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뉴욕 MoMA 미술관을 당신의 집에 가져가세요"…세라 스즈키 부관장 단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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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서울 도산대로 MoMA 북스토어에서 만난 세라 스즈키 MoMA 부관장. 이곳에 진열된 200종의 MoMA 출판물 중 그가 제일 먼저 추천한 것은 소장품 하이라이트를 담은 『MoMA NOW』였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보는 것에 기대를 잃지 마세요. 호기심을 갖고 계속 나아가세요(Stay curious, keep working).

세라 스즈키 뉴욕 현대미술관(MoMA) 부관장이 한국의 젊은 예술가·큐레이터, 나아가 예술과 처음 사랑에 빠질 애호가들에게 내놓은 조언이다. '새로운 것을 보는 장소'에 9일 서울 도산대로 골목길에 문 여는 MoMA 북스토어도 추가될 것 같다. 개관 준비가 한창인 지난 3일 이곳에서 만난 그는 "밖에서 사람들이 기웃거리는 걸 보니 설렌다"며 "서울 시민들이 이 공간을 좋아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9일 서울 도산대로에 MoMA 북스토어 개점

1929년 설립한 뉴욕의 사립미술관 MoMA에는 연간 300만명이 찾는다. 디자인스토어는 뉴욕에 세 곳, 일본에 세 곳 있다. 이쯤 되면 MoMA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인터뷰에 함께 한 대니얼 페레즈 최고 재무책임자(CFO)는 "브랜드로서의 MoMA는 실험성, 아이디어의 산실, 모든 창의의 촉매제이기를 지향한다"면서도 "물론 미술관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MoMA 북스토어라는 이름으로는 이번에 처음 문을 열었다. 서울 북스토어에서는 MoMA의 출판물 200종 1100여권과 '캡슐 셀렉션'이라는 이름으로 주요 디자인 상품도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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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산대로 MoMA 북스토어 쇼윈도에 선 세라 스즈키(오른쪽) MoMA 부관장과 대니얼 페레즈 최고 재무 책임자(CFO).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세라 부관장이 방한한 시기는 '프리즈·키아프 서울' 기간으로 한국 미술계에 중요한 시기다. 그는 "아트선재센터, 국립현대미술관,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등 최대한 많은 곳의 전시를 보고 가려고 리스트를 꽉꽉 채워왔다"며 "눈부시고 찬란한 문화도시 서울에 일부나마 기여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MoMA에도 중요한 시기다. 30년간 미술관을 이끌어 온 글렌 로리 관장이 퇴임하고, 스위스 출신의 크리스토프 셰릭스 드로잉 및 판화 부문 수석 큐레이터가 이달 중 관장직을 승계한다. 직원 850명에 2조 3622억원 가량의 기금을 보유한 MoMA의 새 'CEO'다. 세라 부관장은 "지난 30년간 뛰어난 리더십의 혜택을 받았다. 로리 관장은 늘 원팀, 팀워크를 강조했다. 17년간 MoMA에 근무해 온 셰릭스 관장 역시 팀 중심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으며, 관람객들의 미술관 경험을 중시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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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산대로에 9일 문 연 MoMA 북스토어. 사진 현대카드

MoMA 스토어의 성공 비결은?
"모든 제품을 큐레이터들이 검토·선정한다. 기준은 방문객의 일상을 좋게, 편리하게 만들 것, 그리고 ‘동시대 예술로 전 세계인을 연결한다’는 MoMA의 미션에 부합하느냐다."  
북스토어라는 새 모델을 서울서 실험하는 건가?  
"독일 현대미술의 거장 요셉 보이스는 '내가 만든 작은 오브제를 가지면 나를 가진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북스토어 역시 MoMA의 지적인 에너지, 시각적 흥분을 집대성한 곳이다. 이제 막 예술에 빠진 분들이 장서를 만져보고 넘겨보다가 한 권쯤 산다면 MoMA라는 미술관을 집에 가져가는 거라고 말하겠다. 일상의 공간에서 매일 기쁨을 느껴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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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 스즈키 부관장은 MoMA의 출판물 『바우하우스』에 대해 "MoMA가 정말 잘하는 걸 담은 책"이라고 소개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왜 서울이었을까?
"현대카드와 20년 가까운 협업이 있었다. 북스토어라는 형태로 기획된 것도 정태영 부회장의 제안이었는데, 사람들이 느긋하게 산책하다가 들어와 구경하는 쿨한 공간이 되면 좋겠다.“

그 파트너십의 일환으로 MoMA의 대표적 연구서 시리즈 '프라이머리 다큐먼츠'의 한국 근현대미술편이 2027년 발간 예정이다. 지난해 큐레이터 교류 프로그램도 시작, 7명의 MoMA 큐레이터가 한국에 다녀갔다. 세라 부관장은 "교류 프로그램의 장점은 단기·중기·장기에 걸쳐 성과가 난다는 것"이라며 "예술가들의 작업실을 방문하다 보면 작품을 매입하거나 전시에 포함하게 될 수 있고, 장기적으로 연구서에도 반영할 수 있다. 오는 11월 MoMA의 PS1 분관에서 여는 김아영 개인전도 이런 방문에서 태동했다"고 말했다.

관심 있는 한국 미술가는?  
"아, 진짜 많다. 김아영에 대해 말하는 중이라 덧붙이자면, 상반기 서울에 와서 아틀리에 에르메스에서 여는 김아영 개인전을 봤다. 잘 알려진 '딜리버리 댄서' 시리즈와 확연히 다른 신작에 놀랐다. 기술을 시각 언어로 완벽히 스토리텔링 하는 재능이 대단하다. 그를 뉴욕의 관객들에게 소개할 수 있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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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MA 출판물 중 세라 스즈키 부관장과 대니얼 페레즈 CFO가 추천한 책들. 사진 현대카드

이곳의 많은 책 중 당신만의 셀렉션은?  
"『MoMA 나우』다. 크고 아름다운 커피 테이블북이다. 과거엔 ‘하이라이트’라는 제목으로 주요 소장품을 담았다면, 지금은 시대를 망라해 지금 MoMA에서 주목하는 작품들을 수록했다. 『바우하우스』는 MoMA가 정말 잘하는 걸 담은 책이다. 실제 바우하우스란 무엇인지,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들었다. 미술관으로 향하는 여러 방법을 보여주는 책으로 『드로운 투 모마(Drawn to MoMA)』도 추천한다. 그래픽 아트, 만화, 카툰 등을 다룬 웃기고도 뭉클한 책이다.”

페레즈 CFO는 ‘일대일(One on One)’ 시리즈를 들어 보이며 “한 작가의 한 작품만 다룬 소책자로 작품에 빠져들 수 있게 안내한다.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캔’, 멕시코 출신인 내가 좋아하는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 등 작품 한 점만으로 책 한 권을 썼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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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슐 셀렉션'에 진열돼 있는 MoMA의 문구류. 권근영 기자

마지막으로 MoMA에서만 27년간 근무한 큐레이터인 세라 부관장에게 한국의 젊은 예술가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보는 것에 대한 기대를 잃지 마세요. 우리가 정말 운이 좋은 건 세계가 긴밀히 연결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겁니다. 전 세계에서 창작되는 작품을 쉽게 볼 수 있죠. 새로운 것을 보며 새로운 것을 배우면 우리 세계가 풍성해질 겁니다. 그러니 호기심을 갖고 계속 나아가세요(Stay curious, keep wor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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