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미국은 현금, 한국은 신뢰 챙겼지만…'거친 거래' 안끝났다 [한…
-
5회 연결
본문
“이재명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인정 욕구를 예리하게 파악하며 효과적으로 대처했다.”(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수석부차관보)
“워싱턴 내에서 ‘셰셰(謝謝, 고맙다) 일화’ 같은 단편적 이미지밖에 없었던 이 대통령이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 의존)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고, ‘이재명의 성향’에 대한 의구심이 상당 부분 해소됐다.”(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난 25일(현지시간) 이 대통령과 트럼프 간 첫 정상회담에 대해 전문가들이 ‘합격점’을 줬다. 중앙일보가 지난 26~27일 한·미의 외교안보 및 통상 전문가 22명에게 평가를 요청한 결과 21명이 이번 회담 결과를 긍정적으로 본다는 평가를 내놨다. 1명만 평가를 유보했을 뿐 부정적으로 평가한 전문가는 없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방명록 작성 때 쓴 만년필을 선물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전문가들은 한·미 정상이 친밀감과 유대를 형성하는 한편 일각의 우려와 달리 ‘사고’ 없이 정상회담이 이뤄졌단 점을 높게 평가했다. 하지만 성공적 회담으로 보면서도 단서를 달거나 다가올 과제를 우려하는 전문가들이 많았다. 문서화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은 가운데 양 측의 득실을 정확히 따지기 어렵다는 한계 때문이다.
전경주 한국국방연구원(KIDA) 한반도안보연구실장은 "짧은 공동성명도 없었다는 건 일부 현안은 기본적인 방향성에 대해서도 합의가 어려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이 대통령이 사전에 여러 각도에서 매우 정교하게 준비한 회담"이라면서도 "정상회담의 '외양'이 '내용'을 압도한 것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미뤄둔 '동맹 현대화' 규정, 양날의 검
이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선제적으로 국방비 증액 의사를 밝히며 미 측이 요구해온 '동맹 현대화'에 호응했다. 하지만 정작 핵심인 전략적 유연성 적용, 즉 주한미군의 역할 및 규모 변경과 관련해 양국이 접점을 찾았는지 여부는 드러나지 않았다. 결국 숙제를 미뤄둔 모양새다.
이에 대해서는 "북핵 문제와 관련해 확장 억제 강화나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와 같이 한국에 비용 부담이 뒤따를 수 있는 사안이 구체적으로 논의되지 않아 부담을 덜었다"(이상규 KIDA 핵안보연구실장)는 평가와 "실무 선에서 풀지 못한 경제·국방 관련 민감한 사안을 정상회담에서 매듭지어 줘야 하는 데 그런 게 전혀 없었다"(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아쉬움이 동시에 나왔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주한미군 감축,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한·미동맹의 임무 확장과 같은 현안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정리되지 않았다"며 "향후 한·미 외교·국방장관 '2+2 회의' 등에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반도 평화와 북한문제 해결을 위한 트럼프의 확실한 지지를 이끌어 낸 점"(박인휘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도 성과로 꼽혔다. 윌리엄 추 허드슨연구소 연구원은 "이 대통령이 '페이스메이커'를 자임하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피스메이커'를 요청, 트럼프를 평화 중재의 주인공으로 부각한 게 주효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북한은 회담이 이튿날인 27일 조선중앙통신 논평을 통해 이 대통령이 정상회담 직후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설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언급한 걸 "허망한 망상"이라고 비난했다. "이재명이 '비핵화망상증'을 '유전병'으로 계속 달고 있다가는 한국뿐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이롭지 못하다"면서다. 이는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한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는 데 있어 현실적 난관이 여전하다는 방증일 수 있다.
트럼프는 "done"…마침표 못 찍은 통상
트럼프는 정상회담 뒤 한국과의 통상 협상에 대해 "난 우리가 협상을 끝냈다(done)고 생각한다"며 "(한국은) 몇 가지 문제가 있었지만, 우리는 우리 입장을 고수했다"고 했다. 지난달 합의에서 한국이 약속한 3500억 달러의 투자처와 수익 배분 방식을 미국이 결정한다는 기존의 주장을 다시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국 기업이 1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직접투자(FDI)를 추가로 발표한 것 외에 통상 분야에서 뚜렷한 결과물은 보이지 않는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추가 투자는 3500억 달러도 충분치 않다는 미국의 판단에 따른 것"이라며 "한·미 간 주요 경제 현안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고 분석했다.
향후 실무 협의에서 더 큰 난관에 직면할 거란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웬디 커틀러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ASPI) 부소장은 "3500억 달러 대미 투자의 기금 구조 및 수익 배분 방식에 심각한 이견이 존재하고 농·축산물 시장 개방 압력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며 "해결되지 못한 난제들은 '악마의 디테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손열 동아시아연구원(EAI) 원장은 "지난 2월 미·일 정상회담 때도 찬사 속에 회담을 마무리했지만 향후 거친 무역 협상이 이어졌다"며 "한·미 정상회담 이후에도 무역과 투자 등을 둘러싸고 지난한 협상이 뒤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회담으로 미국은 추가 투자 등 '현금'을, 한국은 미국의 신뢰라는 '어음'을 챙겼다는 평가도 나온다.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조선업·원자력·첨단기술 등 경제 분야에서 미국을 도울 수 있는 필수불가결한 동맹으로서 한국의 위상을 강조했다"고 평가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도 "관세 협상의 불확실성을 일단 해소하고 제조업 협력의 큰 그림을 구체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반면 농축산, 디지털 등 민감한 사안은 실무 협의로 넘기면서 미국이 한국의 상황을 일정 부분 배려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마치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친미적 이재명' 이미지 획득의 득과 실
이 대통령은 CSIS 연설에서 "한국은 과거 안미경중 태도를 취한 게 사실이지만 이제 과거와 같은 태도를 취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고 말했다. '안미경중의 종언'을 대통령이 직접 고한 셈이다.
김정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에서 제기되는 친중 이미지를 불식하는 데는 선방을 넘어 나름의 성공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정상 간 합의문이 아닌 싱크탱크 연설로 이런 메시지를 낸 것도 전략적이었다"고 말했다.
"이재명 정부가 '친미' 행보를 걷겠다는 것을 분명히 한 건 미국 입장에선 성과"(김재천 교수)지만, 이는 대중 외교에는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김정섭 위원은 "중국의 중요성을 다소 낮게 평가하는 듯한 이 대통령의 언급은 향후 한·중 관계 발전과 관리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박경민 기자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