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더버터] "시와 기부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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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기부자들   나태주 시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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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인과 후원아동 네마 니코데무. 나 시인은 2018년부터 아동결연후원을 이어왔다. [사진 월드비전]

여든의 시인은 인천에서 꼬박 하루가 걸리는 탄자니아행 비행길에 올랐다. 에티오피아 경유만 8시간을 해야 하는 긴 비행이었다. 지난달 10일(현지시간) 저녁 6시, 나태주(80) 시인은 마침내 킬리만자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나 시인은 2018년부터 탄자니아 아루샤주 은다바시 지역에 사는 소녀 네마 니코데무(15)를 후원해 왔다. 이번 여행은 아이를 직접 만나기 위해 준비한 일정이었다. 가족들은 고령에 긴 여행은 무리라며 만류했지만, 나 시인은 끝내 짐을 쌌다.

그는 월드비전 은다바시 지역개발사업장(AP)에서 니코데무와 그의 엄마, 세 살짜리 남동생을 만났다. 소녀는 처음 만난 나 시인을 와락 끌어안았다. “오랫동안 저를 후원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후원자님 모습을 매번 상상하면서도 직접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오늘 뵙게 돼서 기뻐요.”

7년 만에 만난 아이

나 시인과 니코데무는 13일 하루를 함께 보냈다. 편지로는 나누기 어려웠던 이야기를 주고받고, 함께 팔찌를 만들어 나눠 갖기도 했다. 헤어질 때는 못내 아쉬워 눈물을 닦았다. 일정을 마친 날 저녁, 아루샤 시내 호텔에서 다시 만난 나 시인은 “여전히 마음이 일렁인다”고 했다.

직접 후원아동을 만나니 어땠나요.
“더 일찍 왔으면 좋았을 걸 싶습니다. 5년 전에도 아이를 만나려고 만반의 준비를 다 했는데, 갑자기 코로나 팬데믹이 터져 무산이 됐습니다. 늦게라도 오기를 참 잘했습니다.”
니코데무와 함께하는 내내 많이 울었습니다.
“슬픈 건 아니었는데, 어디에 숨어있다가 나온 눈물인지 나도 잘 모르겠어요(웃음).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어요. 물보다 진한 것은 피, 피보다 진한 건 시간이라고요. 함께한 세월이 길어질수록 인연은 소중해지기 마련이에요. 니코데무는 내가 오랫동안 후원한 아이예요. 멀리 있으니 만나기도 쉽지 않았죠. 그동안 아이의 키가 자란 것처럼 내 마음도 많이 자랐나 봅니다.”
어떤 계기로 기부를 시작했나요.
“이전에는 문학계에 도움이 필요한 곳을 주로 지원했어요. 그러다 알고 지내던 월드비전 관계자 추천으로 2018년부터 아이를 후원하게 됐어요. 좀 더 일찍 시작했으면 좋았을 걸 싶어요. 오늘 직접 만나보니 니코데무는 인생의 목표가 분명한 아이였어요. 가슴에 빛을 품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내가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번 여행에는 12명의 월드비전의 후원자들이 함께했다. 이들도 각자의 후원 아동을 만났다. 길게는 13년 동안 인연을 이어 온 사례도 있었다. 후원자보다 한참 작던 다섯 살 소년은 어느새 훌쩍 자라 청년이 됐다. 스와힐리어에서 영어로, 다시 한국어로 두 차례 통역을 거쳐야 했지만 현장에서는 대화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기부를 하면 무엇이 달라지나요.
“사람들이 물질적인 만족만 좇다 보니 끝없이 허기집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기쁨이에요. 기부를 하면서 기쁨을 느낄 수 있으면 자신이 투자한 돈과 시간보다 더 큰 소득을 얻는 겁니다. 돈과 시간을 내주고 기쁨과 만족을 얻었다면 헛된 일이 아니겠지요.”

비우는 것이 곧 채우는 것

나 시인에게 기부는 어떤 의미입니까.
“나는 돈이 있으면 군시러워서 털어내고 싶어요. 요즘 한국 사람들은 참 외롭습니다. 마음 둘 곳이 없어요. 기부를 하면 누군가와 연결돼 있다는 감각을 얻을 수 있어요. 그 순간 외로움에서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 결국 후원은 타인을 위한 것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해요.”
시와 기부는 닮아 있는 것 같습니다.
“시는 세상을 바꾸지도, 돈을 벌지도 못해요. 대신 정서적인 만족을 주죠. 응원과 위로, 축복을 끝없이 줄 수 있는 정서적인 후원인 셈이에요. 내 시도 그렇게 바뀌어왔습니다. 나의 고백과 하소연을 담던 시에 언젠가부터 타인의 관점으로 본 세상을 그렸어요. 그랬더니 엄청난 보답을 받았습니다. 나는 일흔까지도 유명하지 않은 시인이었는데 지난 십여 년 사이에 많이 알려졌어요. 지금은 가진 게 너무 많고 화려해졌어요. 좋을 줄 알았는데 허전합니다.”
이유가 뭘까요.
“사람은 예순까지는 채우고, 그 이후는 비워야 해요. 비우는 것이 곧 채우는 겁니다. 내가 쓴 것만 나의 돈이지, 쓰지 않고 쌓아둔 돈은 내 것이 아닙니다. 나누고 나면 내가 나눴다는 사실은 남죠. 그래서 다 내주고 죽는 게 가장 좋아요. 탄자니아에도 나를 버리는 연습을 하러 왔어요. 옛날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니코데무와 헤어질 무렵 나 시인은 의사가 되고 싶다는 아이에게 한국에서 가져온 학용품을 선물했다. “다음에는 네가 의대생이 돼서 한국에 놀러 오라”면서 “그때까지 내가 부디 살아있으면 좋겠다”고 말하자 주변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니코데무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나요.
“아이는 의사가 돼서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하는데, 너무 모범 답안이잖아요(웃음). 꿈을 꼭 이루라고 말은 했지만, 나는 니코데무가 그냥 스스로 원하는 길을 가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건강하고. 그럼 됐지요. 과거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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