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공책에 몰래 기술 베껴"…獨에 잠수함 배우던 韓, 이젠 수주 경쟁 [K조선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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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독일에서 잠수함 기술을 배워오던 한국이, 이제는 같은 무대에서 독일 조선소와 당당히 경쟁하는 위치에 섰다. 최근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이 ‘원팀’으로 참여한 캐나다 초계 잠수함 사업(CPSP)에서 한국 기업들이 독일 TKMS와 함께 최종 결선 후보에 선정되자 한국의 해양방산 역량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CPSP는 2030년대 중반 퇴역 예정인 캐나다 해군의 빅토리아급 잠수함(4척)을 대체하기 위한 것으로, 최대 12척의 디젤-배터리 추진 잠수함을 새로 도입하는 것이 핵심이다. 도입 계약만 약 20조원, 여기에 정비·유지·보수(MRO) 비용까지 합산하면 전체 규모는 약 60조원에 이른다. TKMS를 비롯해 프랑스 나발그룹, 스페인 나반티아 등 유럽 조선소들이 입찰에 참여했으나 결선 후보엔 한국과 독일 업체들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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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영 디자이너

한국은 자력으로 잠수함을 건조할 수 없는 국가였다. 1991년 독일 TKMS로부터 ‘장보고-I’급 잠수함 3척을 도입하며 잠수함을 처음 보유했다. 1번함은 독일에서 건조하고, 이후에는 독일 설계를 바탕으로 한국에서 건조했다. 당시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은 잠수함을 구입하는 조건으로 직무교육 받으러 간 직원들을 통해 어깨 너머로 조립 기술을 배워왔다. 독일에 파견 갔던 정한구 한화오션 기원(생산직 최고감독자)은 “독일 TKMS가 기술을 그냥 알려줄 리 없었다”며 “동료들과 역할을 나눠 기술 정보를 수집했고, 밤에는 숙소 침대 밑에 숨어 기술일지를 정리했다”라고 말했다.

그랬던 한국이 이제 잠수함 수출국으로 도약했다. 2011년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을 통해 인도네시아에 장보고-I급(독일 209형 기반) 잠수함 3척을 수출하며 잠수함 수출국으로서의 첫 발을 내디뎠다. 이후 2019년에는 같은 기종 3척을 추가로 수주하며, 총 6척(약 20억달러)을 수출했다. 그리고 마침내 2021년, 한국이 설계부터 건조까지 독자적으로 해낸 3000t급 잠수함(장보고-Ⅲ) ‘도산안창호함’이 취역했다.

이번에 캐나다에 제안한 ‘장보고-III 배치-II’급 잠수함은 공기불요추진(AIP) 시스템을 적용해 21일 이상 수중 작전이 가능하며, 최대 항속거리 7000해리(약 1만2900㎞)로 캐나다 해군이 요구하는 북극해 장기 작전 능력도 충족한다. 리튬이온 배터리 기술을 적용해 기존 잠수함 대비 에너지 효율성과 작전 지속성이 크게 향상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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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오션이 최대 60조원 규모의 캐나다 잠수함 사업(CPSP)에서 해외유수 방산업체들을 제치고 2배수로 압축한 최종 결선 그룹에 이름을 올렸다. 캐나다 해군은 지난 1998년 영국 해군으로부터 도입해 보유 중인 2400톤 빅토리아급 잠수함 4척을 대체하기 위해 잠수함 조달 사업을 추진 중이다. 한화오션이 건조한 장보고 III Batch-2 잠수함. 사진 한화오션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공기불요추진장치(AIP) 기반 214급 잠수함 설계 및 건조 경험을 바탕으로, 기술 자문과 핵심 엔진 시스템 협력을 맡아 프로젝트의 기술 완성도를 높이겠다”라고 말했다.

방산업계는 캐나다 해군 입찰 최종 후보에 든 이력이 폴란드,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잠수함 도입을 검토 중인 국가에 진출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 국가는 모두 전력 현대화와 해양 방어력 강화를 추진 중이다. 한국형 잠수함의 기술력과 생산 능력이 주목받는 가운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 사이에서도 한국 함정에 대한 신뢰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채우석 한국방위산업학회 이사장은 “30년 전 기술을 전수받던 한국이 이제는 글로벌 시장에서 독일과 대등하게 경쟁하고 있다”며 “잠수함은 단순한 전투 플랫폼이 아니라 종합 해양 기술의 결정체인 만큼, 이번 수주전 결과는 우리 산업의 위상과 기술 주권을 가늠하는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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