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신형 ICBM 흔들며 국경 넘은 김정은 도박…미·중·러 다 겨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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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일 미사일 총국 산하 화학재료종합연구원 연구소를 방문해 탄소섬유 복합재료 생산 공정과 대출력 미사일 발동기 생산 실태를 파악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이 전승절 행사 참석을 위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중 직전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20형' 개발을 공식화했다. 다자외교 무대에 나설 정도로 대내외적 자신감을 키운 김정은이 데뷔전을 앞두고 전술핵과 전략핵 개발 능력을 잇따라 과시한 건 미국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에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美 노린 신형 ICBM 개발 공식화
조선중앙통신은 2일 김정은이 전날 미사일총국 산하 화학재료종합연구원 산하 연구소를 방문해 "탄소섬유복합재료를 이용한 대출력 고체 발동기(엔진)를 제작하고 지난 2년간 8차례에 걸치는 지상분출 시험을 통하여 발동기의 동작 믿음성과 정확성을 검증한 시험결과에 대하여 요해(파악)"했다며 "(해당 엔진이) '화성포-19'형 계열들과 다음 세대 ICBM '화성포-20'형에 이용될 계획"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이미 미 본토 전역을 사정권에 넣는 1만5000㎞급 ICBM 개발을 완성했다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새삼 신형 ICBM을 또 꺼낸 건 미국을 향한 직접적 메시지로 풀이된다.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화에는 관심이 없다는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하며, 미국의 태도 변화를 유도하려는 셈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을 향해 핵무기 고도화 의지와 돌이키기 어려운 핵보유국의 위상을 과시한 것"이라며 "향후 9차 당대회 이후에도 전술핵미사일 대량생산, ICBM 능력 업그레이드 및 생산증대를 지속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31일 새로 조업한 중요 군수기업소 미사일 종합생산공정을 돌아보면서 종합적인 국가미사일 생산능력 조성실태와 전망에 대해 요해(파악)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출발 직전 中 보란듯 핵능력 강조
동시에 이는 '중국 역시 북한에 비핵화를 요구하지 말라'는 뜻으로도 읽힌다. 앞서 지난해 4월 서울에서 열린 한·일·중 정상회의 공동선언에 '한반도 비핵화'가 언급되자 북한은 위성을 발사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국정원은 김정은이 중국으로부터 "푸틴과 동급의 의전과 경호를 받을 것"(2일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이라고 내다봤는데, 김정은은 이를 향후 핵 관련 협상에서 중국 역시 북한과 같은 편에 서 있다는 이미지 조성에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은 "김정은은 이번 방중을 한반도 정세를 주도할 최적의 카드로 판단하고 있다. 북·중 관계 복원으로 대외 운신의 폭을 확대하고, 북·미 대화 등을 염두에 두고 중국의 지지를 확보하면서 미국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려 한다"고 분석했다.

노동신문은 2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중국 인민항일전쟁 및 세계반파쑈전쟁승리(전승절) 8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1일 전용열차로 출발해 2일 새벽 국경을 통과했다고 보도했다. 뉴스1
이와 관련, 김정은은 지난달 31일에는 함경남도 함흥 인근에 위치한 것으로 추정되는 새 전술핵 미사일 공장을 시찰했다. 이틀에 걸쳐 전술핵 미사일과 전략핵 무기인 ICBM 카드를 연이어 꺼낸 것이다. 이번 열병식에는 북한을 포함해 25개국 정상이 참여하는데, 이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핵능력 강조 행보를 공개한 건 이들과 함께 천안함 성루에 올라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려는 의도로 읽힌다. 김정은은 1일 늦은 저녁에야 평양에서 출발했는데, 미사일 연구소 방문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늦은 시각 출발을 택한 셈이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정은이 이번 열병식 행사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한동안 소원했던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계기로 활용하는 모습"이라며 "중국의 경제 지원을 끌어내는 동시에 중국을 포함한 열병식 참석 국가들로부터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는 듯한 이미지를 연출하려는 계산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19일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에 서명한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EPA, 연합뉴스
'탄소 소재' 부각, 러 파병 반대급부 압박
북한이 지난해 10월 '화성-19형'을 공개하면서 "최종 완결판 ICBM"이라고 주장했으면서 또 '화성-20형'의 개발을 시사한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ICBM과 관련해 미진한 기술이 남아있다는 자인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는 김정은이 이날 미사일 사거리와 탄두 중량을 늘리는 기술과 연관된 핵심 소재인 탄소섬유복합재료를 강조한 것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북한이 ICBM 개발을 완성하려면 대기권 재진입 기술과 다탄두(MIRV)·후추진체(PBV) 기술 등이 필요하다. 특히 분리된 다탄두의 자세를 제어하고 유도하는 PBV 기술은 ICBM 개발의 마지막 단계로 꼽히는 높은 수준의 기술이다. 자체적인 기술 역량이 부족한 북한이 파병을 지렛대로 첨단 기술과 부품·소재를 모두 보유한 러시아 측에 지원을 독촉한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10월 노동당 창건 80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대내외적 성과가 급한 것도 일정 부분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고체 연료 기반 ICBM 기술은 국방력 강화 5개년 계획의 핵심 과제인 군사정찰위성 발사체와도 밀접하게 연관된 기술"이라며 "김정은 입장에선 주요 정치 행사를 앞두고 관련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측면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원은 "김정은의 이번 방중은 북·중·러 간 연대를 과시하기 위한 파격적 행보로, 향후 과감한 대내외적 조치에 나설 소지가 있다. 전향적인 새 국가발전 노선을 제시하거나 러시아로부터 반대급부 수확에 나서며 방러 카드를 저울질 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다만 "단시일 내 남북관계 개선에 호응할 가능성은 작다고 본다"며 전승절 행사에 참석하는 우원식 국회의장과 의미 있는 만남이 이뤄질 가능성은 부정적으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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