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박찬욱의 오스카 도전, 지금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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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쩔수가없다'로 베니스국제영화제 레드카펫에 선 박찬욱 감독. 로이터=연합뉴스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가 제82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트로피를 품에 안지 못했다.
하지만 박찬욱은 역시 박찬욱이었다.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최초 공개된 '어쩔수가없다'는 극찬을 받았다. 관객들은 물론, 현지 언론과 평단도 호평을 쏟아냈다.
"가장 우아한 감독의 매혹적인 블랙 코미디"(버라이어티), "시대를 관통하는 풍자극"(가디언), "박찬욱의 가장 인간적인 작품"(BBC) 등 찬사가 이어졌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비교하면서, 내년 아카데미상 수상 가능성도 거론하고 있다.
‘어쩔 수가 없다’는 실직 이후 재취업을 위해 몸부림치는 평범한 가장 만수(이병헌)의 상상할 수 없는 행적을 따라가는 잔혹하면서도 슬픈 블랙 코미디다.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1997년 소설 『도끼(The Axe)』를 영화화하겠다는 박 감독의 열망이 결실을 맺기까지는 20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자본주의 경쟁의 잔혹성과 개인의 붕괴를 그린 소설은 박찬욱의 손을 거치며, AI(인공지능)와 첨단 기술에 소외되는 인간의 존재 이유를 묻는 가장 현재적인 질문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성민·박희순·차승원이 연기하는 제지공장 노동자들은 만수의 경쟁자인 동시에 만수를 닮은 또 다른 자아다.
그들을 제거해가는 과정은 살육의 쾌감보다는 동족 살인 혹은 자살의 슬픔까지 안겨준다. 온 세상이 함께 웃을 줄 알았던 만수의 재취업은 결국 혼자 우는 미래의 시작이 되고,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온 듯한 엔딩은 안도감보다 섬뜩함을 남긴다.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한 장면. 사진 CJ ENM
‘달은… 해가 꾸는 꿈’(1992)으로 감독 데뷔한 박찬욱은 ‘삼인조’(1997)까지 기존 충무로에서 본 적 없는 독특한 문법의 영화 세계를 제시했지만, 20세기의 관객은 그를 양지보다는 응달에 머무르게 했다.
하지만 21세기의 시작과 함께 찾아온 ‘공동경비구역 JSA’(2000)는 580만명이 넘는 관객수 뿐 아니라 한국영화 르네상스의 시작을 알린 작품으로 기록됐다. 전작의 상업적 실패를 딛고 대중적 호응을 이끌어낸 이 영화는 분단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과 그들의 관계를 동시대의 눈으로 바라본 선언적 작품으로 한국 영화사에 남았다.
TV 드라마 청춘스타였던 이병헌을 영화배우로서 각인시킨 시작이기도 했다. 배우 이병헌과 감독 박찬욱의 인연은 옴니버스 영화 ‘쓰리, 몬스터’(2004)로 잠시 이어지긴 했지만, 본격적인 장편 영화로 다시 조우하기까지는 25년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각자 단단하게 쌓아올린 연출력과 연기력은 ‘어쩔수가없다’를 완성하는 결정적인 두 기둥으로 자리 잡았다.
‘복수는 나의 것’(2002), ‘올드보이’(2003), ‘친절한 금자씨’(2005)로 이어진 ‘복수 3부작’은 박찬욱을 칸과 베니스를 비롯한 해외 영화제 무대에 올렸을 뿐 아니라 전 세계 영화 팬들을 매혹시킨 결정적인 작품으로 남았다.
‘아가씨’(2016)와 ‘헤어질 결심’(2022)은 한층 정교해진 박찬욱의 미장센의 정점을 보여줬을 뿐 아니라, 숙희(김태리), 히데코(김민희) 그리고 서래(탕웨이)로 이어지는 문제적이면서도 새로운 여성 캐릭터들의 탄생을 알렸다.
할리우드 영화 ‘스토커’(2013), 영국 BBC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2018), 미국 HBO 시리즈 ‘동조자’(2024)로 확장된 박찬욱의 세계적 프로젝트들은 그의 세계가 한국에만 머물지 않음을 증명해왔다.
박찬욱은 베니스에서 빈 손으로 귀국하지만, 오스카 트로피를 향한 여정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어쩔수가없다'는 내년 미국 아카데미상 국제장편 부문 한국영화 출품작으로 선정됐다.
4일 개막한 제50회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 특별공로상을 받는 이병헌은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에서 ‘어쩔수가없다’를 소개한다. '기생충' 등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을 북미 시장에 배급해온 네온(Neon)이 '어쩔수가없다' 또한 현지 관객과 만나게 한다는 점도 아카데미상 수상을 기대케 하는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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