국면을 냉철히 보면 남북보다 미국에 조금 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을 상의드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미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트럼프는 오는 10월 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무역 회의”로 언급하면서도 “이를 위해 한국에 곧 가게 될 것”이라고 참석에 긍정적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APEC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는 계엄으로 흔들린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을 완전히 회복한다는 의미가 크다.
이 대통령이 국방비 증액을 공식화한 건 미국이 요구해온 ‘동맹의 현대화’에 대한 호응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핵심인 주한미군의 역할 및 규모 조정에 대해서는 구체적 논의 경과가 드러나지 않았다.
위 실장은 “우리가 더 많은 역할을 하고 연합방위능력을 강화하는 큰 방향에서는 의견의 일치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큰 방향’에서의 합의는 곧 세부적 사안에서는 차이가 존재한다는 뜻일 수 있다.
미국이 잠시 ‘안보 청구서’를 보류한 것이라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트럼프 2기 안보 정책의 윤곽은 조만간 공개될 것으로 보이는 미국 국가안보전략(NSS)과 국방전략서(NDS)를 통해 드러날 전망이다. 이를 앞두고 한·미가 정상급에서 동맹이 나아갈 방향과 방위 공약에 공감대를 이루고 세부 조율에 돌입해야 할 시점에 숙제를 미뤘다는 아쉬움도 제기된다.
이 대통령이 “한국은 과거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태도를 취한 게 사실이지만 이제 과거와 같은 태도를 취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고 밝힌 건 워싱턴 조야에 퍼진 ‘친중’ 우려를 불식하는 성과로 평가된다. 그러나 동시에 대중 외교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와 관련, 중국은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국에 미·중 간 “균형 외교”를 주문하는 등 견제에 나섰다. 이 대통령이 추후 이번에 밝힌 것과 결이 다른 메시지를 낸다면 외교적 일관성을 해치고 자칫 양측 모두로부터 신뢰를 잃을 수도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미정상회담을 마치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1500억 달러(약 209조원) 규모의 직접투자(FDI)에 나서기로 한 건 트럼프의 대규모 투자 요구를 상당 부분 충족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난달 통상 협상 타결 시 한국이 약속한 3500억 달러(약 488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 조성 방안과 집행 방식 등은 정상회담 뒤에도 확정되지 않았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이에 대해 “양국이 구속력 없는 양해각서(MOU) 형태로 운영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한국의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설계하겠다는 의도지만, 세부 사안에서 양국 간 접점을 찾을지는 미지수다.
김 실장은 “이를 위해 법적으로 필요한 부분을 실무적으로 논의하고 있다”라고도 말했다. 통상적으로 정상회담을 준비할 때는 사전에 실무진에서 현안 협상을 대부분 마무리하고 정상급에서는 이를 추인하거나 지도자만 할 수 있는 결단을 내려 마지막 이견을 해소하곤 한다. 그런데 정상회담 뒤 다시 실무 협의가 이뤄지는 건 문안 조율 등에서 진통을 겪고 있다는 방증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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