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오전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에서 한 발달장애인이 의료진 3명과 함께 채혈을 하는 모습. 의료진이 “잘하고 있어요, 괜찮아요~”라며 다독이고 있다. 사진 푸르메재단

발달장애인 전승완(31)씨가 지난 4일 오전 기본 검진을 마치고 나오자 건강검진센터 복도에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날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은 일반인 검진을 멈추고 발달장애인과 보호자만을 위한 건강검진을 처음으로 진행했다. 서울의료원이 푸르메재단 산하 복지관 3곳과 건강검진에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들을 위해 함께 기획한 ‘장애가족 건강검진 지원사업’의 일환이다. 뇌병변, 지적 장애 등 장애인 16명과 보호자 11명이 참여했다.

지난 4일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에서 의료진이 건강검진을 받는 발달장애인과 보호자를 안내하고 있다. 사진 푸르메재단

비장애인에 비해 장애인은 건강검진 접근성이 떨어진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장애인 건강검진 수검률은 63.5%로 전체 수검률에 비해 12.4%포인트 낮았다. 특히 발달장애인 건강검진 수검률은 지적장애 54.8%, 자폐 52.0% 등 절반을 겨우 넘는다. 서울의료원 이현석 원장은 “발달장애인은 낯선 환경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커 검진에 훨씬 더 많은 인원과 시간이 필요하다”며 “1인당 5배 정도의 시간이 더 소요된다”고 설명했다.

이날 검진에도 많은 인력과 시간이 들어갔다. 원장을 비롯한 의료진 총 36명과 복지관에서 온 복지사 15명이 참여했고, 기본 검진을 마치기까지 몇 배의 시간이 걸렸다. 지적 장애가 있는 검진객 1명 채혈을 위해 의료진 3명이 함께 들어가 “조금 오래 걸려요, 괜찮아요~”하며 격려했다.

검진을 받으러 온 이들은 지난달 21일에 ‘사전 교육’까지 받았다. 엑스레이 사진 촬영할 때 숨 참고 내쉬는 법을 연습하고, 어두운 초음파 검사실을 익히고 왔다. 그럼에도 오모(26)씨는 낯선 환경에 검사복으로 갈아입지 못하다가, 어머니 설득 끝에 2시간 만에 겨우 기본 검진과 채혈을 마쳤다.

이날 서울의료원은 검진 시간과 순서, 동선까지 전부 고려해 장애친화적으로 검진을 기획했다. 장애인이 금식을 어려워하는 점을 고려해 가장 짧게 금식을 할 수 있는 오전 8시로 검진 시간을 잡았다. 주삿바늘을 최대한 짧게 꽂고 있도록 채혈 순서는 내시경 직전으로 미뤘다. 이날 검진을 마친 김홍태(32)씨의 어머니는 “아들을 병원에 데리고 와서 종합검진을 받기가 참 쉽지 않은데, 의료진이 신경 써줘서 너무 수월하게 마쳤다”고 말했다.

부족한 검진 장비와 장애친화적 검진 매뉴얼의 부재도 건강검진 접근성이 떨어지는 이유다. 서울에서 장애인 검진을 위한 장비를 갖춘 의료 시설은 국립재활의료원과 서울의료원 단 2곳뿐이다.

낮은 건강검진 수검률은 장애인 조사망률(인구 10만명당 사망자 수)이 전체 평균의 5배에 이르는 현실과도 이어진다. 전체 인구의 조사망률이 689.2명인 것과 달리 장애인 조사망률은 3580.6명에 달한다. 장애인이 건강검진에서 ‘정상’ 판정을 받는 경우는 17.7%로, 40.2%인 비장애인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검진에 참여한 서울의료원 심정옥 차장은 “직장 가입자들은 1, 2년에 한 번씩 건강검진을 받는데, 이전에 검진을 받은 장애인이 30대인데 처음 혈압을 잰다고 해 속으로 놀란 적도 있다”며 “아직은 복지가 잘 안 돼 있다는 점을 그때 느꼈다”고 말했다.

지난 4일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에서 이현석 원장이 장애인 건강검진을 마친 소감을 말하고 있다. 이 원장은 “더 많은 병원이 참여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 푸르메재단

이 원장은 “장애인이 검진을 못 하는 제일 큰 이유는 의료 접근성이 떨어져서인데, 우리 병원에서 검진을 받으려고 경기도에서도 오고 서울 은평구에서도 온다”며 “더 많은 병원에서 검진을 할 수 있게 복지부에서 기본 검진 비용을 보전해주는 등 접근 방식을 개선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푸르메재단 관계자는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사회가 되려면 좀 느리고 힘들더라도 인프라가 갖춰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