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남탓 정치하기 딱 좋아졌다…강성 지지층이 만든 당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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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파 여야 당대표, 정청래 vs 장동혁

“대한민국에는 야당이 없고 극우 세력만 득세하는 상황.”(27일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민주당의 국회발 내란과 싸워 승리하겠다.” (26일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비집고 들어갈 한 치의 틈도 보이지 않는 여야의 강(强) 대 강(强) 국면이 지속하고 있다. 8월 나란히 열린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전당대회에서 강경파 인사들이 새 대표로 선출되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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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현민 기자

양측의 대립은 어느 정도 예상되긴 했지만, 연일 두 대표가 여야 난타전을 이끄는 모습은 여의도에서 흔한 풍경은 아니다. 27~28일 ‘설전’이 대표적이다. 정 대표는 27일 페이스북에 ‘국민의힘 대표에게 묻는다’란 제목의 글을 올리고 “국민의힘에서 ‘윤어게인’을 주장하는 세력이 지도부에 뽑혔다”며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등에 대한 입장을 물었고, 장 대표는 28일 “빵 터졌다. 왜곡과 망상으로 점철된 정치 공세이니 답변할 필요 없다”고 일축했다. 이렇게 여야 대표가 최전방 공격수로 나서다 보니 물밑 대화나 협상은 언감생심이다.

그렇다면 양당은 왜 이러고, 또 얼마나 이런 ‘정치 없는 정치판’이 이어질까.

정청래 “개혁, 혁명보다 더 어려워” 결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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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DJ 추모식에 참석한 정청래 민주당 대표(왼쪽)와 송언석 국민의힘 비대위장. [연합뉴스]

두 대표가 이끄는 강경 노선에는 이들이 놓인 권력(지지) 구조도 적잖게 작용하고 있다.

이번에 예상 밖 승리를 거둔 장동혁 대표의 경우를 보자.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승리의 대가=정치적 노선 한계’라고 분석했다. 그는 “유력 대권후보도 아닌 장 대표가 승리한 것은 강성 노선을 걸어왔고 그 힘으로 당선된 것”이라며 “자력으로 승리한 것이 아니라 친윤계와 언더찐윤, 전한길 등 극우계열의 도움으로 당선됐기 때문에 ‘강경 노선’ 틀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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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의 의견도 비슷했다. 그는 “장 대표는 단기간에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효능감을 맛보게 해줘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있다”며 “장 대표가 공언했던 세 가지(우파시민과의 연대, 이재명 정부 끌어내리기, ‘찬탄 세력’ 축출) 중에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첫 번째(우파시민과 연대)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장 대표의 구조적 한계가 극한 대여 투쟁 외의 옵션을 선택하기 어렵게 만드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대승을 거둔 정 대표도 ‘정치적 일관성’ 면에서 보폭 넓은 행보를 하기가 어려운 건 매한가지다. 민주당이 야당이던 지난해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으로 소수여당인 국민의힘의 반대를 무력화시키고 주요 쟁점법안을 강행처리하는 모습으로 강성 지지층을 사로잡았다. 그는 전당대회 과정에서도 ‘위헌 정당해산 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사이다’로 당심을 잡았고, 친명계가 선호했다는 박찬대 전 원내대표를 더블스코어에 가까운 차이로 제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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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 대표는 여야의 극한 대치 과정에서 강경 이미지로 성장한 정치인인데다 당 지지층도 이를 독려하는 분위기가 강한 만큼 굳이 이 국면을 수습하기 보다는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민주당 관계자도 “그동안 강성 지지층에 정치적 효능감을 강조해 온 정 대표 입장에서 방향키를 바꿀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로 ‘손해 볼 것 없다’는 계산이 가능한 것은 정치 실종과 강경 대치가 자랄 수 있는 토양 덕분이다. 여당도 야당도 ‘남 탓’으로 돌리며 지지층을 확보하기 좋은 환경이라는 것이다.

본래 야당과의 협치 불가를 선언하는 것은 여권에 정치적 부담이 되곤 했다. 윤석열 정부도 야당의 국무위원 줄탄핵이라는 초강수에도 불구하고 ‘협치에 소홀했다’는 비판에 발이 묶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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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 정치평론가

하지만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지금의 야당은 ‘반탄·극우’로 몰아붙일 공격 소재가 많기 때문에 여당과 대통령 입장에선 좋은 그림이 만들어졌다”며 “굳이 협치 등에 전력투구할 필요성이 낮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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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병 정치평론가

반면 야당도 핑곗거리가 없지 않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국민의힘도 ‘약자’인 상황을 내세우며 협치가 안 되는 걸 여당 탓으로 돌리면 된다”며 “여야 강경 세력은 더 똘똘 뭉치고, 강 대 강 대치를 강화하는 적대적 공생관계를 지속해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그는 “여야 간극이 점차 커질수록 여야 대표에게만 유리한 구조가 될 뿐, 그 사이에 있는 국민들의 정치 피로감과 혐오는 계속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적대적 공존은 28~29일 정기국회 전략 마련을 위한 여야 의원연찬회에서도 완연했다. 정 대표는 29일 연찬회 후 결의문을 통해 “혁명보다 더 어려운 게 개혁”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12·3 내란을 완전히 끝장내겠다’는 걸 주요 목표로 내걸었다. 장 대표도 연일 “지금 우리 앞에는 탄압과 억압이 있다. 이재명 정권의 국가 허물기와 실정을 막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 “열심히 싸운 분만 공천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반드시 만들겠다”고 했다.

이런 구도를 단기적으로 이용할 순 있어도, 장기간 방치할 경우엔 결국 적잖은 내상을 입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의힘의 경우엔 정치력 약화와 소수당 한계 때문에 극우세력과의 연대에 점점 의존하게 될 수 있다는 분석과 함께 민주당에 내준 중도층을 회복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동시에 나왔다.

윤태곤 실장은 “강 대 강으로 ‘정면승부’만 한다면 정권과 다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의석수가 적은 국민의힘이 뭔가를 보여주기 위해 거리로 나가거나 투쟁에만 매달리면서 ‘아스팔트 우파’ 이미지만 강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야당으로서 ‘노란봉투법’ 등 정책 투쟁 여지가 충분한데 활용하지 못한다. 보수적 가치가 아니라 강성 우파에 호소만 하니 지지기반이 계속 축소되고 있다”고 했다.

장동혁, 연찬회서 “열심히 싸운 분만 공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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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오른쪽)가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과 만나는 모습. [연합뉴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어게인 2018’을 경고했다. “이대로 가면 국민의힘은 다음 지방선거에서 수도권 지지기반을 완전히 상실하고, 영남 자민련처럼 몰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은 탄핵 후 1년 뒤 치러진 2018년 지방선거에서 대구·경북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광역단체장을 내주는 역대 보수정당 최악의 참패를 경험한 적 있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강 대 강 구도가 무조건 여권에 좋은 게임인 건 아니라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결국 국정을 책임진 건 여권이어서다. 아무리 강성 당원들의 입김이 세더라도 대통령은 중도층 여론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임기말까지 40% 안팎의 지지율을 유지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정권재창출에 실패한 것도 중도층 이탈로 설명되곤 한다. 또 여권으로선 집권 기간이 길어질수록 지지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이를 방어하기 위해 강성 지지층에 집중하면 중도층과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딜레마도 있다.

현재로선 당은 지지층, 대통령은 때론 지지층 때론 중도층을 바라보는 양상이다. 노란봉투법·상법개정안이 당과 대통령이 함께한 것이라면, 검찰청 폐지나 주식 배당소득 분리과세 등은 ‘강경한 민주당 대 온건한 정부’란 후자의 모습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순방 출국길 기내 간담회에서 “여당 대표인 정 대표의 입장과 대통령의 입장은 다르다. 당연히 대화해야 한다”고 언급한 일도 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민주당의 브레이크 없는 독주 체제가 심해지면 자살골을 넣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현재 민주당에서 추진하는 방송법, 검찰개혁법 등은 민주당의 정체성으로 봤을 때는 완벽해 보이겠지만 극단으로 치닫는 모습도 보인다”며 “당의 강경 노선에 대통령실도 초기엔 제동을 걸다 지금은 결국 용인하는 것 같은데 결국 결과는 이 대통령이 떠안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2주 연속 하락하면서 한때 56%(22일)까지 내려갔다가 반등, 29일 자 발표에선 59%를 기록했다. 그렇더라도 결국 이 대통령이 40%대 혹은 30%대로 내려가는 순간이 올 텐데, 이 대통령이 지금처럼 사안별 관리할 수 있을까.

이재묵 교수는 “지지율이 빠지면, 이 대통령으로서는 정권과 국정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 전통적 지지층을 묶어두는 유혹을 느끼게 될 것”이라면서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실패를 반면교사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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