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中, 70주년땐 '친미반일'…확 바뀐 80주년 전승절 감상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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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2015년 9월 3일 한국 육군 대표 자격으로 중국의 전승절 7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했다. 중국은 1949년 10월 1일 마오쩌둥(毛澤東)이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을 공식 선포한 국경절을 기념해 열병식을 해왔지만, 전승절을 기념하는 열병식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참석에 대해 정부는 중국과의 관계 강화와 한·중 간 공통된 항일의 역사적 의미를 내세웠다. 반면, 박 전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행사 참석이 미국을 포함한 서방 국가들의 우려를 불러온 것도 사실이다. 일본 언론에서는 주요 서방 국가 정상들이 불참하는 가운데 박 전 대통령만 참가하는 것은 돌출 행동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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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2015년 9월 3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열린 ‘ 중국 인민 항일 전쟁 및 세계반파시스트전쟁 승리 기념일(전승절)’ 7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인민해방군의 열병식을 지켜보고 있다. 오른쪽부터 장쩌민 전 국가주석, 시진핑 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박 전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우리가 줄여서 말하는 전승절의 중국 정부 공식 명칭은 ‘중국 인민 항일 전쟁 및 세계반파시스트전쟁 승리 기념일’이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70주년 기념식 연설에서 중화민국과 국민당에 대한 설명이나 언급 없이 중국 공산당이 14년 동안 역사적으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오랜 기간 반파시스트 전쟁 즉 항일전쟁을 주도했다고 했다. 1931년 일본 관동군이 시작한 만주사변을 이 전쟁의 시작점으로 삼은 것이다.

당시 중국은 전승절 70주년 행사의 성공을 위해 흥미 있는 노력을 많이 한 것으로 기억한다. 행사 기간 중 베이징(北京)의 맑은 하늘을 유지하려고 인근 공장의 가동을 멈추게 했고, 베이징 외부 차량의 출입을 통제하기도 했다. 이런 통제 때문에 한때 베이징 시내에 신선한 채소와 우유 등이 부족했다고 당시 베이징 주재원들이 전했다. 수개월 동안 전승절 열병식 연습에 참여했던 인민해방군의 체중이 줄어 군복이 커지자, 행사 한 달을 남기고 새롭게 군복을 제공하기도 했다. 전승절 행사 당일 한국군 대표단을 안내했던 인민해방군 중고(중령)는 자신이 군에 복무하면서 버스를 타고 자금성을 주차장으로 사용하는 경험은 처음이라고 했다. 중국이 이 행사에 많은 공들 들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더 흥미를 끌었던 일이 있었다. 행사 당일 아침 중국의 한 관영 방송에서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공식 참전하기 전 중일 전쟁 때 중화민국 공군을 지원했던 미 의용군 부대 ‘비호대(飛虎隊·Flying Tiger)’에 대한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방송에선 비호대 요원의 몇몇 후손 들과 인터뷰했고, 자신들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활약을 소개했다. 일본과 14년간 전쟁을 벌였던 중국이 미국, 세계와 함께 했다는 메시지를 내보려는 의도에서였다.

전승절 당일 저녁 인민대회당에선 축하 공연(뮤지컬)이 있었다. 1937년 난징(南京) 대학살 때 제국주의 일본군의 잔혹한 폭력 장면 영상도 포함됐다.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하고, 강한 힘만이 굴욕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고 중국을 지킬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지금부터 10년 전 미·중 관계는 협력과 경쟁의 혼재된 모습을 보였다. 시진핑 주석은 2015년 9월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초청으로 미국을 국빈으로 방문했고, 양국은 기후변화·사이버 범죄 대응·우발 충돌 방지 등을 위한 군사 소통 확대 등에서 협력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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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중국 전승절 70주년 브로셔. 필자 제공

반면, 경제적으로는 미국이 중국을 제외하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타결해 아시아에서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견제하려 했다. 중국은 자국 주도의 역내포괄적동반자협정(RCEP)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통해 자국 중심의 영향력 확대를 시도했다.

3일은 중국의 전승절 80주년이 되는 날이다. 북한의 김정은과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참석한다고 언론이 시끄럽다. 1959년 중국 국경절 10주년 기념 열병식에 김일성과 니키타 루쇼프가 참석한 이후 3국 정상이 모이는 건 66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미국은 6∙25전쟁 후 한·미동맹, 미·일동맹, 대만과의 전략적 관계, 미·필(필리핀)동맹 관계를 유지하면서 동북아시아와 동중국해의 안보 질서를 유지해 왔다. 그런데 이 구조에 큰 변화가 생겼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당시 중국의 1인당 GDP가 100달러도 채 안 됐으나, 2024년 기준 1만 3000달러를 넘었다. 과거 제3세계의 가난한 국가 중국은 이제 능력과 의지 모두를 가진 미국의 유일한 경쟁자가 됐다. 여기에 더해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와 북한의 우크라이나 참전을 통한 북·러 관계 강화도 지역 안보 질서의 변화다. 우리는 3일 전승 80주년 기념식을 통해, 이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확인하게 될 것이다.

미국은 자국 위상을 위협하는 2등 국가 중국을 허용하지 않는다. 동아시아 지역의 진영과 구조, 질서가 흔들리는 것에 대해 민감하다. 미국의 불안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중국의 대만침공 저지가 미국의 최우선순위라는 잠정 국방 지침, 우리의 국방예산 증액 요구, 중국을 염두에 둔 능력 중심의 한·미동맹 현대화, 중국은 임박한 위협이라는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의 연설 등 계속 진행형이다.

중국은 1일 톈진(天津)에서 러시아·인도·이란 등 10개국이 참여하는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를 마쳤다. 2일은 중국과 러시아의 정상회담이 열린다. 이번 80주년 전승절 기념행사 전 세(勢) 결집과 과시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미·중 전략경쟁과 서방의 대러 경제 제재로 중·러의 이해관계는 일치하게 됐다. 이는 양국 반서방 공조를 견인하고 있다. 일부에서 언급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역(逆)-키신저 전략(러시아와 관계 강화로 중국을 견제)은 미국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의의 성과 부재로 힘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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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 환영식에서 시진핑 중국 주석(오른쪽)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운데)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EPA=연합

중국은 이재명 정부의 출범과 함께 대통령의 전승절 행사 참석 등 한·중 관계 개선에 적지 않은 기대를 한 것 같다. 그러나 현재까지 정부에서 보인 모습은 중국의 기대와는 달랐다. 정부도 미·중 간의 치열한 경쟁과 세 결집의 흐름에서 가능한 선택지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3일 전승절 기념식에는 10년 전의 박근혜 대통령 대신 김정은이 자리한다. 북·중·러 3국 정상회담이 가능할지, 최근 소원해진 북·중 관계 변화의 조짐을 알리는 정상회담이 성사될지, 여러모로 주목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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