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법정물이지만, 주제는 사랑"...시청률 9% 돌파한 ‘에스콰이어’ 차별화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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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에스콰이어'를 연출한 김재홍 PD를 8월 2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카페 어로드에서 만났다. 권혁재 기자
‘티백과 사랑의 강도는 뜨거운 물에 담가봐야 한다’, ‘사랑도 심신미약’, ‘무지갯빛 사랑’.
로맨스 드라마의 제목 같지만, 사실은 JTBC의 법정 드라마 ‘에스콰이어: 변호사를 꿈꾸는 변호사들’(이하 에스콰이어)의 에피소드들이다. 차갑고 냉정한 법정을 배경으로 하지만, 이 작품이 탐구하는 건 인간의 가장 뜨거운 감정인 ‘사랑’이다. 연인과의 사랑, 부부간의 사랑, 부모와 자식의 사랑, 그리고 사랑의 탈을 쓴 폭력까지 다양한 사랑이 재판대에 오른다.
JTBC ‘에스콰이어’ 김재홍PD 인터뷰
이 신선한 접근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불렀다. ‘에스콰이어’는 시청률 3.7%로 출발해 10회(8월 31일 방송)에서 최고 9.1%까지 치솟았고, 분당 최고 시청률은 수도권 기준 11%를 돌파했다(닐슨코리아 기준). 9월 7일 12부로 종영을 앞뒀다.
지난달 2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 카페에서 만난 연출자 김재홍 PD(34)는 “주인공인 율림 변호사들 윤석훈(이진욱), 강효민(정채연), 이진우(이학주), 허민정(전혜빈)은 에피소드와는 별개로 각자 방식으로 사랑이란 미션을 받는다. 결국 각자가 생각하는 사랑의 모양인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드라마”라고 설명했다.

극중 법무법인 율림 변호사들. 왼쪽부터 윤석훈(이진욱), 강효민(정채연), 허민정(전혜빈), 이진우(이학주). 사진 SLL, 비에이엔터테인먼트, 스튜디오S
김 PD는 이 사랑 이야기를 극적으로 연출하기 위해 법원과 로펌이란 공간에 상상력을 더했다. 로비스트를 주인공으로 한 미국 영화 ‘미스 슬로운’을 보며 영감을 받았고, 검사·변호사·판사의 좌석 배치를 바꾸는 연출적 허용도 감행했다. 상대 로펌인 리앤서에서 같은 변호사가 계속 등장하는 것도 극적 장치 중 하나다.
그는 “법정 공간은 남양주의 대성당을 모티브로 구상했다. 그 안에서 인간의 여러 감정들이 드러나는데 결국은 희망으로 통하는 것 같아, 성당의 신성한 분위기와 어울릴 것 같았다”고 말했다.
현직 국제변호사인 박미현 작가도 동의한 부분이다. 드라마 광팬이자, 시나리오와 같은 글쓰기를 오랜 취미로 삼았던 박 작가는 드라마적 허용을 폭넓게 열어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고자 신경 썼다. 김 PD는 “첫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완성도 높은 대본이었다. 조연출 때 법정물 두 작품을 경험하고 절대 법정물을 연출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던 나를 설득시킨 작품”이라고 말했다.
박 작가는 중앙일보에 작품의 출발점이 ‘사랑’인 이유가 있다며 이렇게 서면으로 전해왔다. “사랑은 고대 작품에서도 등장하는 인류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입니다. 뜨거운 감정이 가장 차가운 시스템 위에 놓일 때 드러날 선명한 진폭을 기대했습니다. 변호사라는 이유만으로 법정물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사랑을 가장 입체적으로 탐구할 수 있는 공간이 법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김재홍 PD는 "'에스콰이어'는 보는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다양하게 나올 수 있는 드라마"라고 소개했다. 권혁재 기자
김 PD가 느낀 ‘에스콰이어’만의 독특한 지점은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데 있다. 선과 악이 뚜렷하고 변호사는 보통 악한 자의 편에 서서 새로운 변호를 펼친다는 방식으로 재미를 주는 기존 법정물과는 다르다. 시청자의 관점에 따라 선악이 달리 보일 수 있다. 실제로 전 남자친구의 데이트 폭력으로 상처를 입은 모델 사건이 방영됐을 때는, 온라인에서 “변호사가 쓴 대본이 맞느냐”는 댓글까지 나오는 등 뜨거운 논란을 불러왔다. 김 PD는 “대본을 봤을 때부터 각양각색의 토론이 벌어지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성공이라는 마음으로 연출했다”며 이런 반응들에 기뻐했다.
또 이 작품엔 윤석훈과 강효민이 차를 마시는 같은 장면이 반복된다. 회차가 진행될수록 티백도 진하게 우러나고, 주인공들의 마음도 깊어진다. 그렇지만 흔한 러브라인은 아니다. 김 PD는 “선후배 사이의 존경, 동경, 기특함 같은 다양한 감정으로 해석될 수 있다. 전략적으로 사랑이라고 단정을 내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이진욱에겐 멜로 눈빛을 자제하라고 요청했고, 정채연에겐 사회초년생이니 국어책 읽듯 어색하게 변호사 흉내를 내다가 점점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말했다”고 부연했다.

윤석훈(이진욱)과 강효민(정채연)은 각자 로펌에서 바쁜 하루를 보낸 후 차를 마시며 마음을 공유하는 시간을 갖는다. 사진 SLL, 비에이엔터테인먼트, 스튜디오S
악인을 정의하는 방식 또한 색다르다. 윤석훈은 사내 정치질에 열심인 동료 변호사인 고태섭(박정표), 김율성(홍서준), 최희철(권승우), 홍도윤(박형수)을 싫어한다. “무능한 놈들이 끼리끼리 모여 부끄럽지도 않냐”며 비판한다. 같은 이유로 주어지지 않은 일까지 열심히 하는 강효민을 좋게 본다. ‘프로 세계에서 일을 못하면 나쁜 사람’이라는 냉정한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김 PD는 “악인을 무너뜨리고 사건을 해결하는 전형적 카타르시스 대신, 현실과 맞닿은 고민을 던지는 작품이라 좋았다. 소송에서의 승패가 중요한 드라마가 아니라, 소송 끝에 각자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하는 드라마”라며 “시청자 반응이 좋다면 시즌2도 열어두고 싶다”고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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