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불법 구금사태 왜 발생했나…대미 라인 가동·법적 검토 전부 '뒷북&a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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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한국인 대규모 체포·구금 사태가 사흘 넘게 이어지는 가운데 현지 주미 대사와 애틀랜타 총영사 공석 등으로 대미 라인을 전면 가동할 여건조차 갖춰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이민 정책에 안일한 태도를 보여온 정부가 이제야 '편법 비자' 문제에 대한 법적 검토에 나서며 뒷북 대응에 나선 모양새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과 국토안보수사국(HSI) 등 소속 요원들이 4일(현지시간) 현대자동차와 LG에너지솔루션이 조지아주 서베나에 공동으로 건설중인 배터리 공장에서 불법체류자 단속을 벌여 475명을 단속했다. 이 중 300여명이 한국인으로 파악된다. 사진은 이날 단속 요원들이 현장 직원들의 손목과 다리를 수갑과 쇠사슬로 묶고 있는 모습. ICE 동영상 캡처
손 놓고 있다 당했다
지난 5일(현지시간) 한국인 300여명을 체포·구금한 이민세관단속국(ICE)은 트럼프 행정부가 앞세우는 '불법 체류자 100만명 추방' 목표의 최전선에 서 있는 기관이다. 불과 열흘 전인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이재명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만나 화기애애한 장면을 연출했던 트럼프가 이날 "그들은 불법 체류자(illegal aliens)였고 ICE는 자기 할 일을 한 것"이라며 선을 그은 것도 이민자 문제에 대한 그의 강경한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기조 하에 동맹도 예외로 두지 않는 트럼프의 성향을 고려했더라면 이민자 문제가 중남미 국가 등에만 국한되지 않고 한국에도 불똥이 튈 가능성에 사전에 대비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번 단속의 수색영장에는 중남미 출신으로 추정되는 4명의 명단이 있었지만 실제 대규모로 구금된 대상은 애꿎은 한국인들이었다. 영장 자체를 문제 삼을 수 있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즉각적인 항의나 대응조차 하지 못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사실상 수색영장만으로 300명을 일괄 구금한 것은 죄질을 고려할 때 비례성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며 “비자 목적과 실제 활동 간 분쟁 소지가 있는 사안인데, 만약 일부 인원이 비자 목적에 부합했다고 밝혀진다면 위법 집행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주애틀랜타 총영사관은 조만간 변호인단을 꾸려 구금시설을 방문할 예정이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과 국토안보수사국(HSI) 등 소속 요원들이 4일(현지시간) 현대자동차와 LG에너지솔루션이 조지아주 서베나에 공동으로 건설중인 배터리 공장에서 불법체류자 단속을 벌여 475명을 단속했다. 이 중 300여명이 한국인으로 파악된다. 이번 작전은 연방수사국(FBI), 마약단속국(DEA), 주류 담배 화기 단속국(ATF), 조지아주 순찰대 등 다양한 기관이 합동으로 진행했다. ICE 동영상 캡처
H1B 비자는 '별 따기' 수준
이번에 체포·구금된 한국인 상당수는 무비자인 ESTA(전자여행허가)나 현지 교육이나 회의 참석 등을 위한 B1(상용비자)을 소지하고 있었다. 미국 현지 공장에서 합법적으로 근무하려면 전문직 취업(H-1B) 비자나 주재원(L1·E2) 비자가 필요하지만 발급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려 그동안 관행적으로 ESTA나 B1 비자를 활용해온 것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구금된 우리 국민들의 정확한 비자 카테고리를 계속 파악 중"이라며 "미측은 우리 국민 중 B-1 비자 소지자에 대해서 비자 체류 목적에 부합하는 활동이 이루어졌는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직 취업(H-1B)이나 주재원(L1·E2) 비자의 경우에는 발급이 까다로워 미국과의 계약에 따라 공사 기한을 맞춰 수시로 맞춤형 인력을 투입해야 하는 기업들은 이를 마냥 기다리기도 어려운 처지다. 무작위 추첨으로 발급되는 H-1B 비자의 경우 한도가 연 8만 5000개(미국 대학 석·박사 학위 보유자 2만개 포함)로 제한돼 있어 경쟁이 치열하다. 이 때문에 전문 기술을 보유한 한국 국적자에게 별도의 할당량을 주는 법안이 2013년부터 미 의회 회기 때마다 발의됐지만 통과되지는 못했다.
조지아주를 관할하는 주애틀랜타 총영사를 맡다 지난 6월 퇴임한 서상표 전 총영사는 7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최근 대규모 대미 투자가 본격화하는 가운데 근로자의 실제 업무와 비자 목적을 신속히 맞추기 어려운 현실에서, 투자 일정을 지켜야 하는 기업들과 단호한(stubborn) ICE의 단속이 맞물리며 이번 사태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 전 총영사는 “한국인 노동자 대부분은 불법 입국자가 아니라 합법 비자로 들어온 사람들이고, 다만 비자 목적과 실제 근무가 달라 분쟁 소지가 있을 뿐”이라며 “특히 1차·2차 협력사로 내려갈수록 비자를 제때 받지 못한 인력이 생기면서 편법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사태가 일회성에 그친다면 피해는 제한적이겠지만, 같은 단속이 반복되면 투자 수익성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며 “건설·설비 단계에 필요한 전문 인력이 제때 투입되지 못하면 공장 준공 일정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이 6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열린 재외국민보호대책본부 본부-공관 합동 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회의는 미국 조지아주 한국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대대적인 이민 단속으로 한국인이 300명 넘게 체포되는 사태가 벌어진 것과 관련 대책 논의를 위해 열렸다. 뉴스1
대미라인 미비도 도마
현재 주미 한국대사와 주애틀랜타 총영사 자리가 모두 공석인 점도 이번 사태의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조기중 워싱턴 총영사가 현장 대책반을 이끄는 실정이다. 외교관 출신의 외통위 국민의힘 간사인 김건 의원은 “이런 문제야말로 고위급이 ‘사안이 심각하다’는 인식을 갖고 지시를 내려줘야 관료 조직이 움직이는데, 지금은 미국 고위 인사와 직접 접촉할 통로가 막혀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한·미 정상회담 성과로 내세웠던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과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 간 '핫라인'도 가동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태 발생 사흘이 넘도록 지금까지 최고위급 소통은 지난 6일 밤 외교차관 간 통화가 전부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다음 주 방미 일정을 조율하고 있지만 카운터파트인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과 아직 통화조차 하지 못했다. 조지아주 기반 정치인인 토리 브래넘이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 등을 통해 제보자를 자처하며 "내가 ICE에 신고했다. 한국 기업들은 세제 혜택을 받고도 미국인을 고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이 같은 극우 정치인의 선동성 주장에도 정부 대응은 미진한 상황이다.
외교 라인과 정치권이 한 목소리로 단호한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국내 정치가 뒷받침돼야 외치를 세게 밀어붙일 수 있다"며 "조셉 윤 주한 미국 대사를 초치하는 등 강력한 수준의 항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8일 현안질의를 실시한다. 외통위 민주당 간사인 김영배 의원은 “이 사안이 국내에서 심각하게 다뤄지고 있다는 걸 대내외에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한 것”이라며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외교 현안이기에 섣부른 접근은 금물이며, 의원 외교나 외통위 차원의 결의안 등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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