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코인까지 공부해 '전국 1등' 찍었다, 피싱범 때려잡는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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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서 피싱범죄수사팀원들. 왼쪽부터 팀장 한모 경감, 민모 경사, 정모 경위, 박모 경감. 사진 김포경찰서
“보이스피싱범으로 오해를 받은 적도 있어요. ‘우리가 피해금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범인이냐고 화를 내시더라고요”
피해자는 퇴직 은행원이었다. 알고보니 검사 사칭범에게 세뇌를 당한 상황. 마침내 김포경찰서로 직접 3억8000만원의 피해금을 찾으러 와서야 수사팀에 연신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고 한다.
나날이 교묘해지는 보이스피싱 범죄자들의 저승사자들이 있다. 지난 3월 17일부터 6월 30일까지 보이스피싱 조직원 총 186명을 검거하고, 약 12억원을 피해자에게 돌려줘 ‘전국 1등’ 실적을 달성한 김포경찰서 피싱범죄수사팀(수사팀)이다. 지난 1일 특진 임용식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 잠복 수사에 돌입하고, 수백 건의 판례를 연구하느라 밤을 새울 정도로 진심인 수사팀 팀장 한모 경감, 민모 경사, 정모 경위, 박모 경감의 이야기를 들었다.
보이스피싱범은 실제 경찰관마저 오해할 정도로 피해자를 철저히 가스라이팅한다. 수사팀장 한모 경감은 이 때문에 안타까움과 고충이 크다고 전했다. 비단 퇴직 은행원 사례만 아니었다. 그는 “800만원을 찾아 피해자에게 돌려주고 신신당부하며 귀가시켰는데, 세뇌당한 피해자가 조직원의 전화를 받고 다시 돈을 보내 재수사를 요청했던 적도 있었다”고 했다.
과거보다 치밀해진 수법에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고, 검거 과정도 더욱 복잡해졌다. 한 경감은 “환전책이 바로 현금을 수거하는 패턴을 보였던 이전과 달리 최근에는 범행 전후 택시와 지하철 등 교통수단을 혼용해 최대 4회는 장소를 이동하는 식으로 수법이 발전했다”며 “한번이면 추적이 됐었는데 이젠 며칠 밤을 붙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금수거책을 거친 후엔 코인으로 범죄 자금을 세탁하는 단계로까지 발전해 요즘은 코인 공부까지 하고 있다.
적당히 할 만도 한데, 왜 이렇게 진심인가. 이 수사팀을 움직이게 하는 ‘팀훈’이 있다. 바로 일필검 일필화(一匹檢 一匹和·1명의 피의자를 잡으면 한 명의 피해자가 웃는다)다. 지난 1일 경위에서 1계급 특진한 팀원 박모 경감은 “팀장님이 만든 이 팀훈 아래서 똘똘 뭉쳐 사무실에 울며 들어오는 모든 피해자들을 위해 일했다”고 했다. 팀원 민모 경사 또한 “가족 같은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하루빨리 피싱 범죄를 없앨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전의는 피해자의 눈물과 자책 앞에서 더욱 불탄다. 한 경감은 어렵게 환경미화원 일을 하며 모은 돈을 보이스피싱으로 날린 피해자 부부를 떠올렸다. 그는 “세상 다 잃은 사람처럼 서럽게 울며 ‘가족들에게 절대 말하지 말아 달라. 우리가 바보’라고 자책했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반드시 억울한 부분을 풀어주겠다 다짐한 팀원들은 일주일 만에 범인을 검거했고, 긴급생활금 지원 방안 등을 안내해 피해자 부부를 안심시켰다고 한다.
약자를 주요 목표로 하는 범인들에게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한 경감은 “검사 사칭 보이스피싱 방식은 사회초년생과 여성 등을 공략해 ‘구속한다’며 공포심을 유발한다”며 “(그래놓고) 일반인들에게 ‘자신 때문에 피해가 발생했다’는 죄책감을 심어준다는 측면에서 악랄한 방식”이라고 했다. 이어 “언제까지 국민을 속일 작정이고 언제쯤 다 소탕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허탈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들의 수사는 멈추지 않는다. ‘쉬는 동안에도 피해는 계속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특진 임용식을 마치자마자 잠복 수사에 나선 박 경감은 “승진이라는 영광에 취하기보다는 피의자를 하나라도 더 잡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바로 처리하지 않으면 피해가 또 발생한다는 생각에 팀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바로 수사에 나서자고 했다”고 전했다.
끝으로 이들은 피해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해주고 싶다고 했다.
‘작정하고 달려들면 당해낼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피해를 당했어도 자책하지 마세요. 그리고 조금이라도 의심스럽다면, 경찰을 찾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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