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위스키는 8할이 예술, 2할이 과학"…대영제국 훈장 받은 글렌모렌지 빌 럼스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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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화학과 발효 과학을 연구한 빌 럼스덴 박사(Dr. Bill Lumsden)는 스카치위스키의 경계를 넓히고 새로운 맛의 세계를 열어온 인물이다. 그는 올해 영국 왕실로부터 대영제국 훈장(Member of the Order of the British Empire)을 받았다. 글렌모렌지(1995년 입사)와 아드벡에서 보낸 30년을 포함, 위스키 발전을 위해 애쓴지 40여 년만의 영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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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류를 포함한 위스키 제조, 숙성 중인 원액까지 글렌모렌지와 아드벡 증류소를 책임지고 있는 빌 럼스덴 박사. 사진 모엣헤네시 코리아

다양한 위스키 중 특히 그가 집중한 분야는 ‘싱글 몰트’다. 싱글 몰트는 간단히 말해 증류소 한 곳에서 보리 맥아만으로 만든 술을 의미한다. 박사가 일하는 글렌모렌지 증류소의 위스키는 바닐라 향이 풍부하다. 반면 아드벡 제품은 강렬한 피트 향이 특징이다. 성격은 다르지만 두 증류소 모두 개성 넘치고 풍부한 아로마를 지닌 위스키를 만들어 낸다. 그는 두 증류소의 제조 과정 전체를 책임진다.

전 세계 애호가들은 그가 만든 위스키를 과학과 예술을 버무린 창조물이라 부른다. 제조 과정 중 그는 스카치위스키의 전통을 지키면서도 ‘What if?(만약에)’라는 질문을 던지며 과감한 실험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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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모렌지 증류소. 글렌모렌지는 1843년부터 위스키를 생산했다. 사진 모엣헤네시 코리아

지난 8월, 럼스덴 박사가 8년 만에 서울을 찾았다. 숙성 연수를 10년에서 12년으로 늘린 ‘글렌모렌지 오리지널’을 소개하고, 급성장 중인 한국 시장을 직접 살펴보기 위해서다. 그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제약과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철학이 최고의 맛을 만든 비결”이라며, 좋은 위스키 탄생은 동료들과 소비자를 향한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했다. 이하는 그와의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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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성 연수를 10년에서 12년으로 늘려 새로 선보이는 글렌모렌지 오리지널과 현대적인 설비를 갖춘 지금의 글렌모렌지 증류소 전경. 사진 모엣헤네시 코리아

Q. 위스키 창조자(creator)라 불린다. 단순한 제조를 넘어선 의미가 있나.
“미국에서는 나와 같은 마스터 디스틸러나 블렌더를 ‘메이커(maker)’라 부른다. 하지만 ‘만들다(make)’라는 단어는 내겐 다소 기계적인 느낌이다. 좋은 와인, 정교한 요리, 드레스 같은 고급 옷은 단순 제조가 아니라 창조라 부른다. 기술적 공정에 더해 창의성과 예술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위스키도 마찬가지다. 물론 생화학 전공자로서 쌓아온 이론이 도움되지만, 맛을 완성하는 건 지식이 아니라 감각이다. 내 생각에 위스키는 8할이 예술이고 나머지가 과학이다.”

Q. 예술에 큰 비중을 두는 이유는 무엇인가.
“위스키는 단순히 화학 공식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물론 ‘당분에 효모와 물이 더해지면 발효가 일어나 알코올이 된다’는 기초 이론은 존재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창작자의 발상이다. 예로, 나는 특정 색을 보고 위스키의 맛과 향을 떠올린다. 그 풍미를 찾기 위해 팀과 함께 창의적 실험을 전개한다. 고객의 반응을 상상하며 제품을 구상하는 것도 창의적 생각에 도움이 된다. 소비자가 즐거워할 맛은 무엇일까. 많은 디스틸러가 그 점을 놓친다.”

Q. 피트 계열 싱글 몰트 아드벡까지 책임지고 있다. 두 브랜드를 동시에 이끄는 건 어려운 일 아닌가.
“아드벡은 피트향이 강하기 때문에 맛을 바꾸려면 극단적인 시도가 필요하다. 글렌모렌지와의 큰 차이다. 다만 나는 안주하지 않는 성격이라 두 브랜드를 다루는 과정 자체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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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서쪽 해안의 아일라 섬에 있는 아드벡 증류소. 럼스덴 박사는 글렌모렌지가 있는 본토와 섬을 오가며 일한다. 사진 모엣헤네시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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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하이랜드에 자리한 글렌모렌지 증류소는 5m가 넘는 증류기를 사용한다. 이는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높은 규모다. 사진 모엣헤네시 코리아


Q. 두 증류소 모두 실험적인 시리즈를 많이 내놓는다. 영감은 어디서 얻는가.
“과학 서적부터 테이블 위의 꽃까지, 어디서든 얻는다. 전 세계를 돌며 다양한 사람과 나누는 대화, 식탁 위의 음식도 영감의 소재다.”

Q. 불가능할 것 같았지만, 제품으로 구현한 사례가 있나.
“글렌모렌지 시그넷이 좋은 예다. 커피 향을 위스키에 담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커피콩을 직접 넣을 순 없었기에, 초콜릿 몰트와 다양한 원액 조합으로 커피의 풍미를 구현했다.아드벡에선 이런 일화도 있다. 피트로 맥아를 훈연하는 대신, 원액이 담긴 오크통을 피트 지대에 묻은 적이 있다. 3년 후 꺼냈더니 술도 통도 그대로였다. 규정상 제품화할 수는 없었지만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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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모렌지 시그넷은 브랜드의 최고급 라인으로, 풍부한 커피 향을 지닌 아로마가 돋보인다. 사진 모엣헤네시 코리아

Q. 글렌모렌지 오리지널의 숙성 연수를 12년으로 늘렸다.
“30년간 글렌모렌지에서 일하며 미세한 조정은 있었지만, 숙성 연수를 2년 늘린 건 처음이다. 솔직히 오랫동안 망설였다. 기존 오리지널 자체로도 아주 훌륭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나은 맛을 위해 시도는 계속됐고, 결국 캐릭터를 유지하면서도 진화할 방법은 숙성을 늘리는 것이었다. 샘플 완성 후 직원 40여 명에게 블라인드 테스트를 했다. 결과는 12년 숙성 샘플의 압승. 그렇게 새로운 오리지널이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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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럼스덴 박사는 글렌모렌지에서 30년간 일했다. 사진 모엣헤네시 코리아


Q. 글렌모렌지는 와인 캐스크 피니싱으로도 유명하다. 개인적으로 와인을 즐기나. 또 오크통을 고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위스키가 내 인생이라면, 와인은 내 소중한 취미다. 부르고뉴·보르도·토스카나, 스페인 리베라 델 두에로의 레드 와인을 즐긴다. 지난해 출시한 ‘Pursuit of Passion’ 와인 캐스크 에디션은 와인에 대한 나의 애정을 직접 담은 제품이다. 오크통은 가능하다면 와인 숙성에 두 번 이상 쓰인 것을 선호한다. 고급 와인에 쓰이는 오크는 타닌이 강한데, 여러 번 숙성에 쓰이면 떫은맛이 줄어든다. 남은 와인의 풍미가 위스키와 어떻게 어울릴지는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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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모렌지는 원액 숙성 시 풍미를 살리기 위해 오크통을 두 번 이상 쓰지 않는다. 사진 모엣헤네시 코리아


Q. 대다수 브랜드는 위스키 병 하나에 바닐라, 과일 케이크, 다크 초콜릿 등 다양한 풍미가 들어있다 말한다. 모든 사람이 이를 전부 느낄 수 있나.
“후각은 사람마다 다르다. 하지만 경험이 쌓이면 더 많은 풍미를 구별할 수 있다. 위스키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즐기기를 권한다. 물을 조금 섞어보거나, 온더록스, 심지어 진저에일을 곁들인 칵테일도 괜찮다. 다채롭게 경험할수록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다.”

Q. 좋은 위스키를 정의한다면.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 기준에서 훌륭한 술은 흥미롭고 복합적인 아로마를 지니거나 입안에서 좋은 질감을 주는 술이다. 영국 사람들이 자주 쓰는 ‘Moreish’라는 표현이 있다. 한 잔 후 또 마시고 싶다는 뜻이다. 훌륭한 위스키란 바로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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럼스덴 박사는 위스키 제조를 예술과 과학을 융합한 창조(creation)의 과정이라 말한다. 사진 모엣헤네시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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